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성장 서사를 만들어 가는 임선민의 씨네 다이어리
혼자 영화관에 자주 간다. 수많은 커플들이 즐비한 공간이지만, 홀로 영화관에 갔다고 해서 서글프거나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 (정말이다...) 어차피 영화를 보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곁에 앉아 있다고 해도, 상영이 시작되면 영화를 눈으로 바라보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오롯이 나 혼자의 몫이다.
오히려 고독이 밀려오는 순간은 영화가 끝난 다음이다. 내가 본 영화에 대해 함께 얘기할 사람이 곁에 없을 때,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특히나 어려운 영화 앞에서 길을 잃었을 때. 드넓은 영화의 바다를 함께 헤처나갈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 꼴을 보다못한 비디오 편의점 사장님은, 젊은 놈이 청승 그만 떨고 제발 어디가서 친구도 좀 사귀고 그러라며 등떠밀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영화 모임 ‘항해자들’이었다. 영화적 모험을 떠날 동료를 모집한다는 유치한 제목의 모집글을 보고 열댓명의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함께 보기 시작했다.
‘항해자들’에서 만난 사람들 중 선민이는 여러모로 독특한 친구였다. 모임을 시작한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보면 달라진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분석력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건 내가 감히 비교하고 평가할 문제도 아니다!) 그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영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영화가, 혹은 영화를 보는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텀블벅에서 마케터로 분주히 일하면서도 영화를 열심히 챙겨보는, 우리의 영화친구 선민이를 주말 오후에 만났다. ‘항해자들’ 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진영이도 인터뷰어로 함께 대화에 참여하였다.
오는 길에 ‘항해자들’ 모임 시작하면서 올렸던 글을 다시 봤는데 정말 오글거리더라. 그런 글을 읽고도 모임을 함께할 생각을 했다니. (웃음)
작년 3월 즈음부터 혼자 영화를 보러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게 계기가 된 것 같아. 전에는 몰랐는데, 혼자 보니까 영화가 정말 재밌더라고. 일주일에 네 번이나 영화관에 간 적도 있었어. 그러다 6월에 ‘항해자들’ 모임을 함께하게 됐지.
그 전에는 영화보러 혼자 간 적이 없었어?
그땐 연애를 할 때였으니까... (눈물) 가족이나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데이트를 하려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정말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간 일은 드물었던 거 같아. 영화관에 혼자 가는 건 생각도 안해본 일이었지.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니까 그 전과 어떤 점이 다른 것 같아?
누군가와 같이 영화를 보려면 취향을 타협해야 하잖아. 예를 들어서, 나는 <곡성>이 개봉했을 때 진짜 보고싶었는데, 친구는 죽어도 무서운 영화는 못보겠다는 거야. 그럼 혼자 가서 보면 되는데, 그 생각을 못했던 거지. 한 번은 겨우 설득해서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을 보러 갔는데, 다음날 친구는 왓챠에 별점을 1점 줬더라고. (웃음) 혼자 보면 남의 취향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좋은 것 같아.
그러다가 우리 모임을 시작하면서 다시 영화를 함께 보게 됐잖아. 해보니까 어때?
일단 혼자 영화볼 때는 이 장면이 어떤 의미고, 그 다음 장면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등등 디테일한 부분들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진 않았거든. 그런데 친구들하고 얘기를 하려면 영화에 대해 여러 번 곱씹어봐야 하잖아? 그러다 보니 생각하는 힘이 많이 는 것 같아.
영화보다 좋은 건
영화를 함께 보는 경험같아
우리 예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태어나기는 했지만>을 보러간 적 있었잖아. 사실 음악도, 대사도 없는 무성 영화라고 해서 걱정 많이 했거든. 한 시간 반을 집중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조용하던 극장에서 다같이 웃고 소리지르며 보다 보니, 끝까지 재밌게 볼 수 있었어. 같이 보면 더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일종의 영화적 체험이었지.
집에서 혼자 봤으면 중간에 끄지 않았을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보러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지. (웃음)
함께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는 뭐였어?
첫 모임 때 같이 봤던 파올로 소렌티노의 <유스>. 기억하기로는 우리 모임 중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웃음) 정작 회사에서 디자이너한테 <유스> 얘기를 했더니, 가장 재미없게 본 영화 중 하나라고 말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
그럴 때 좀 당황스럽지 않아? 나는 좋은데, 남들이 다 싫다고 말할 때?
예를 들면, 난 <캐롤>에 그다지 큰 감명을 받지 못했거든. 그런데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캐롤>을 보고 울었다는 거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긴 했지만,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거든. 왓챠에 별점도 3.5점 줬는데, 다른 사람들 평점이 엄청 높은 거지! 그래서 별 4개로 슬쩍 수정하고. (웃음) 또 속으로 생각하기론 4점까진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영화를 잘 몰라서 그런 건가, 하고 스스로의 평가를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영화볼 때 자신의 감정 상태에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 나도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하니까, 임대형 감독님이 이상하게 보시더라고.
맞아, 코미디 영화 보고 울 수도 있는 거지 뭐.
