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은 '온실'일까

온실 속의 화초라도 과잉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by 신해찬


우리는 종종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을 쓴다.

세상의 바람과 비를 모르고, 보호만 받으며 자란 연약한 존재를 빗댈 때 쓰곤 한다.

그 말에는 ‘너무 아끼기만 해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비판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온실 속의 화초라고 해서

마냥 오냐오냐, 물을 퍼붓고 빛을 쬐인다고 자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온실 속의 화초일수록

가급적 손을 대지 않고 자율적으로 뿌리내리도록 기다리는 식물이 많다.


대표적인 게 난이다.

매일 물을 주면 뿌리가 썩는다.

햇빛도, 습도도, 손길도 모두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병이 든다.

난은 절제된 돌봄 속에서만 피어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자주 착각한다.

더 많이 주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라 믿는다.

관심도, 조언도, 돌봄도 끊임없이 주어야만 진심이 닿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물을 주지 않는 날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주는 날이.


온실은 감싸는 곳이 아니라 조율하는 곳이다.

함부로 손대지 않고,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스스로 피어날 때까지 믿고 기다리는 공간.

정적이지만 무심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깊이 배려하는 장소다.


나는 오늘도 난에게 물을 주지 않았다.

어제 충분히 주었고, 오늘은 햇살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