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가 배경이 되어
삶을 잠식해 올 때

<로스트 인 더스트> (2016)

by 황유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관한 비극은 인물이나 사건을 넘어 배경처럼 다가온다. 다시 말해, 돈의 비극은 탐욕스런 자본가나 불운한 사건을 만날 때에만 일회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지속된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는 분명 더러운 돈에 분노한 형제의 이야기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극적 사건에 대한 감정의 폭발이나 악당에 대한 복수에서 느껴지는 희열 같은 것은 없다. 더러운 공기를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텁텁함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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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교묘한 계략으로 차압 위기에 놓인 농장을 지키기 위해 은행들을 터는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 두 형제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들이 발딛은 미국의 자본주의는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사건들의 연쇄로 출발했다. 그리고 빼앗은 것들을 통해 더 빼앗을 수 있는 구조를 법으로 만듦으로써(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착취가 삶의 배경이 되도록 만듦으로써) 수호되었다. 깨끗한 강도짓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국가도, 종교도 아닌 더러운 강도짓 뿐이라는 형제의 믿음 속에 준법과 불법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특히 눈 여겨 볼 것은 영화의 서사 구조다. 토비와 태너 형제는 가족의 땅을 빼앗으려는 은행가 개인의 자산이 아닌 은행 자체를 턴다. 그와 동시에 두 명의 경찰관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형제의 분노가 개인이 아닌 체제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뿐일까? 착취에 대한 분노의 범위는 계속해서 확장될 수 있다. 처음에는 개인에게, 그 다음엔 집단으로, 그리고 체제 자체로. 분노의 범위가 커질수록 원한의 대상은 추상화되고, 가해의 책임은 분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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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경찰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스스로의 가치관과는 관계없이 체제가 부여한 역할에 따라 움직였을 뿐인 그들은 쫓고 쫓기는 사이 어느새 서로에게 구체적인 원한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자본은 추상적인 배경이 되어 원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원한 관계를 자본과는 관련 없는 주체들에게로 전가한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의 서사는 자본이 모두의 삶을 잠식할 뿐 아니라 분노로부터 안전하기도 하다는 현실을 비관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 텍사스에만 한정된 현실이 아님을 깨달을 때, 영화는 지독한 씁쓸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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