최근에 영화 보다가 울컥한 경험이 있어?
영화의 장소성 때문에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이 많은데.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봤던 <개의 역사>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그랬어. 영화가 좋아서라기보단 영화 속 장소들 때문에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
대학 다닐 때 후암동이 가까이 있어서, 그 동네가 지난 몇 년 간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봐왔거든. 후암동이 재개발되면서 소중한 것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다시 영화에서 마주하게 되어 맘이 아팠어. 대학생 때 관심있게 지켜봤던 정릉동이나 둔촌동 같은 재개발 지역들도 생각이 나고. 그 기억들과 영화가 맞물리면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 밀려오더라고. 영화보는데 계속 눈물이 나더라.
언제부터 재개발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거야?
5년 전인가, 시험공부를 하기 너무 싫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게 성북문화재단에서 하는 시민문화기획 교실이었거든. 지역의 자산과 다양한 문화 기획을 연결하여 장터도 열고, 지역 문화를 기록도 하는 프로젝트였지. 재미있어 보여서 바로 신청했어.
2013년 여름, 한 달 내내 정릉과 성신여대 일대를 살다시피 들락날락 했는데, 그러면서 서울의 재개발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 같아.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예전처럼 자주 정릉동에 가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동네를 좋아하거든. 그래서 협동조합 ‘성북신나’에 후원을 시작하고 조합원으로 가입도 하게 되었지.
선민이는 서울 사람은 아니잖아? 근데 서울의 동네들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게 신기해.
맞아, ‘성북신나’ 조합원 중에 경기도민은 아마도 나뿐이 아닐까 싶기도 해.
어릴 때의 경험이 큰 것 같아. 서울에서 태어나서 4살즈음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경기도민이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어릴 때 왕십리나 답십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이사간 후에도 답십리 할머니 댁을 오가곤 했는데, 그 당시의 골목이나 동네에 대한 기억들을 부모님과 얘기하다보면 들어맞는 구석이 많은 거지. 영화 <아파트 생태계>에서 다룬 것처럼 지금은 많이 변해버린 동네지만. 그때의 기억 때문에 옛모습을 간직한 서울의 동네들에 애착을 갖게 되는 것 같아.
어릴 때부터 지도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어. 아빠가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셔서 집에 지도책과 가이드북이 많았거든.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면서 맛집 정보만 찾아보곤 했지.
어릴 때부터 맛집 천재였군. (웃음) 가이드도 되게 잘 할 것 같아.
동네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잘할 것 같긴 해. 예를 들면, 수원시 우만동이 왜 우만동인지 아는 사람? (웃음)
그 동네의 이야기에 덧붙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게 좋아. 얼마 전에 ‘항해자들’들 모임 친구들과 둔촌 주공아파트에 다녀온 적이 있었잖아? 난 어렸을 때 아빠 친구 분이 사시던 아파트라 종종 와서 놀던 기억이 있거든. 몇 십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오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이제 사라질 장소지만, 거기에 우리의 추억도 보태어 지는 거지. 둔촌동이 우리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 거잖아! 근데 이제 영화 이야기를 더 해야하지 않을까? (웃음)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주변에 알리고 같이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잖아.
그런 마음이 없진 않은데, 나만의 취향, 나만의 영역으로 남겨놓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 음악이나 영화 취향이 마이너해서, 내 얘기에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적다 보니 이런 마음이 굳어진 거 같기도 하고.
왜 나만의 영역으로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연애를 할 때 상대방과 나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상대방은 내가 아닌 타인이니까, 당연히 갈등이 생기게 되는 거고. 지난 연애를 돌이켜보면,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잘 안돼서 힘들었어.
그런데 매번 연인과 같이 보던 영화를 혼자 보게 되면서 그게 가능해진 거야. 원래 영화는 그와 함께 향유해야만 했던 영역이었는데, 혼자 영화를 보게 된 순간 독립적인 취향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 거지. 누군가는 싫어할 영화들이지만, 그와 상관없이 나의 취향을 마음껏 즐기고 발산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더라고.
영화를 통해 나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조현훈 감독(의 성추행 사건) 일 때문에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꿈의 제인>이 내게는 그런 영화였어. 영화의 소현이 어릴적 나와 너무 비슷해 보였거든. 원래 나도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고 걱정하시기도 했어. 그래서 소현의 답답한 모습을 보는 게 내 자신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단 말이야.
그런데 신기하게 그게 내가 가장 미워하는 나의 모습인데, 소현의 행동들은 이해가 되더라고. 어쨌든 그게 내 모습이니까. 여전히 밉긴 한데, 이상한 동질감이 작동하는 거지.
영화 속 주인공들을 이해해보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인 거 같아. 짜증나고 이상한 주인공들이 많잖아. 그런 연습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속상하게 하더라도 ‘내가 못나서, 나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닐거야’ 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오해의 폭을 줄이는 것이 곧 행복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나의 호불호를 명확히 밝히는 것도 중요한 일이잖아? 그래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히되, 나에게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연습도 계속하는 중이야.
