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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Feb 16. 2017

가장 밑바닥 뚜껑을 열어보면

직장인,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대신 쓴다


이제 상처 입기 쉬운 순진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자립한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中


* 영화 <단지 세상의 끝>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믿지 마라


신입 사원 연수가 끝날 무렵이었다. 교육 기간동안 많이 의지했던 선배가 있었다. 늘 무심한 척 했지만 면담을 신청하면 내 얘기를 곧잘 들어주었다. 마지막 대화를 청하러 갔던 밤, 그는 내게 굳은 얼굴로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회사에 가거든 그 누구도 믿지 마라. 아무리 네게 잘해주는 좋은 사람이라도 그에게 너의 속마음을 다 보여주지 마라. 그랬다가 어떻게 뒤통수를 맞게 될지 모른다. 그건 분명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다.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여느 신입사원들이 그러하듯,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신입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억눌러왔던 고민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업무에 대한 고민, 관계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 하지만 회사 안에서 이런 얘기들을 입 밖으로 꺼내기란 쉽지 않다.


쫓겨나듯 팀을 떠난 선배도 마지막 날 내게 말했다. 네 갈 길은 알아서 찾아가야 해. 이곳에선 그 누구도 너를 챙겨주지 않을 거야.


다들 하고 싶은 얘기 꼭 참으면서 회사 다니는 거겠지. <미생> (이미지 출처: 허핑턴 포스트)


퇴사 하고 싶다,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날엔 영화를 보러 간다.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싫어하는 영화도 본다. 그리고 평소에 잘 보지 않는 종류의 영화를 고르기도 한다.


이상하게도 자비에 돌란의 영화는 한 편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으니 싫어할 이유도 없는데, 자꾸만 피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미루고 미루다 도무지 볼 영화가 없어 <단지 세상의 끝>을 보러 갔다.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길래 더 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인공 루이는 12년만에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 그는 큰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같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예고된 죽음을 알리러 고향집으로 향한다. 어머니와 형 앙투완, 형수 카트린느, 그리고 여동생 쉬잔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루이가 도착하기 전부터 티격태격 싸우는 가족들. 이들의 감정에 그냥 휘말리면 영화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대화를 섬세하게 들어야 한다.  


자비에 돌란, <단지 세상의 끝> 2016년 작 (이미지 출처: 씨네21)


네가 말하는 거 듣기 지겨워!


바스트 숏 이상의 크기로 크게 인물을 잡는 카메라. 어두운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인물의 표정 외에 거의 없다. 영화는 보여주는 대신 무수히 많은 대사들을 쏟아낸다. 어머니는 옛 추억을 반복적으로 읊어대고, 카트린느는 처음 보는 루이에게 자기 이야기를 소상히도 한다. 앙투완은 툭하면 카트린느에게 쏘아대고, 쉬잔은 그런 오빠에게 화를 낸다. 이상한 가족들. 얼핏 들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직 루이만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는다.


그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 루이는 말을 하러 이곳에 왔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이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나 이제 죽어요, 이 한 마디 말을 입밖으로 내지 않음으로 인해 영화의 서사는 전개되고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실 가족들은 루이의 병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루이가 막 집에 도착했을 때, 카트린느는 루이에게 앞으로 아이를 가지실 일은 없을 거잖아요, 라고 말한다. 잠시 후,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니까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되실지도 모르죠, 하고 말을 바꾼다. 모두가 루이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 집의 팽배한 긴장감은 지속되고 증폭된다.


차를 타고 담배를 사러 가는 길에 루이는 형에게 단둘이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관객들은 루이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할 거라 기대하겠지만, 그는 공항에서 아침을 먹은 이야기를 소상히 한다. 그러자 앙투완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네가 말하는 거 듣기 지겨워! 그따위 이야기 쫑알쫑알 말하는 거, 이제는 듣고 싶지 않다고! 그 말이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말 해, 루이. 그냥 말하라고 제발.


자비에 돌란 감독 (이미지 출처: Louis Quatorze)


자비에 돌란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감독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비에 돌란의 영화가 너무 자아도취적이라고 말한다. (그의 영화를 한 편 밖에 보지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단지 세상의 끝>은 그의 뇌 속을 찍은 영화 같다.


좀고 어두운 집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그것은 내게 감독의 뇌 속에서 부딪치는 아우성들 같았다. '말 해!'와 '말하지 마!' 사이에서의 고뇌. 극 중의 루이는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지만, 영화의 엔딩을 보면 감독의 결심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세상의 끝>은 '내가 만약 그 말을 했다면,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의 감정을 찍은 영화다. (오 루이, 그냥 말하라니까!)


단편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었더랬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의 우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시놉시스와 촬영 계획서를 아무리 고쳐봐도 이야기가 어딘가 성립되지 않았다. 당시 영화를 감수해주시던 지민 감독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의 말은 이러했다.


좀 더 솔직해져야해요


스스로에게 감추고 있는 게 있으니 이야기가 풀리지 않는 거라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없는데. 친구들에게 질문하고, 나 스스로를 수 차례 인터뷰하다보니 꺼내지 않았던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숨기고 있던 감정들, 묻어두었던 과거의 생채기들. 존재조차 잊어버린 채 파묻어두었던 기억의 장독. 가장 밑바닥의 뚜껑을 열어버린 순간이었다.


커다란 스크린에 나의 가장 약한 상처가 드러났을 때, 처음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나의 내면을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어가는 내 목소리를 듣다보니 가슴 속의 큰 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영화를 만드는 거구나. 처음 깨달았다.


어느 친구의 말처럼 나도 영화를 계속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 글을 쓴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후회하지 않게, 일단 두 입술을 떼어 보자.


간단해. 역이 없으면 전차가 거기 멈출 수 없어. 내가 해야 할 일은 먼저 그 역을 머릿 속에 그리고 구체적인 색과 형태를 만드는 거야. 그게 처음 할 일이야. 부족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고치면 돼.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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