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시대, '연결되지 않을 권리'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전화를 걸 때마다 습관처럼 나오는 말이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조차 이렇게 묻는 이유는, 전화가 ‘연결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방해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메시지를 보내고, 영상통화를 하고, 위치를 공유하고, 심지어 물건을 결제하거나 건강 상태까지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되돌려 보자. 유선전화만 존재하던 시절, 전화는 ‘받을 수 있을 때만 받는 것’이 당연했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타인의 일상에 무리하게 침범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1990년대의 삐삐 세대는 그 중간쯤이었다. 상대가 연락하고 싶다는 신호는 받았지만, 즉각 응답할 의무는 없었다. 공중전화를 찾아 다시 연락하거나, 다음날 직접 만날지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지금보다 번거로웠을지언정 그 안에는 여유와 사생활을 지킬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언제든 ‘연결 가능해야 하는’ 상태에 놓였다. 전화뿐 아니라 메신저, 이메일, SNS, 화상회의 등 끊임없이 연결을 요구받는다. 구글 계정, 위치 정보, 카드 결제 내역 등으로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추적된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의 일상을 모두 노출하고 있다.
한 친구는 퇴근 후 가족과 식사 중 팀장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급한 건 아닌데, 가능하면 오늘 중으로 확인해줘.” 그는 결국 노트북을 열었고, 가족의 대화는 어색한 침묵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준 ‘언제나 가능한 연결’은 누군가의 하루를 온전히 쉬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된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The right to disconnect)’가 법으로 보장된다. 프랑스는 2017년부터 퇴근 이후 업무 연락에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인정했고, 독일 일부 기업은 업무 시간 외 이메일 발송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 이는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자는 차원을 넘어 개인의 삶과 자유를 보호하려는 사회적 합의다.
물론 스마트폰은 문명의 이기다. 긴급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사람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편리함이 늘어날수록 그 이면에 숨겨진 속박의 위험에도 민감해져야 한다.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우리는 점점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속박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편리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일상과 자유를 서서히 잠식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배려의 인식이다.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단지 예의 때문만이 아니다.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고 사적 공간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배려인 것이다.
문명의 도구를 사용할 것인가, 문명에 지배당할 것인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앞에서 우리 모두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