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패터슨>은 두 부부가 침실에서 나란히 잠들어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평화로운 장면이고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것은 패터슨이 눈을 뜨는 순간 독특해지기 시작한다. 패터슨은 소리없이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시를 구상하기 시작하는 시인이고, 로라는 무언가 새로운 것들에 끊임없이 영감 받는 크리에이터다. 만약 그녀가 너튜브를 했다면 참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이다.
패터슨은 주변을 결벽적으로 가꾸어 시를 쓰는 예민한 시인의 모습은 아니지만 무던하게 계속 시를 써내려 가는 사람이다. 패터슨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물질적인 것들, 가령 ‘Love Poem’의 성냥이나, ‘Another one’의 점-선-면-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차원에 대한 것, ‘Poem’의 시 그 자체나, ‘The Run’의 그의 하루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버스 운행, ‘Pumpkin’ 호박이나, ‘The Line’ 한 문장 같은 것들이 그의 시가 된다. 그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시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시인으로 소개하는 것은 꺼린다. 그는 항상 자기소개를 할 때 자신을 버스기사라고 소개한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은 시이다. 버스기사라는 그의 직업은 사실 우리를 구성한다는 의미에서의 직업이라기 보다는 그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삶의 방편, 내지는 그의 가치관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가 굳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하지 않는 것은 그가 딱히 시를 쓰는 행위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 로라가 매번 그에게 시의 복사본을 만들어 놓고 언젠가 패터슨이 마음을 먹는 때가 오면 그것을 출판하자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에게 시는 성전이 아닌 그저 삶의 루틴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시 한 편을 모두 끝내기 전에 출근해야 한다 거나, 출차해야 한다 거나, 혹은 위층으로 올라가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해도 그렇게 짜증을 내거나 불편해하지 않다. 산책하는 와중에 만나는 강아지나 아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의 내레이션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시를 쓰며 읽는 방식은 거창한 웅변이나 서정적인 낭송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글을 써 갈 때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이어진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에 맞추어 노골적인 띄어쓰기를 표현해 읽는 것은 그저 일기를 쓰는 일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그에게 시라는 것은 호흡 같은 평이한 것이라 또다른 시인을 만나면 반가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시를 쓴다는 데에 큰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빈이 그의 비밀노트를 찢어발겼을 때 그는 화도 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공책 한권에 금방 모든 것을 털고 일어난다. 번역되지 않은 시를 가진 또 다른 시인을 만나고 그에게 받은 공책을 열어보자 마자 공백처럼 남아있던 시가 흘렀다 멈춘 자리에 다시 시가 흐르기 시작한다. 패터슨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보다는 앞으로 쓸 시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다. 어쨌든 이미 망가져버린 공책의 대가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빈에게 밉다고 조용히 읊조리는 것이나 마빈 없이 홀로 산책하는 것 정도일 뿐이니까. 그래도 그는 만족한다. 그는 소박하게 시 쓰기를 계속한다.
반면 로라는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에 자극을 받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며, 그것이 제대로 시도되거나 무르익기도 전에 이미 성공을 그리며 그 안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로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정이 바로 꿈 속에 있는 듯 몽롱하게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아침에 잠에서 설핏 깨어 패터슨과 인사할 때, 혹은 그녀의 새로운 사업에 대한 당찬 포부를 밝힐 때 그녀의 표정이 딱 그렇다. 그런 그녀의 수많은 실험의 대상은 패터슨이다. 음식 같은 경우에는 마빈도 종종 그 실험에 참여하는 것 같다. 방울양배추와 치즈를 넣은 파이를 마빈이 맛있게 먹었다고 로라가 자랑하는 장면이 있다. 컵케이크를 팔러 나가기 전에 패터슨의 점심 도시락은 컵케이크가 되고, 배송된 기타를 받자 마자 연습한 곡의 초반 부분을 귀가한 패터슨에게 들려준다. 컵케이크를 생각할 때면 그녀는 이미 뉴저지의 컵케이크 여왕이 되어있고, 기타를 잡은 지 하루만에 그녀의 무대 복장은 완성되어 있다. 그런데 또 그게 밉지가 않다. 그녀가 없었다면 패터슨의 삶은 삭막했을 것이다. 패터슨이 없었다면 그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전혀 다른 둘이지만 그런 둘이기에 또 어울린다.
또한 로라의 재미있는 점은 그녀가 수많은 직물을 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예술적 감수성이 폭발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집에 있는 천으로 된 것들을 그녀의 컨셉이라고 스스로 정한 블랙 앤 화이트, 수많은 까망과 하양이 만들어내는 무늬로 뒤덮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패터슨 시와 로라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패터슨이라는 도시가 실크사업으로 부흥하기 시작하여 뉴저지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부흥한 것들이 철도, 총기, 기관차 등 각종 기계의 제조라고 한다. 로라의 천을 소재로 한 다양한 창작과 그 테마로 선택한 블랙 앤 화이트는 실크산업으로부터 시작해 각종 기계 제조로 뻗어간 도시의 발전과도 닮아 있다. 로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패터슨을 헌사 하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수없이 나열되는 패터슨이라는 도시와 관련된 사람들을 정리해 놓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인 펍의 닥의 명예의 벽에 나란히 붙여도 될 것 같은 인물이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그 명예의 벽에 붙어도 좋을 만큼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과 다양한 정보로 가득 찬 영화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평범하지만 뭔가 평범하지 않은 부부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반복과 변주의 결합일 것이다. 월요일에서 시작되어 월요일 아침이 되어 영화는 끝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패터슨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 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과묵한 버스기사이자 시인인 패터슨은 새로운 한 주에도 똑같이 출근을 하고 일을 하다 돌아와 맥주 한잔 하고 잠이 들 것이다. 그의 시간 틈틈이 새롭게 채워지는 것들은 로라의 꿈과 계획, 직장 동료의 수다, 버스 승객들의 이야기, 그리고 펍에서 만나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쓰는 시겠다. 자무시의 영화 속에서 반복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 더 이상 단순히 반복된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그가 그의 삶의 마지막까지 시와 함께 하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는 월요병 따위는 없이, 소리내지 않는 알람시계라고 로라가 부르는 시계를 보며 일어나는데도 꼬박꼬박 제 시간에 일어나 싫은 기색 없이 출근을 하고 시를 쓸 것이다.
사실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시라는 것, 혹은 예술이라는 것이 삶에 줄 수 있는 것이다.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의 반복과 스트레스의 축적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월요병이라는, 월요일이 슬퍼할 만한 이름의 병을 만들게 되었다. 월요일은 다시금 시작되는 한 주를 맞아 출근해야 하는 5일 중 첫날이기 때문에 다들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그 싫어함이 육신에까지 영향을 줘 유독 일어나기 힘들거나 혹은 출근하기 싫은 마음가짐을 조장한다. 그러나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시간을 내서 향유할 것도 아니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속에서 나온 패터슨과 로라처럼 그저 그것과 함께 호흡하면 되는 것이다. 시가 주는 즐거움, 창작이 주는 즐거움, 그리고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즐거움이 여러분의 내일들에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