그럼 이번엔 ‘나만의 영역으로 남겨놓고 싶은 영화’들을 꼽아보자.
좋아! 사실 미리 생각해온 리스트가 있는데, 뽑다보니 다섯 편 중 네 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더라고. (뿌듯)
텀블벅 얘기를 안할 수 없겠는데. 마케터로서 텀블벅에서 만드는 영화들의 홍보를 선민이가 많이 해주고 있지?
사실 나도 영화 모임을 함께 하기 전까지는 텀블벅 영화 카테고리의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지 않았거든. 그런데 ‘항해자들’ 모임에서 한국 독립 영화들을 같이 보다보니 좋은 영화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영화 모임 덕이 정말 큰 거지.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감독님을 인터뷰하기로 했다고?
텀블벅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장편 영화 <졸업>이 국내 경쟁 부문에 진출해서, 허지예 감독님을 만나기로 했어.
텀블벅에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들이 많더라고.
그런데 자기 영화를 매력적으로 잘 소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그게 늘 아쉬워.
텀블벅에 올라오는 영화들은 배급사나 마케터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 않나보네.
그런 경우도 있는데, 보통 감독이 직접 마케팅까지 해야하는 경우가 더 많지.
원래 예술이라는 게, 말로 다 설명 되어버리면 매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우리는 창작자와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야.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것 자체가, 불특정 다수인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성사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일도 잘해야 한다는 거지. 사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비판이 많기는 해. 대중 예술이 아닌 순수 예술의 경우는 혜택을 받기가 너무 어려우니까. 그런 점에서 나도 늘 고민이 많이 되기는 해.
요즘 선민이가 페이스북에 쓰는 글들을 보면, 성장 서사라고 할 만한 글들이 많더라고.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원래는 영화가 내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아서 영화를 많이 봤던 것 같아. 예를 들면 <파니 핑크>의 파니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잖아. 인기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나 여성이 느끼는 성적 욕망이 잘 녹아있는 영화지.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
그런데 최근들어서 그런 의존에서 많이 벗어나게 된 것 같아. 스스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거든. 날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게 큰 트라우마로 따라다니기도 했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일 년 가까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왔는데, 이제 그 결실을 맺게 된 게 아닌가 싶어.
인기가 많지 않으면 뭐 어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한 거 같아.
내가 갖고있지 않은 걸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니까 한결 편안해진 것 같아.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라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거기서도 가정 주부로 살아가는 스즈메(참새)가 화려한 삶을 사는 친구 쿠자쿠(공작)을 늘 부러워하잖아. 그런데 결국 깨닫게 되지. 화려해보이는 삶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보니 쿠자쿠가 스즈메의 평범해보이는 삶을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물론 부러움이라는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가 생각나는 걸?
나는 성장 서사 말고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자꾸 내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고. 글에 ‘나’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건 우울한 상태거나 관심이 자기 내면에 쏠려있다는 신호라던데. 내 자신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해. ‘다른 사람들은 보기 지겨울텐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쓰게 되지. (웃음)
자기 이야기에도 정해진 분량이 있는 것 같아. 예컨대 고등학교 시절과 재수생 시절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많이 얘기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안하게 되더라고.
그 시절의 자기 자신을 연민하고 있으면 계속 그 모습에 천착하게 되는 것 같고, 거기서 벗어나서 ‘이 모습 또한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야’ 라고 인정하게 되면 좀 편해지는 것 같아. 그런데 난 항상 발전해야 한다는 욕심이 강한 사람이다보니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
진지한 이야기 말고, 재밌는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이 또한 내 모습이겠지, 하하.
진지한 이야기 밖에 할 줄 모른다고 했지만, 선민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인터뷰가 어느새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연초부터 선민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신기한 건 매번 열심히 관찰한 다음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다시 보면, 선민이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 관찰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매순간 성장을 거듭하는 사람이라면 시나리오가 실제 인물을 따라잡기 불가능한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싶다.
원래 시나리오 초고에서 생각했던 선민이의 캐릭터는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초고를 다 쓰고 선민이와 이야기를 하는데, 깜짝 놀랄만한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시놉시스를 다시 고쳐쓸 수밖에 없었는데.
자기 감정을 언어로 정확히 표현해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다
오늘 만난 선민이는 아주 정확한 단어와 문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해냈다. 선민이의 말대로 이것은 자기와의 부단한 싸움과 노력 끝에 얻어낸 결실이다. 영화는 그저 거들었을 뿐. 그녀의 영화 친구로서, 선민이의 성장 과정을 매순간 함께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녀가 성장하는 만큼, 우리도 많이 배우고 자라기 때문이다.
시네필의 초상은 영화를 전공하거나 영화업계에 종사하지 않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글은 자유롭게 공유하셔도 좋지만, 사진 사용에 대해서는 아래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이메일로 문의 주세요.
인터뷰 길중 진영 동규(헤아리는 사진기)
이메일주소 connected.jeon@gmail.com
헤아리는 사진기
인스타그램 @hae.pic
이메일주소 devin.yoon171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