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의 윤리적 설계를 요구하는 <소셜 딜레마>의 불편한 진실
물질문명의 시대란 역설적이게도 몸이 물질을 누리지 못하는 시대이다. 이제 육체가 물질을 접촉하는 순간이란 저 스냅 동작의 짧은 순간뿐이다. 우리는 어디서나 단추를 누른다. (중략) 글을 쓰기 위해서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도 위층에 올라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단추를 누른다. 우리의 육체가 물질과 교섭할 때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각들은 이제 누름 단추의 탄력으로 통일된다.
-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에서
(보통 꺼낼 필요 없이 손에 이미 쥐고 있지만) 스마트폰을 꺼낸다. 화면을 터치해 새로운 알림이 없나 확인한다. 잠금 해제하여 인스타그램 앱을 연다. 새로운 스토리 몇 개를 열어보고 피드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유투브, 페이스북, 트위터도 차례로 열고 스크롤하고 열고 스크롤한다. 이제 더 볼 게 없는데. 카카오톡 앱을 연다. 메시지 몇 개에 답을 한 뒤 친구 목록을 쓱 내려본다. 이 친구는 잘 사나? 프로필도 몇 개 눌러보고. 이번에는 #카카오 피드를 둘러볼까... 다시 탭하고 스크롤.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수십 번, 수백 번 버튼을 누르고 스크롤을 내린다. 황현산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는 많은 일들이 스냅 한 번으로 해결되는 세상을 산다.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새로 산 물건도 저녁에 먹을 음식도 받아볼 수 있다. 빨래와 운전, 청소까지 움직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이제는 그 단추마저 사라져 완벽히 매끈한 화면으로 대체되었다. 무한한(Infinite) 화면이 삶의 많은 부분들을 대체하고 있고 우리는 많은 시간을 이 작은 스크린 속에서 보낸다.
매번 특별히 할 일이 있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그냥, 정말 습관처럼 들여다보고 만지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떠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는 철저히 계획된 UX의 산물이다. 와타나베 게이타 교수가 쓴 <아이폰 이후의 UX>라는 책에 따르면 아이폰의 매끈한 기능은 사용자가 단말기를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화면을 누르고 스크롤하는 동작을 신체 활동의 연속처럼 느끼도록 디자인 했다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건 디지털 시대의 다리떨기인 셈이다!
와타나베 교수는 매끈한 UX의 핵심이 자기 귀속감이라고 설명한다. 아이폰을 비롯한 오늘날 디지털 기기 UX는 터치에 필요한 압력과 스크롤의 속도를 조절하여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만지고 조작하는 직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내가 직접 만지고 제어할 수 있다는 경쾌함이 매끈한 인터페이스의 핵심이다. 어떤 목적도 없이 스크린을 누르고 움직이는 행위가 즐거움을 주는 이유다. 반대되는 예시는 애니메이션(또는 영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은 불편하고 무거운 타자다.
지하철에 앉아 다리를 떨면 옆 사람이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 보는 사람의 주의가 산만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다리를 떠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어 보면 어떨까. 간단하다. 화면을 켜고 탭하고 스크롤. 다시 탭하고 스크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새로운 무의식적인 습관에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이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는 실리콘 밸리 산업의 역군들이 나온다. 구글,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만들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는 윤리적이지 않다
이들이 소셜 미디어의 윤리적인 설계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SNS가 인간의 깊숙한 심리를 건드리고 조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IT 회사들은 심리학적, 인류학적 기법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시스템을 설계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콘텐츠를 보게 할까? 사용자들이 앱을 좀 더 오래, 길게 사용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광고에 대한 구매 전환율을 높이려면 무슨 콘텐츠를 같이 보여주는 게 좋을까? 축적된 개인 정보와 다양한 A/B 테스트를 활용해 즉각적인 사용자들의 행동을 유도한다.
IT 스타트업 업계에서 고전처럼 읽히는 책 <훅: 습관을 만드는 신상품 개발 모델>에서 니르 이얄은 네 단계의 심리적 보상 쳬계를 통해 서비스를 고객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선 고객의 욕구, 즉 트리거(Trigger)에서 출발한다.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행동(Action)을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핵심 가치가 된다. 그 다음이 중요한데, 가변적 보상(Variable Rewards)로 서비스에 좀 더 집착하게 만드는 단계다. 책에서는 동물 실험이나 카지노를 예시로 든다. 마지막으로 사용자가 서비스에 무언가 투자(Investment)하게 하여 더욱 떠나기 어렵게 묶는다.
