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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팔 Jun 25. 2024

당신의 평온은 어디에 있나요?

영화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 리뷰

영화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날 것 그 자체의.


 배우 유준상은 촬영이 끝난 후 힘든 마음을 달래고자 몽골의 고비 사막으로 떠난다.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는 제목을 나타내는 듯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시끄러운 바람 소리가 음향을 채운다. 비싼 마이크로 녹음된 소리가 아닌 탓에 더욱 거칠게 귀를 때린다. 전체적인 화질이나 영상의 연출 역시 잘 꾸며져 있다기보단 흔들림도 많고, 날 것 그 자체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라기보단 유튜브 V-log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기술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아이고 깜짝이야.


 영화를 조금 안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란 영화를 알 것이다. 이 영화는 1896년도에 상영된 최초의 영화로 흔히 알려져 있다. 처음 영화를 본 관객들은 기차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고 너무 놀라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1896년도이니만큼 당연히 소리도 없는 무성 영화였는데, 그 정도의 놀라움을 느끼다니! 요즘 사람들은 소리도 안나는 영상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모습을 봤다는 이유로 놀라지 않는다. 그런 영상이야 당장 손바닥만 한 휴대폰을 몇 번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찾아볼 수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영화도 볼 수 있고,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도 있다. 시장에 직접 가서 물건을 사 오는 것이 귀찮은 일이 되었으니 정말 편리하고 편안한 삶이다. 내가 고민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그저 만들어진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니 놀라운 삶이다. 이런 삶 속이라면 당신은 당연히 평온하겠죠?



平穩 / 便安


 영화를 보며 문득 평온과 평안의 차이가 궁금했다. 사전적 의미도 얼핏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를 본 후엔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편함'의 유무이다. 영화는 편함이 평온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무려 내레이션으로 냅다 뱉어버린다). 물론 편안함에서 평온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편함이 평온을 위한 필수 요소는 아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 발이 푹푹 빠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막. 자연 그대로의 모습, 말 그대로 자연스러움이 그에게 평온을 선사한다. 넓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공기 청정기가 만들어주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기름진 고기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모래바람 속에 평안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란 존재가 혹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곧고 잔잔하지만은 않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망한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왜 저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고 평소엔 믿지도 않았던 신을 괜히 한 번 탓해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만 이런 시련을 누가 준 건 아니다. 삶이란 게 사실 원래 그럴 뿐이다.

영화 <꿈의 제인>의 대사처럼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되어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쭈-욱 이어지는, 근데 행복은 가끔 아주 요만큼 있을까... 말까?' 한 게 인간의 삶이다.

 과학 기술이 너무나도 발전해 우리는 종종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자연이 우리를 만들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 그래서 그와 닮은 울퉁불퉁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런 동질감! 마치 나의 기원을 느끼는 것 같은 경이로움에, 고요하지 않은 자연에서 비로소 평온을 찾게 된다.


편하게나 살자고!


 지방의 본가 뒷산은 작년부터 열심히 공사 중이다. 생태공원을 만든단다. 그래서 산을 폭파하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고 몽땅 다 파헤쳐놨다. 생태라는 것도 '인간이 편하게' 즐겨야 하니까. 편함을 위해 평온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될까?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은 어디에서 편히 즐길 수 있을까? 높은 산 위 녹지 않는 만년설의 신비한 풍경은 어디에서 편히 즐길 수 있을까? 한여름 쿰쿰하고 푸릇한 녹음의 냄새는 어디에서 편히 즐길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가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배우 유준상이 감독을 맡은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 A peaceful Mind Is Not Stillness>는

2024년 6월 30일까지 제21회 서울 국제 환경 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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