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가짜로 판단할 수 없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개봉: 2018. 7. 26.
감독: 고레에다히로카즈
출연: 릴리프랭키, 안도사쿠라, 키키키린, 죠카이리, 마츠오카마유, 사사키미유..
줄거리: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꾸준히 가족 영화를 찍어왔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등등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전개-갈등-해결의 카타르시스가 있는 가족영화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물론 그들의 일상에서는 소소한 웃음과 행복이 존재하지만 어딘지 평범하지 않다. 아들을 잃고 고인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하루, 방치된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족, 아들이 뒤바뀐 두 가족.. 상실, 범죄, 상처가 존재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도 많다. 그렇다고 불행한 가족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거나 고발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가르지 않고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일체의 도덕적 판단은 없다.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기에 인간사는 너무도 복잡한 것이다.
올 여름에 개봉한 '어느 가족'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생판 남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화내용을 인용하면 '서로를 선택한 가족'이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족이다.
유곽에서 일하는 노부요는 손님으로 왔던 오사무와 연인이 되고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정당방위로 노부요의 남편을 죽이고 시신을 뭍는다. 그리고 어떤 연유로 만났는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혼자가 된 할머니(키키 키린)의 집에서 얹혀 살며 할머니의 연금을 쓴다. 그러나 카메라에 이것을 비난하는 시선은 강하지 않다. 아키만이 노부요와 오사무를 종종 차갑게 바라보며 할머니의 연금을 노린다고 말한다.
아키는 할머니의 남편이 새로 차린 살림에서 태어난 아들 부부의 큰 딸로 고등학생이지만 학교도 다니지 않고 할머니 집에서 같이 살며 가슴을 흔들고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번다. 아키가 할머니와 사는 이유는 할머니가 같이 살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키가 할머니와 사는 진짜 이유가 영화를 보며 가장 궁금했다. 왜 이 가족에 '아키'라는 구성원이 필요했을까? 영화에서 아키는 할머니의 옆자리를 좋아하며 '할머니는 따뜻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키의 원래 가족은 아키가 느끼기에는 따뜻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어느 가족'에서 아키만이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보이는 부유하고 화목한 가족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부모님에게 유학간 것으로 꾸미고 생판 남인 할머니와 사는 것이다. 도대체 왜? 라고 물을 만 하지만 단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인간 내면은 복잡한 법이니까. 아키의 존재는 충분히 괜찮은 가족임에도 벗어나고 싶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피로 이어지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가족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럼 할머니는 연금을 빼앗기며 살아도 좋을 만큼 외로운 불쌍한 노인내인가 하면 아니다. 할머니는 아키에게 항상 따뜻하고 위로가 되지만 사실 할머니는 매달 아키의 부모를 찾아가 불편하게 만들고 돈을 받는다.
이런식으로 이 가족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로,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범죄인지 사회정의구현인지 판단할 수 없는 이중성과 복잡성이 존재한다.
오사무는 차에 방치되어 있던(오사무의 발언이므로 단순 납치일 가능성이 크다.) 남자아이를 구해 자신의 본명인 쇼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들로 여기며 키우지만 물건을 훔치는 방법을 가르치고 학교도 보내지 않는다. 거기에 아동학대범 부모로부터 가출한 유리까지 데리고 와 대가족이 된다. 살인, 납치, 도둑질, 협박으로 이루어진 가족.
그러나 이들의 일상에도 행복은 있다. 유리가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노부요는 행복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선택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피로 이어진 가족보다 더 강한게 아닐까. 유대감 같은 거 말이야."
실제로 이 가족은 화기애애한 편이다. 바닷가에 놀러간 이 가족을 보면 할머니, 아빠, 엄마, 이모, 아들, 딸로 이루어진 평범하고 화목한 한 가족일 뿐이다.
행복한 일상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멈칫한다. 할머니가 죽어도 반사회적인 연결고리로 이루어진 가족은 신고할 수가 없다. 법적으로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금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집 마당에 할머니를 묻고 이렇게 다시 평화를 찾나 싶었지만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갑작스러운 사건 외에 진짜 변화는 쇼타의 내면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쇼타는 가게에서 도둑질을 하면서 자랐고 그것이 나쁜 행위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였으나 어느 날 가게주인이 "동생은 시키지 마"라며 과자를 준 일을 계기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오사무에게도 "나도 차의 물건 훔치려다가 데려온 거야?"라며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이 흔들린다. 이처럼 영화에서 '가족'을 가장 먼저 바깥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윤리적으로 옳은지 고민하는 유일한 인물이 쇼타다.
