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똑같아져야 한다는 폭력

<더 랍스터> (2015)

by 황유빈


파시즘의 폭력은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선택지가 개인의 다양성을 품지 못하는 모든 집단과 사회는 파시즘적이고, 따라서 폭력적이다. 영화 <더 랍스터>는 우화적인 설정을 통해 획일적인 규범이 인간의 자유를 강제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부당한 일인지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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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기간 내에 짝을 찾아 결혼하지 못하면 동물이 되는 호텔.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 애쓰는 영화 속 호텔은 연애->결혼이 당연한 경로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다. 연애나 결혼이 인간 행복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음을 어찌 부정하랴. 그러나 그것이 규범으로 강제되는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짝을 찾고, 사랑하는 척 연기해야 하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에는 그저 판타지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현실감이 존재한다.


호텔 밖 공간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는 보다 뚜렷해진다. 호텔 밖 저항군은 연애-결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 그 저항은 연애-결혼의 금지라는 규범의 실천으로 표출된다. 당연하게도, 이 역시 개인에 대한 폭력이며 생존을 향한 분투만을 낳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규범의 폭력은 규범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규범의 강제 그 자체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데올로기에 대한 올바른 저항은 그 정반대의 것을 규범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쪽이든 순전히 개인의 선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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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아질 것에 대한 규범은 사회 대 개인의 관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사회가 결국 관계의 총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의 메시지는 개인 간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 양극단의 규범적 공간을 모두 탈피한 주인공 역시 서로 같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규범에 구속된다. 같아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회의 규범과 같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관계의 규범은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공통점에 기초한 사회와 타인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허구적이고 연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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