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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Feb 11. 2017

용기가 부족했던 거야

허깨비 가득한 세상에서 진짜 이름을 부르다


남의 돈으로 예술하는 새끼...


옆 팀 팀장이 소리지르는 것을 들었다. 예술하는 새끼들이 제일 싫어,하고 쾅 전화를 끊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단순하다. 클라이언트는 A를 요청했는데 아트 디렉터나 촬영 감독이 B를 만들어 왔을 것이다. 영업 팀장인 그는 왜 B를 만들어 왔냐고 다그쳤을 것이고, 제작자는 아마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A보다는 B가 더 나은 거 같은데요!


클라이언트 관리와 매출을 책임지는 AE로서 그가 화를 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식당으로 치자면, 손님이 쫄면을 시켰는데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준 격이니까. 같은 AE로서 그의 분노에 공감하며 끄덕이는 머리와 별개로, 나의 입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술하고 싶었는데


예술하고 싶었는데. 머리 속에 여러 이름이 떠오르긴 했지만 (영화 <버드맨>을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나 다큐멘터리의 거장 에롤 모리스. 모두 한 때 광고를 만들던 사람들이.)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좀 더 근원적인 후회와 푸념이다.


 2015년 가을,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Under the Sun>과 소피아 루바라 감독의 <Inside the Chinese Closet>.


비탈리 만스키, <태양 아래> 2015년 작 (이미지 출처: Icarus Film)


한국에도 <태양 아래>라는 제목을 소개된 바 있는 <Under the Sun>는 러시아 감독인 비탈리 만스키가 북한에서 혁명영화를 찍는 척하며 만든 다큐멘터리다. 극장국가 북한의 거짓과 조작 사이에서 진실의 속살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92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9할은 거짓이다. 인물의 이름도, 역할도, 대사도 전부 위조된 것들이다.


그러나 카메라 뒤편에서 공산당 간부가 컷을 외칠 때, 김일성 연극을 보던 아이가 깜빡 졸 때! 진실이 빛나는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 7살 진미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북한 정권의 폭력성이 온전히 드러난다. 단 하나의 쇼트, 이 진실의 조각을 담아내기 위해 러시아인 감독은 얼마나 긴 고독과 두려움을 견뎌야 했을까.


궁금해졌다. 왜, 무엇으로 그 시간을 버텼을까.


소피아 루바라, <Inside the Chinese Closet> 2015년 작 (이미지 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다른 한 편의 영화. 이탈리아 감독 소피아 루바라는 중국의 성소수자 결혼 시장을 찍었다. Inside the Closet, 즉 커밍아웃 하지 않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위장결혼 시장이다. 남자는 가족의 대를 이으라는 부모의 요구에, 여자는 레즈비언에 대한 이웃들의 힐난에 못 이겨 위장결혼 상대를 찾는다.


인상깊었던 순간. 결혼 준비를 해나가던 남자 주인공 앤디가 갑자기 카메라를 든 감독에게 말을 건다.


"이건 도무지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너무 고통스러워요. 아직 어머니께는 제가 게이라고 말씀도 못드렸어요. 아닌 척 해보려고, 스스로를 부인해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이젠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다, 누군가에겐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얘길 들어줘서 고마워요."


어머니에게도 못했던 이야기


성소수자들을 만나보긴 했지만, 그들의 고통을 단 한 번도 공감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이었다. 친부모에게도 단 한 번도 열어보이지 못했다는 그의 감정들이 떨리는 목소리에 실려 전해졌다. 생각만이 아니라 가슴까지 뒤흔드는 시네마틱 모멘트였다.


예술에 대한 정의야 여러가지로 내릴 수 있겠지만, 진실이 누군가의 진심을 움직이는 순간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소피아 루바라 감독 (이미지 출처: idfa)


영화가 끝나자마자 다짐했었다. 이런 게 하고 싶었어, 이게 진짜 예술이야! 그녀는 어떻게 두 주인공의 마음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했을까? 비밀을 훔쳐내고 싶었고 운좋게 그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겼다. 비법이 뭡니까?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시간이요. 중국에서 5년을 보냈습니다. 3년 동안 중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고, 2년 동안 촬영을 했습니다."


요령 따위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진실의 맨 얼굴을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에서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며, 적은 투자비로 장기간 작업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 남의 돈으로 예술하기란...


내가 해낼 수 있을까?저 젊은 감독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볼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송윤혁, <사람이 산다> 2015년 작 (이미지 출처: 빈곤사회연대)


한국에 돌아와서 잠깐 인턴 기자로 일했다. 서울시에서 서울역 지하도의 홈리스들을 대상으로 집중면담을 시작해서 취재하러 갔었다. 지하도에서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제보가 있었다.


기회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내 힘으로 끝까지 가보자. 그러나 쉽지 않았다. 현장은 거칠었고, 피해자들은 입을 닫았으며, 공공기관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공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난 인턴이라 안 되고, 학생이라 안 되는 거야. 핑계는 있었지만 결국 용기가 없었던 거다. 기사를 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결정을 후회한다.


우연히 다시 그 지하도를 찾았다. 복도 양 옆으로 줄지어 있던 박스집과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깨끗했다. 너무 깨끗했다. 영하 7도의 날씨에 그 많던 홈리스들은 어디로 갔을까. 몸 누일 다른 곳을 찾았을까.


서울역 2번 출구로 나오니 자전거 거치대 한 켠에 그들이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한 무더기의 외투들이 길바닥에 놓여 있었다. 간헐적인 뒤척임 때문에 겨우 그 속에 사람들이 누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추운 겨울에 맨바닥에 누운 사람들이라니... 정말 머리가 어지러웠다.


부끄럽다. 진실에 다가가길 포기했던 그날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글만 쓰는 지금의 내가. 그리고 진정성(Authenticity)이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당차게 말하던 입사 면접날의 내가.


허깨비들 속에서 진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건 오직 용기있는 자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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