마트에 물건을 훔치러 갔을 때, 밖에 가만히 있으라고 한 유리가 오빠를 돕고 싶었는지 나서서 물건을 훔쳐 들킬 위기가 생기고, 유리를 보호하기 위해 쇼타는 오렌지를 훔쳐 달아난다. 마트 직원에게 쫓기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쇼타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 다행히 다리만 다쳤으나 경찰 및 공공기관은 이 일을 계기로 이 '어느 가족'을 체포하게 된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듯이 어느 가족은 쇼타를 두고 야밤도주를 하려다 체포되는데 이는 결국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던 오사무와 선택한 가족이 유대감이 강하다는 노부요의 언행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반사회적인 이 가족의 한계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영화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름 따듯한 가족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역시 남인 것일까?
쇼타는 퇴원 후, 보육시설에 보내지고 학교를 다니게 된다. 유리는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며 노부요는 살인 및 사체유기, 납치로 감옥에 들어간다. 오사무는 혼자서 지낸다. 여기서 끝났다면 사회 소외계층으로 이루어진 범죄가족의 비극적 결말이겠으나 감독은 그 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항상 그 후의 이야기, 남은 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감독이다. 감독의 자서전에도 나와있듯이 사라진 것과 이어지는 것. 이것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부요를 형사가 심문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노부요는 가해자이기 보다는 피해자처럼 비춰진다. 오히려 형사(이케와키 치즈루)의 관료적인 가치관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동시에 노부요에게도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며 자기 합리화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의 한계를 실감하게 되는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배우에게 자세한 대사와 감정연기를 요구하지 않고 상황과 설정을 말로 전달해서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하는 감독의 스타일은 진정성있는 장면을 만든다. 이 때 노부요의 눈빛과 희미한 미소, 그리고 눈물은 노부요라는 인물이 바라던 것, 그 한계, 체념으로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원래의 가족에게 돌아간 유리는 소통보다는 자신의 편의에 의해 물건처럼 다루는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당에서 멍하니 담벼락 밖을 바라본다. 쓸쓸한 얼굴이 5살의 아이의 얼굴에서 비치는데 이런 연기를 끌어내는 감독이 경이롭다. 어쩌면 유리는 또 가출을 할 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 가족을 흩어지게 만든 발화점이 된 쇼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오사무에게 부탁해 쇼타는 노부요의 면회를 간다. '쇼타 넌 xxx주차장에서 주웠어. 차는 빨간색 도요타 0000. 찾으려면 너의 부모를 찾을 수 있어' 왜 그런 얘기를 하냐며 화를 내는 오사무에게 노부요는 당신도 이제 알잖아라고 말한다. 이 가족의 한계가 계속 보여 마음이 아팠다.
오사무가 혼자 지내는 집에서 자게 된 쇼타. 오사무에게 진짜 나를 버리고 도망가려고 했냐라는 질문에 오사무는 "어..난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 " 라며 웃는다. 노부요에 이어 오사무의 체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오사무는 배웅을 하는데 "그 때, 일부러 잡힌거야."라고 말하고 쇼타는 버스에 탄다. 버스가 출발하자 충격을 받은 오사무는 쇼타를 부르며 애타게 버스를 쫓아간다. 이 때 쇼타는 무심히 또는 결연하게 앞만 바라본다. 그러다 오사무가 뒤에 남겨졌을 때, 쇼타는 창문으로 뒤를 바라보며 "아빠.. 안녕."이라고 속삭인다.
이 때 쇼타는 아이의 얼굴이 아닌 세상으로 나아가는 독립적인 인간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오사무가 평소에 얘기할 때는 아직은 어색하다 말했었다. "너의 가족은 너를 버리고 야반도주를 하려고 했어."라고 형사에게 들었을 때 느꼈던 배신감은 야반도주를 인정하며 아저씨로 돌아갈게라고 말하는 오사무를 마주했을 때, 더 복잡한 심정이 되었을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오사무의 마음과 그럼에도 살기위해 도망치는 이중성을 그 순간 어쩌면 인간 대 인간으로 쇼타는 이해했다.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이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결연한 쇼타의 옆모습과 처음으로 뒤돌아 애틋하게 아빠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지나간 과거를 소중하게 기억하리라는 마음이 동시에 나타나있다.
이 가족은 그저 비극적인 범죄집단이 아니라 한 때, 따듯한 일상을 공유하였으며 나름대로 소통하며 유대감을 형성했던 '어느 가족'이었다. 그러나 유지되어서도 유지될 수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