이러한 메커니즘 자체가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중독과 집착을 만들어내는 서비스 디자인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강력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니르 이얄 또한 책의 말미에 다양한 앱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습관이 고객에게 유용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에 대한 위기론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는 것일까? 운동 중독이나 기록 중독, 독서 중독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죽은 나무가 살아있는 나무보다 더 가치있는 세상입니다. 죽은 고래도 살아있는 고래보다 더 가치 있고요. (중략) 이제 우리가 나무이고 고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채굴될 수 있어요. 우리의 삶을 더 값지게 사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화면을 보는데 쓰고 더 많은 광고를 본다면 기업에게 더 이익이 되는 거예요.
- Justin Rosenstiein, <소셜 딜레마> 중에서
구글의 디자이너 제이크 냅과 존 제라츠키는 <메이크 타임>이라는 책에서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을 주의하라고 한다. 인피니티 풀이란 우리의 주의력과 시간을 무한하게 소비할 수 있는 자극 요소를 말한다. TV나 유투브가 대표적이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휴대폰이나 이메일 알람도 포함된다. <메이크 타임>은 이런 인피니티 풀을 제거해야 한정된 주의력을 값진 삶을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글 디자이너가 말한다. 지메일 앱을 지워라!
왜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것일까? 더 많은 고객의, 더 많은 시간을 빼앗아야 기업이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딜레마>는 우리에게 묻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의 광고주들은 돈을 내고 무엇을 사는가? 그들은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SNS는 우리가 시간을 가치있고 생산적으로 보내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인피니티 풀에 빠져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게 해야 하기 때문에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피드에 지속적으로 노출한다.
우리가 상품이 되는 겁니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집중력과 주의력이 약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위험은 소셜 미디어가 제공하는 보상이 가짜 보상이라는 점에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댓글과 같은 가변적 보상에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소셜 딜레마>는 이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다룬다. 2010년대 들어 미국 10대 소녀의 자살율 급증이 소셜 미디어 사용량 증가와 유사한 패턴을 그리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가짜 보상이 가짜 자존감을 만들고 무너트린다.
<아름다움의 구원>에서 한병철 교수는 디지털 미(美)를 자연미와 대비하며 "불쾌한 타자가 완전히 제거되어 매끄러운 상태"라고 정의한다. 예쁘고 보기 좋은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낯섦 또는 불편함을 경험함으로서부터 느끼는 아름다움이 있다. 예컨대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종종 사진에 담긴 날선 상처 때문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와 익숙한 세계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으로 불쾌한 타자를 사전에 제거한다.
매끄러움은 제프 쿤스의 조형물들과 아이폰과 브라질리언 왁싱을 연결해준다. 오늘날 우리는 왜 매끄러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중략) 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Like)를 추구한다. 매끄러운 대상은 자신의 반대자를 제거한다.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중에서
<소셜 딜레마>는 이러한 소셜 미디어의 특성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마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유투브, 인스타그램의 피드는 내가 좋아요를 누르고 자주 본 콘텐츠와 비슷한 생각과 주장들을 피드에 추천하여 보여준다. 알고리즘이 만든 익숙함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가짜 뉴스에 쉽게 휘둘린다. 사람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가짜 뉴스에 속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구글 검색창에 "기후 변화"라는 키워드를 입력했다고 가정해보자. 구글 검색 엔진은 "기후 변화는 심각하다"라는 키워드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후 변화는 거짓말이다"라는 검색어를 추천해줄 수도 있다. 어떤 추천 검색어를 보느냐에 따라 접하게 되는 정보는 완전히 상이하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검색 엔진의 갈고리(Hook)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기후 변화에 대한 구글의 의견은? 중립적이다. 기업에 이윤이 되는 방식으로 검색 결과를 제공할 뿐이다.
사용자의 관점보다 IT 서비스를 만드는 직업인의 관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거대한 추천 알고리즘 앱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고객과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면밀히 따져보는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 생업이라는 것이 매일 반복되다 보면 무뎌지기 쉬운 법이다. 스스로 만든 서비스와 자신이 속한 회사를 비판하며 목소리를 낸 <소셜 딜레마> 출연진, 제작진처럼 직업 윤리에 대한 자기 검열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나의 시간을 채굴당하지 않고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메이크 타임>은 인피니티 풀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87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간단 가이드는 메이크 타임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핵심은 잠시라도 통제력을 되찾아와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 동안 스마트폰의 모든 소셜 미디어 앱을 지워본다면?
<소셜 딜레마> 팀이 주장하는 것은 좀 더 강력한 행동과 변화이긴 하다. 환경 오염 기업에 대한 규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채굴하는 소셜 미디어 기업에 대해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규제의 방식과 방법에 대해서는 오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소셜 딜레마>가 던지는 질문은 비단 실리콘 밸리와 IT 업계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윤 창출과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허용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죽은 나무와 죽은 고래를 더 가치있게 여기던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