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길고 러닝타임도 긴 쿠엔틴 타란티노의 9번째 영화다. 그의 데뷔작은 <저수지의 개들>(1992)로 저예산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의 대표작에 꼭 꼽힐 정도의 수작이다. <펄프 픽션>(1994)으로 황금종려상을 타냈고, 후에도 <킬빌>(2003)과 <장고: 분노의 추격자>등을 감독하며 그의 영화적 특색을 널리 뽐낸다. 그간 꾸준히 자신은 10편의 영화만 찍고 은퇴할 것이라 이야기 해 왔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가 그의 마지막에 가까워져 오는 영화인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차기작으로는 스타트랙의 후속시리즈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고, 그것이 차기작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체 유명한 배우들이 캐스팅되어서 다시는 못 볼 황금 같은 조합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에 그 브래드 피트가 조연이고, 짧은 조연들도 알 파치노나 다코다 패닝, 마고 로비 등이 나왔으니 어마어마한 캐스팅이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캐스팅도 그렇지만 오마주도 만만치 않다. 서부극에 대한 오래된 그리움이 담긴 오마주와 폴란스키가의 비극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이소룡에 대한 패러디 또한 그렇다. 이소룡에 대해 첨언하자면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에게 무술을 가르친 이가 이소룡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 아내와 친구들의 살해 소식을 접했을 때 로만은 이소룡이 그들을 모두 죽였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안경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니 이소룡 또한 그 가족의 비극을 재해석한 영화에 좋은 재료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원래도 수다쟁이이자 자극적인 장면으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이번 영화는 유독 길다고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마치 두 개의 영화를 하나에 합쳐놓은 듯 한 구성 때문이다.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서사와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의 서사 두 개가 서로 그다지 큰 접점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릭과 클리프의 이야기는 철지난 서부극 주연의 이야기라 서부극에 대한 향수와 내리막길에 선 배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의 잔잔한 삶과 행복, 배우로 빛나는 만족감, 그래서 더 다가올 비극을 충격적으로 만드는 이야기이다. 마치 다큐와 잔잔한 로맨스 혹은 드라마 장르의 영화의 서사가 이웃해있는데, 이것은 마치 릭과 폴란스키 부부의 집이 서로 이웃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하나로 만나는 때는 폴란스키가의 비극이 발생한 때, 즉 영화의 끝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두 이웃이 만나 한 곳에 모일 때 역시 바로 그 비극이 발생한 때이기도 하다.
영화를 다시 정리해 다듬어 보자면, 초반에는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파트너이자 오만가지 잡일을 해 주는 클리프 부스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때는 폴란스키 가족은 그냥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이웃집의 거물 감독 부부일 뿐이다. 릭은 그의 전성기를 지나 한물 간 배우가 되어 다시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묵묵한 클리프는 그의 오만가지 꼬장을 다 받아주면서도 그를 묵묵히 믿고 지지해주는 좋은 받침대가 되어주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릭은 클리프 없이 그의 삶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수많은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의 집을 수리해주고, 그를 대신해 운전을 해주며, 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는 꼭 클리프의 응원이 함께 한다. 그래서 릭은 클리프와 그만 헤어지라는 주변의 종용에도 그를 놓을 수가 없다. 간신히 그를 놓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릭이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찍으며 아내가 생기고, 그 아내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더 이상 그를 고용할 수 없겠다고 계산하고 난 뒤에야 온다.
