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주문(呪文)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거에요. 언제나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중략)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 김초엽, <감정의 물성> 중에서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다. 물리적으로 나의 우주가 탄생한 날이긴 하지만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건 나날이 만난 인연들이니까. 생일을 핑계 삼아 고마운 이들과 연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서른 살 생일이라고 해서 별다르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회사 일에 지쳤던 터라 서른이나 서른 한 살이나 크게 다를 바 있을까 싶었다. 20대를 마무리하고 30대로 넘어가는 문턱의 시간을 특별하게 보내는 이들도 많지만 별 생각이 없었다. 나혜에게 생일 선물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20대와 30대. 시간을 분절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곱씹어보기 편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지. 이번 달은,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냈지. 그러나 십 년의 시간을 한 번에 돌아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애당초 의미가 있는 일도 아닌 것 같다. 스무 살 대학 새내기 시절과 스물 둘셋의 군생활 사이의 간극은 크다. 복학생으로 대학에서 보낸 시간과 사회 초년생의 회사에서의 시간을 한데 묶어 생각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20대니 30대니 한 시대를 구분 짓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오후에 휴가를 내고 해방촌의 어느 카페에서 나혜와 만나기로 했다. 바쁜 와중에 휴가를 낼 수 있어 감사했고 사랑하는 이와 즐거운 오후를 보낼 생각에 들떴다. 택시를 타고 나혜가 알려준 장소로 갔는데 카페 문이 닫혀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 건물에 카페가 없었다. 잘못 찾아왔나 싶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2층으로 올라오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지, 이게 무슨 일이지.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 나혜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20대와 30대. 사람들은 왜 경계를 나누는 걸까. 인류학에서는 삶에서 몇 차례 겪는 경계를 넘는 의례를 중요하게 다룬다. 예컨대 결혼식이나 세례식, 입학식 같은 의식을 말하는 것인데 문지방(Threshold)을 넘는 행위로 비유하기도 한다. 어디서나 행해지는 통속적인 행위들이 누군가에게는 성스러운 일생일대의 순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문지방을 딛고 문을 통과하는 순간, 존재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세속인이 종교인이 되기도 하고 민간인이 군인이 되기도 하는 마법의 순간.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마법의 공간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은은한 향내음과 책향기, 오래되지 않은 가구 냄새 같은 것들이 제일 먼저 느껴졌다. 손님을 맞는 고요하고 따스한 공간의 공기에 잠시 숨이 멎었다. 짧은 복도를 지나 블라인드를 걷으니 세로로 길게 뻗은 오크색 책꽂이에는 갖가지 서적이 꽂혀있었다. 마침내, 깊고 작은 책의 숲 속에 내가 사랑하는 얼굴이 놀란 나를 반겨주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게 서재에서의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며.
책을 읽는 것만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전자책을 읽기 어려워하기도 하지만 물성에 대한 집착 때문이기도 하다. 한 서점 직원이 멋진 삶을 살고 싶어 멋진 글을 쓴다고 했는데 멋진 책을 가지고 있으면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황현산 선생님의 통찰을, 김영민 교수님의 철학을.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도 있겠다. 김원영 변호사님의 <실격당한자들의 변론> 같은 책을 곁에 두는 건 본받고 싶은 삶의 태도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영화 평론집들은 아직 영화에 대한 사랑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변론하고 싶은 거겠지.
그러나 대개 한 번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다시 나올 줄을 모른다. 회사 생활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좋아하던 책을 가까이 하는 시간은 줄어만 갔다. 연말이면 서가에 쌓인 먼지를 털며 중고 서점에 팔아버릴까 하다가도 괜한 미련에 결국 그 자리에 다시 꽂아두고 만다. 돈은 통장에 넣어두면 이자라도 생기지. 다시 꺼내어 보지도 않을 컬렉션이 대체 무슨 의미람.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었는데 나혜가 생일 선물로 건넨 건 또 다른 종류의 컬렉션이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와 함께 건네 받은 봉투에는 네 장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디스크가 들어있었다.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이라니! 영화를 볼 때 화질이나 음색을 따지는 편이 아닌 나는 사실 블루레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른 영화광처럼 코멘터리나 추가 영상에 대해 욕심도 별로 없다. 하지만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은 남다른 의미가 있데 바로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10 인터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루레이 회사인 크라이테리온은 영화인들을 크라이테리온 사무실에 초청하여 열 편의 블루레이를 고르게 한다. 봉준호 감독도 (링크)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링크) 리스트를 뽑은 적이 있다. 수많은 영화 중에 단 열 편만 꼽는 이 행위는 열 편 외에 다른 영화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영화가 수두룩할텐데 그 중에 딱 열 개만 고르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놀랍게도 나혜가 골라준 다섯 편의 (한 편은 연말에 미리 선물 받았다) 영화에는 나의 결단이 하나하나 담겨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바라보겠다는 다짐(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미처 알지 못하는 타자의 삶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다짐(로마),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간이 찾아와도 사랑하는 이들과 견뎌내겠다는 다짐(하나 그리고 둘).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꼭 가져가고 싶은 삶의 자세이기도 햇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정의 정수를 담은 영화들이기도 했다. 사랑의 힘으로 어떤 무섭고 힘든 일이라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구치는 순간(펀치 드렁크 러브), 다시 살아갈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그리움(화양연화), 뒤늦게 깨달은 과거에 대한 겸허한 회한(로마)까지. 두고두고 간직하고픈 감정의 순간들이 다섯 편의 영화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김초엽의 단편 <감정의 물성>에서 인물들이 구입하는 감정 물체처럼 그때 그 감흥은 스쳐지나갔어도 영화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열 편 중 다섯 편의 영화를 선물 받았을 때 비로소 컬렉션의 의미를 깨달았다. 책꽂이에 쌓인 수많은 책들과 달리 이 영화들이 소중하게 생각된 이유는 고심 끝에 선별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심해서 골라준 컬렉션이다) 수많은 가치와 감정들 사이에서 이 다섯 편의 영화는 당분간 내게 가장 중요한 선언이자 프로파간다가 될 것이다. 20대와 30대를 구분 짓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들을 받아든 순간 새로운 스타트라인을 그리는 기분이 들었다.
삼십대 전반을 보내면서 아마도 나는 북스테이에서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을 받아들던 순간을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사회 초년생 시절 힘들어하던 내게 임호준 교수님이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것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감내하는 과정"이라고 하셨던 말씀을 종종 생각한다.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할 때마다 다섯 편의 영화를 기준점(Criterion)으로 삼게될 것이다. 나의 초심은 거기에 있다며, 주문처럼 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