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러 가는 것이다
"You can Change Your Organization or Change Your Organization."
(직장을 바꾸거나, 아니면 직장을 바꾸거나)
- Martin Fowler
얼마 전 회사를 떠났다. 직장 생활 4년차에 두 번째 이직. 몇몇 지인은 벌써 회사를 옮기냐고 놀라기도 했다.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다. 첫 번째 이직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그땐 회사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이 맞지 않았지만 내가 바꾸거나 제안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무력감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커리어 디자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잘한 일이지만, 분명 아쉬움이 남는 신입 시절이다. 인턴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게 이 회사가 첫 사회생활이었다. 어떻게 일하는 게 잘하는 건지 전혀 몰랐다. 주변 어른들의 조언은 시키는 대로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것이었고, 나의 가능성과 한계 또한 상사들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다른 부서로 옮겨보고 싶다는 이야기 한 번 꺼내보지 못했다.
회사 대표님이 공유해주신 글 중에 애자일 컨설팅 김창준 대표님이 쓰신 <파랑새 신드롬>이라는 글이 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꺼내어 읽었다. 요약하자면 다른 회사, 다른 환경을 계속 동경하며 그걸 핑계로 현재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불평만 가득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산이 아닌가, 다른 산으로 가야지.
여기에는 파랑새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이직이 마려워질 때마다 스스로 물어보았다. 너 혹시... 지금 파랑새를 찾는 거 아니야? 이번에도 도망치듯 회사를 나온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 명쾌하게 답할 수 있을 때까지 퇴사를 보류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회사에 대해서 가장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인가?
불만스러운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회사에 대해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던 부분은 성장을 위한 피드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했던 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기 어려웠던 점을 정리해보았다.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고객창출과 고객만족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든다 :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이러한 기준 수립과 측정없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획자들끼리 스터디를 만들고 서로의 프로젝트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 : 혼자서 다 하기엔 역량도 부족하고 어려운 일이라 동료 기획자, 그리고 회사의 능력자분들께 도움을 청한다.
WHY에 대해 계속해서 묻고 성찰한다 : 과제의 맥락과 배경을 이해하고 Alignment를 맞추기 위해 조직장과 최대한 많이 소통한다.
누구나 이 정도의 노력은 했을지 모른다. 대단한 일들은 아니지만 퇴사하기 전 나의 노력들을 정리해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도망치듯 나가는 게 아니라는 확신도 생겼다. 무엇보다 다음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분명해졌다.
이직을 준비하며 어느 헤드헌터와 통화를 하는데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회사를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가요?
너무 당연한 질문 아닌가? 잠시 당황했던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높은 연봉이나 직업의 안정성, 개인과 조직의 빠른 성장이 주는 성취감, 자율을 기반으로 혁신을 만드는 조직문화, 같이 일하면 즐거운 좋은 동료, 서비스가 사회에 미치는 좋은 혹은 나쁜 영향력. 좋은 회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수많은 조건들이 떠오른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고르라면 다소 망설이게 된다.
현실의 이직 시장에서는 이 조건들을 맞교환(trade-off)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누리기 위해 연봉을 깎아야 할 수도 있고, 보람과 성취감을 위해 워라밸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다 얻을 수 없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내 안에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와 연차에 따라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에 중요하게 생각한 필요조건은 회사의 영향력과 성과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우선 회사가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회사인지 보았다. 그리고 면접에서 회사의 성과 측정 방식을 많이 질문했다. 이전 직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었기 때문에 면접 전형에서 체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물론 면접관들에게 역으로 질문도 많이 받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노력한 만큼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 아쉬움도 크게 느껴진다. 퇴사하기 전 팀원들에게 넷플릭스의 부검 메일(Netflix Post mortem) 양식을 본떠서 메일을 보냈다. 배운 점과 고마운 점, 아쉬운 점,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많이 그립겠지만 지난 2년의 시간과 추억을 연료 삼아 달려봐야지.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다른 팀 동료들께 퇴직 인사를 드리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지금처럼 좋은 팀원들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 거야"였어요. 제가 생각한 우리 팀원들의 가장 큰 장점은 팀워크와 회복탄력성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두터운 신뢰로 똘똘 뭉쳐 일하면서 시너지가 날 때 저도 일하는 게 즐거웠고, 좋은 스포츠 팀처럼 티키타카가 잘 이루어질 때 행복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뜻하는 대로 진행된 것도 아니었고 어려운 일도 많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긍정적인 팀원분들 덕분에 저도 다시 두 다리에 힘을 넣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긍정 넘치는 에너지가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 나의 퇴사 메일(AKA 부검 메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