한때 정상에 있었으나 사고도 많이 치고 나이도 들고 있어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배우와, 그의 충실한 조력자이자 가장 비밀이 많은 남자이기도 한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스턴트 배우는 어쨌든 열심히 살아간다. 그 두 남자가 또다시 새로운 배역을 따내려 고군분투하고, 실제로 촬영에 들어가 그 촬영 과정이나 서부극 특유의 장면들이 그려지는 방식을 영화 속 영화로 보는 것은 마치 서부극이 제작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다. 배우들의 사담도 즐거운 요소이지만 서부극 특유의 총격전과 그 유연한 총선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래서 사실 릭이 이탈리아로 넘어가서 ‘스파게티 서부극’을 찍는다고 할 때 즈음엔 영화가 한편 마무리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영화 중반부터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폴란스키 가족은 구김살 없이 마냥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다. 적당히 부유하고 아름답고 젊은 부부는 화려한 파티를 멋진 차를 타고 다니며 곧 임신도 해서 더더욱 행복해 질 것 같다. 로만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샤론은 그녀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찾아가 사람들 속에 섞여 그들의 반응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하기도 한다. 순진하고 아름다운 여배우는 아기를 가지게 되며 더더욱 고결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되고, 그런 그녀가 살해당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자면 그녀의 이미지가 높아질수록 관객들은 은연중에 불안해지게 된다. 마치 추락시키기 위해 높이 떠오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폴란스키가의 비극이 일어난다. 1969년 약에 취한 히피들이 찰스 맨슨의 사주를 받아 폴란스키가가 거주하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게 된 사건인데, 사실 이들의 목표는 다른 이들이었다. 찰스 맨슨은 음반을 내고 싶어했었는데, 그의 음악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프로듀서가 원래 폴란스키 가족이 살던 집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사를 가버렸다. 영화에서는 그런 집에 폴란스키 가족이 이사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 집을 폴란스키의 친구가 사서 그가 집을 오래 비우게 되자 호의로 폴란스키 가족이 살 수 있게 빌려준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영화에서는 찰스 맨슨 스스로가 그들의 집으로 와서 그 프로듀서가 이 집에 사는지 까지 확인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을 죽이러 온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영화적 상상력이 백분 발휘된다. 폴란스키의 옆집에 살고 있는 릭 달튼은 시끄러운 머플러를 털털대며 들어오는 히피들에게 어서 나가라고 소리 지른다. 일단 그의 기세에 놀라 돌아 나온 히피들은 이내 릭 달튼의 정체를 깨닫는다. 그리고 TV를 통해 그들에게 살인을 가르친 바로 그들, 즉 ‘바운티로’ 시리즈의 주연인 릭 달튼을 죽여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폴란스키 대신 릭 달튼의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히어로가 그 집에 계셨으니. 그것이 바로 클리프와 그의 반려견 브랜디이다. 훈련이 잘 된 핏불과 성룡도 쉽게 때려눕히는 클리프의 조합은, 비록 클리프가 LSD에 취한 상태라고 해도 위협적이다. 릭의 아내인 프란체스카를 위협하고 모두를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는 히피들은 클리프와 브랜디에 의해 탈탈 털리고, 마지막 히피는 정신 줄을 놓고 도망치다가 릭과 마주쳐 그에 의해 화끈하게 구워진다.
클리프와 브랜디에 의해 목숨을 구한 릭은 병원으로 이송되는 클리프를 배웅하고 옆집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로만이 나와 그와 인사를 하고 샤론이 인터폰을 통해 그를 집에 초대한다. 옛날 옛적 할리우드에서 정말 모든 일이 이렇게 끝났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타란티노의 상상력을 통한 치유의식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마블에서 그렇게 허구한 날 써먹는 평행우주의 이야기 속에서는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어 폴란스키가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그것이 이웃에 누가 산다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결정된다는 그런 이야기.
영화는 전체적으로 좀 산만한 편이지만 연기도 연출도 뛰어나서 길다는 느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서부극이라는 주제와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가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어떻게 관계 맺지 않는 듯 관계 맺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삶의 모든 일들이 하나의 목적을 두고 그것에 몰입하여 그 외의 이야기는 생략된 채 진행되지는 않는다. 항상 이야기라는 것은 어떤 사건이나 주제를 두고 그에 맞추어 편집되어 응축된다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두 개를 엮어 펼쳐놓는 것은 차라리 보다 느슨하게 삶의 이야기에 걸쳐지기를 바라는 감독의 안배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삶의 주제로 살아가는 이들이 숱하게 마주치는 것이 바로 삶이고 사건이니까. 릭의 은근한 기대대로 이러한 그들의 마주침이 또 다른 릭 주연, 로만 감독의 새로운 영화로 탄생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