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경 Apr 12. 2024

프롤로그

건강검진을 했다.

벚꽃이 만개한 4월이다. 봄이다. 날씨가 정말 좋다. 미세먼지는 있지만 그래도 좋다. 30개월 아이가 3월부터 어린이집에 갔다. 첫 주는 아이와 함께 30분 둘째 주는 부모와 분리해서 30분.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셋째 주부터 적응기간이 1시간으로 늘어나고, 넷째 주에는 적응기간이 2시간으로 늘어나 집에 가서 밥을 먹거나 설거지를 하고 놀이터 앞에 대기했다. 2시간이라 해도 내가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었다. 4월 첫 주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고 왔다. 집에서도 낮잠을 건너뛰는 날이 많은 딸아이는 첫날 많이 울었다고 한다. 마음이 아파 낮잠을 재우지 말까 고민하는 나에게 담임 선생님께서 애착 인형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아이는 선생님의 배려로 점차 적응해 가더니 낮잠 2주 차인 요즘. 매우 안정적인 어린이집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 적응을 위해 하원 후에도 어린이집 친구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주려 애썼다. 어떤 친구와는 집을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군가는 시간 지나면 '부질없는 '이라 생각할지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이의 안정적인 어린이집 적응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


이제는 낮잠시간에 울지 않고 잘 잔다고 한다. 자고 나서 간식도 먹고 3시 반에 하원하는데 울먹거리는 얼굴을 본 건 낮잠시간 첫날. 딱 한 번이다. 한 달이 지나고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이 끝났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심심하지 않냐고 남편이 물었다. 남편은 각각 다른 날 두 번 질문했다.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고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거나 빨래를 개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밥하고, 밑반찬 두 가지 정도 만들고 내 점심을 챙겨 먹고 씻으면 3시다. 알람을 맞춰두고 3시 반까지 어린이집으로 간다. 나는 아이 적응기간 동안 이런 날들을 보냈다. 아이 없이 심심하지 않고 아이 없이 혼자 집안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가 하원하고 얼굴을 보면 너무 반갑고 사랑스러웠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매일 한 시간씩 놀고 집에 와서 목욕을 시킨 후 저녁을 먹였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저녁을 차려주고 저녁 설거지를 마치면 나의 퇴근도 가까워진다.




24년 04월 08일 (월)

이가 30개월이 될 때까지 가정보육을 했던 나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병원을 가기 어려웠다. 출산 후 종합검진을 받은 후로 추적검사가 필요한 부분이 있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면 가야지 했다. 이비인후과 진료는 아이를 안고 진료받은 적이 있고,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작년에 남편 출근 전 30분 이내에 초음파 검사를 받고 온 적이 있다. 남편은 개업 치과의사다. 재택근무도 없고, 연차도 쓸 수 없다. 출근을 안 하면 타격이 크니까 남편은 아파도 출근한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아파도 나 때문에 지장을 줄 수 없다. 친정은 멀고 시부모님은 연로하시다. 오늘은 작년부터 미뤄둔 자궁경부암 검진을 하러 갔다. 오늘쯤에는 아이도 적응이 끝났으니 이상이 있어도 진료를 받으러 다닐 수 있을 것 같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산부인과에 갔다. 간 김에 초음파 검진도 했는데 자궁에 점처럼 작은 혹들이 꽤 있긴 한데 말 그대로 피부의 점과 같은 것들이라 크게 문제는 없다고 했다. 대신 매년 초음파 검진을 보자고 하셨다.


24년 04월 09일 (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보다 훨씬 더 즐거워하며 에너지가 넘친다. 아이는 친구들이 많다며 나에게 자랑을 한다. 도 이제 나를 좀 돌봐도 괜찮을 것 같다. 드디어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30개월이 되도록 엄마 껌딱지라 줄곧 안아 키웠더니 목 어깨가 자주 뭉치고 담이 자주 오기도 하고, 출산과 육아 후 자세가 좀 구부정해진 느낌이다. 필라테스를 쭉 다녀볼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액대가 있는 편이라 망설이다가 우선 3회 체험으로 등록해 봤다. 등록 당일 오후 12시 첫 수업을 했다. 미혼시절 요가를 2년 정도 했었는데 그때 참 좋았지 싶은 생각도 나고, 나를 위해 온전히 힘을 쏟는 시간이 너무 생소하고도 기뻤다. 몸을 쭉쭉 뻗으며 운동하는 내내 즐거웠다. 다만 운동이 끝나도 땀이 나지 않는 것이 필라테스의 특성인 건지 요가를 했을 때는 땀이 꽤 났던 것 같은데.. 조금 아쉽다. 좋긴 한데 필라테스라 좋은 것인지 방치됐던 내 몸을 위한 첫 운동이라 그냥 좋은 건이 약간 망설임이 있다. 2회 더 수강 후 추가 결제를 생각해 봐야겠다.


24년 04월 11일 (목)

그저께는 나를 위한 운동을 알아봤으니 오늘은 작년에 못한 건강검진을 받아야겠다. 작년 12월 15일 유방초음파 추적검사가 필요하다고 문자를 받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받아야지 하고는 미뤘다. 건강검진과 유방초음파를 함께 보러 갔다. 일반검진을 마치고 유방초음파를 했다. 초음파 화면을 보는데 딱 봐도 좀 이상하게 생긴 혹이 보인다. 예전에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매끈하니 동글납작한 혹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건 모양이 좀 찌그러졌다. 아니 뾰족뾰족한가? 조금 당황스럽고 무서운데 초음파실 조용하다. 초음파를 보는 내내 숨죽였다. 검진이 끝나고 진료실을 들어갔다. 선생님이 일반검진 피검사 결과는 나오면 연락 주시겠다고 하시며, 유방초음파 사진을 띄우셨다. 아까 내가 유심히 봤던 그 혹 사진이다. 작년에 찍은 사진과 양쪽에 사진을 띄우셨다. 혹 모양이 달라졌다고 하셨다. 모양이 나빠졌다. 예전이면 대학병원으로 연계하지만 의사파업으로 인해 유방외과 전문의로 유명하신 H병원 선생님을 연계해 주시겠다며 소견서를 넘길 테니 CD를 가지고 진료를 꼭 보라고 하신다. 심장이 덜컹거린다. 아무 생각 없이 미뤄둔 숙제 마치러 왔다가 마음이 무겁다. 나는 물었다.


"암일 수도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