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초음파 의사 소견으로는 혈류량이 많이 다행히 많지 않아 암은 아닐듯하지만 예전과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의학지식이 없는 까막눈인 내가 봐도 묘하게 변해버린 혹의 모양이 보였다. 건강검진 기관에서는 유방전문 의사 선생님을 연계해 주셨고, 정밀검사를 추천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출산 직후 콜레스테롤, 고지혈증을 조심해야 한다는 코멘트를 들어서 그것만 걱정했는데 영 다른 곳에 문제가 있나 싶다. 심난해도 밥은 해야 하고, 원래 저녁 메뉴로 선택했던 육개장을 끓이기 위해 고사리, 숙주나물, 소고기를 사러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장을 보면서도 뭔가 마음이 서럽다.
집에 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새댁 엄마가 보인다. 우리 딸은 30개월인데 저만치 어릴 때가 언제였나, 벌써 까마득하다. 또 겁도 난다. 나 죽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 딸 40살까지는 내가 살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혼 연령대도 높아지는데.. 딸이 출산할 때는 그래도 엄마가 곁에 있어줘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이든 아니든 나는 그냥 최악을 생각해 두기로 했다. 장 보고 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은 너무 미리 걱정마라며 괜찮을 거라 위로했다.
육개장을 끓일 때쯤까지. 극한상황을 설정해 두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유튜브로 찾아봤다. 경우의 수에 따른 검사와 치료법을 봤다. 다 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우리 가족 구성원 중에서 내가 아파서 다행이다 싶다. 부모님이 아프면 연로해서 더 지치실 거고, 남편이 아프면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클 테고, 아이가 아픈 건 상상하기도 싫다. 그냥 내가 아픈 거라 다행이다 싶은 차에 유방전문 병원에서 접수확인 전화가 왔다. 나는 다음날 오전 아이 어린이집 등원 후 10시 반에 예약을 했다.
24년 04월 12일 (금)
어제보다 마음이 가볍다. 미세먼지도 좋음이고 날씨도 맑다. 검진기관에서 받은 CD를 들고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요즘 뭐 드세요?"
네..?
너무 당황스러운 첫 질문이다. 한의원도 점집도 아닌데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라면과 과자를 자주 먹었는데... 그게 문제가 될까?'라는 생각에 대답하려던 차,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콜라겐, 글루타치온, 홍삼, 석류... 이런 거 먹나요?"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1년 전쯤부터 영양제를 챙겨 먹고 있었는데, 6개월 전부터 아주 전투적으로 꼬박꼬박 많이 먹었다. 남편, 아이밥은 건강식으로 주려고 해 놓고 나는 귀찮아서 라면이나 과자로 끼니를 때우며 죄책감에 영양제는 더 자주 먹었다. 그중에 필수로 빼먹지 않은 것이 효소, 글루타치온(콜라겐)이다.
맙소사.
매일매일 꼬박꼬박 글루타치온(콜라겐)을 섭취한 결과 여성호르몬을 자극하여 내 혹의 모양이 변한 것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유산균 포함 모든 영양제를 다 끊고 운동과 영양식단을 유지하며 6개월 뒤에 다시 초음파를 하자고 하셨다. 유방과 자궁, 난소는 함께 가는 것이고 이 세 가지는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콩류도 가루로 섭취하는 것은 지양하라고 하셨다.
너무 다행인데 생각지 못한 결과라, 더군다나 그 원인이 더 좋아지고 싶어서 섭취했던 약들 때문이라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어쨌거나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24년 04월 15일 (금)
자궁경부암 검진 결과도 나왔다. 큰 문제는 없으나 반응성 세포변화가 있으니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이 역시 추측건대 내가 맹신하며 섭취한 글루타치온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24년 04월 15일 (월)
필라테스 두 번째 시간.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인 것은 좋으나, 운동 후의 개운함이 조금은 아쉽다.
24년 04월 16일 (화)
검진 최종결과가 나왔다. LDL-cholesterol 수치가 157이다. 작년에 139였는데, 고지혈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운동. 운동. 운동을 안 한 결과라고 하셨다. 30개월 아이를 가정보육 하는 동안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자는 새벽에 일어나면 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핑계였을지 몰라도 이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지금부터는 모두 다 할 수 있다. 고지혈증 약은 60일 분이며, 모든 영양제는 다 끊고 고지혈증 약만 복용하기로 했다. 영양제만 의존하며, 운동하지 않고 아무것이나 먹어댄 내 몸이 나에게 전하는 경고였다.
24년 04월 17일 (수)
미혼시절 퇴근 후 했던 요가. 요가를 해볼까 싶어 집 근처 요가원을 검색했다. 그리고 원데이 클래스부터 등록했다. 아이 등원 후 10시 반. 첫 수업. 명상으로 시작하여 수행 후 명상으로 마무리. 허벅지가 타들어갈 것 같고 얼굴 위로 땀이 줄줄 흐른다. 아 너무 짜릿하다. 역시. 이거다. 요가 20회를 등록했다. 앞으로도 쭉 매주 월수금 주 3회 오전에 수강예정이다.
당근 2개. 토마토 2개. 올리브오일 3T. 소금 한꼬집(톡톡톡)
당근 토마토 주스를 만들었다.
나는 금방 만든 따끈한 스프처럼 떠먹는 것이 좋고, 나머지는 500ml 텀블러에 냉장보관 했다가 물을 소량만 섞어서 남편에게 모닝주스로 한잔씩 내어준다.
아이 등원 후 요가원에 다녀왔다. 두 번째 수업인데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무리 명상자세에서 선생님께서 눈에 수건을 덮어주셨는데 훨씬 더 좋았다.
몸에서 경고 메시지를 받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고작 일주일이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면 변화가 없었겠지만 그간의 변화는 상당하다. 내 몸을 생각한 식단을 생각하고 그 메뉴는 남편, 아이뿐 아니라 이제 나도 무조건 함께 먹는다. 매일매일 운동을 한다. 운동을 가지 않는 날, 미세먼지가 좋지 않다면 실내자전거와 훌라후프를. 공기가 좋다면 근처로 등산할 예정이다. 또 바뀐 것이 있다면 잠깐의 짬이 날 때마다 모바일 넷플릭스가 아닌 유튜브 영어채널을 듣는 것이다. 이것 또한 평생을 미뤄둔 영어공부를 일상에서 채워가는 느낌이라 매우 만족스럽다. 설거지할 때, 청소할 때, 운전할 때 모두 영어채널 강의를 듣는다.
비록 이른 나이에 고지혈증 약을 먹어야 하지만, 점점 더 건강해지는 내가 기대된다. 그리고 아직 맛보지 못한 더 멋진 2막 인생이 나의 노력에 따라 곧 다가올 것 같은. 그런 감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