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지지자를 둘러싼 잘못된 규정에 대하여
‘극우’란 말은 함부로 쓰여선 안된다.
정권이 바뀌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된 지금도, 여전히 일부 정치 세력에게는 ‘극우’라는 딱지가 손쉽게 붙는다. 구치소에 수감된 윤 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 국민의힘 내 이른바 ‘친윤계’ 인사들, 그리고 퇴행적 언행을 일삼는 인물들까지도 그렇게 불린다. 하지만 이들을 ‘극우’라 부르는 것은 지나치게 후한 평가다.
극우는 단순한 막말 정치나 충성 경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정치학적으로 극우는 배타적 민족주의, 권위주의, 반 다원주의라는 이념적 기반과 체계적 목적성을 갖는다. 유럽의 극우 정당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특정한 질서를 재구축하기 위한 전략과 서사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즉, 극우는 단지 “과격하다”거나 “비상식적이다”는 표현이 아니라, 일정한 정치 철학과 역사적 맥락이 담긴 정교한 개념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국민의힘 내 일부 세력에게서는 그런 구조를 찾기 어렵다. 이들은 이념보다 감정으로 움직였다. 비판에 대한 반박은 논리가 아니라 조롱이었고, 정책의 부실함은 ‘좌파 프레임’으로 덮었다. 공적 담론은 실종됐고, 남은 것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반 이재명’, ‘반 민주당’이라는 반사적 정서뿐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강력한 리더십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독단과 무능의 반복이었다.
대표적으로 한일 강제동원 문제에서는 가해 기업의 사과조차 없이 ‘제3자 변제안’을 강행했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일본의 입장을 사실상 수용하며 국내의 우려를 묵살했다. 이는 국익보다는 정권 안보를 앞세운 졸속 결정이었다.
그를 감싸온 국민의힘은 정권 몰락 이후에도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반성과 혁신보다는 여전히 ‘내부 총질’ 프레임에 매달리며, 팬덤 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자유, 공동체, 법치라는 보수의 핵심 가치는 이미 실종됐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더 이상 보수 정당이라 부르기 어려운 상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써야 할 단어는 ‘극우’가 아니다.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은 ‘무능한 권위주의’, ‘정치적 퇴행’, ‘반지성적 광신’이다. ‘극우’라는 말은 일정한 정치 철학과 체계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지금의 이 세력은 그런 골격조차 없다.
정치 언어는 진단 도구이자 해부 도구다. 개념이 흐려지는 순간, 실체도 함께 사라진다. ‘극우’라는 말을 남용할수록 진짜 극우를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은 무뎌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보다 정밀한 언어, 감정보다 분석적 비판이다.
이들을 ‘극우’로 퉁치는 건 진단의 포기이자 비판의 게으름이다. 그 이름조차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