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걸 보면서 우리는 "왜 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린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원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엔진이 공기를 밀어낸다, 날개의 형상 때문에 공기가 위로 흐른다… 그런 설명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들 안다고 말하지만, 실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과학자들조차 비행기의 비행 원리를 100%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기술도 이런 불확실성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어디에나 있다. 양자역학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불확실성의 원리를 통해 우리는 어떤 미세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사실을 더 깊이 절감하게 되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이 모든 근본적인 물음들 역시 여전히 ‘모른다’는 답을 가지고 있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뭔가 확실한 것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종교라는 대안에 이르게 된다. 종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확신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에게 위안과 의미를 제공한다. "신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말함으로써, 복잡한 존재의 이유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해 볼 수 있는 것은, 과연 그 신이 인간처럼 생겼다고 하는 설명이 얼마나 일관된가 하는 점이다. 신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라면, 가령 그 신을 인간처럼 형상화하는 것은 오히려 그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 아닐까?
종교는 확신을 통해 인간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확신이 너무 강해지는 순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확신은 때로 다른 생각들을 배척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역사 속 수많은 종교 전쟁과 억압의 사례는 그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에 과학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모른다고 받아들이고, 그래서 묻고, 실험하고, 다시 검증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 그 자체가 바로 과학의 힘이다. 비행기가 나는 원리에 대해 완벽히 알지 못해도, 그 질문을 계속 붙들고 놓지 않는 자세가 과학을 앞으로 밀고간다. 양자역학에 수많은 미스터리가 있어도, 우리는 거기서 질문하고, 더 정확한 모델을 찾아간다.
종교와 과학은 꼭 서로를 배척해야 할까? 아니다. 종교는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제공하고, 과학은 사실과 원리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하나는 마음의 안정을 주고, 다른 하나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이 둘을 적대적으로 보지 않고,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풍요로운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다. 이 세상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모른다는 것이 반드시 무지가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아는 것. 우리가 진리로 가는 여정에서 내딛는 첫 발걸음은 그런 ‘모른다’라는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모른다’는 고백은 무지가 아니라, 지성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