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2025)-시원하게 죽을 맛!

by 말 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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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을 보고 왔다. 원작은 <미키 7>이라는 소설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원작을 궁금하게 하는가가 좋은 작품을 가르는 기준 중 하나라면, 영화는 단연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봉준호의 영화 중에서 잔인한 장면이 가장 적고, 시원시원하다.

액션이 시원하다기보다는, 스토리의 전개 방식이 시원시원하다.


지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새로운 행성에는 왜 가는지 같은 SF적 배경 설명이 아주 시원한 모래폭풍 한 컷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한 장면으로 그 배경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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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관계 진행도 제법 시원하다. 명확한 관계의 시작과 끝, 그리고 정의들이 있다.

거기에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가질만한 질문을 시의적절하게 대신 해주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의 질문에 의뭉스럽게 넘어가지 않고 답해주는 깔끔함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영화 내내 가장 많이 반복되는 질문.

죽는 건 어때? -> 아주 똥같아!


혹은,

이미 많이 죽어봤는데 이제와서 미키 17이 죽는게 왜 다른데? -> 지금까지는 미키의 연속이었다면 이제는 미키의 연속이 아니라 17로 끝, 18부터 새로운 미키로 연속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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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같은 감독이 제시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봉준호와 대척점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점, 해석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점이 거장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가장 중요한 테마는 복제되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자아'의 개념, 그리고 '통역'이다.


죽더라도 20시간 안에 다시 프린트되는 육신에(심지어 프린터는 살짝 말려들었다가 나오는 것 같은 종이 프린터의 디테일까지 갖추고 있는 인체 프린터!) 백업된 기억만 다시 잘 심어주면 그것으로 인간은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미키의 연인은 미키마다 약간의 개성이 있었다고 하는 부분이 있고, 미키 18은 기억 전송의 과정 중에 선이 잠깐 빠졌다가 꽂히는 사고 덕인지 사이코패스적인 면모까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체가 된다. 완전히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연인이라는 가장 가까운 타인마저 17과 18을 같은 존재라고 인지하더라도, 17과 18을 나란히 두고 보면 결국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 같은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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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원주민과의 통역은 또 어떤가. 통역기가 만들어지자마자 통역을 통해 오해로 인해 파멸에 빠져들 수 있었던 관계는 빠르게 바로잡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실 통역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통역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을 때는 언어를 바꾸면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소통이 되지 않는 수많은 인물들을 보면 통역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고, 그렇기에 통역기를 만든 과학자도 일방적인 소통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총점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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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https://namu.wiki/w/%EB%AF%B8%ED%82%A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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