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장 훌륭했던 작품 열 두 편
2026년이 밝았으니, 새해를 맞아 또다시 2025년 한 해 동안 보았던 작품들 중 가장 좋았던 12편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언제나와 같이 2025년에 신규 공개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선정해 보았습니다. 다만 크리스티안 펫촐트의 '미러 넘버 3' 그리고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등 아직 여기는 개봉 전이라 챙겨보지 못한 작품들이 좀 있어서 아쉽네요. 그럼 12위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의 최고작이자, (‘루퍼’와 더불어) 라이언 존슨 필모그래피의 최고작.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의 추리영화적 흥미진진함을 유지한 채 한층 더 다층적인 드라마를 풀어내는 ‘웨이크 업 데드 맨’은 시리즈 중에서 그 서사적 깊이에 있어서 가장 훌륭하다. ‘나이브스 아웃’의 성공 이후로 만들어진 속편 ‘글래스 어니언’이 다소 아쉬웠는데, 라이언 존슨은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웨이크 업 데드 맨’으로 그 아쉬움을 만회하는 데 성공한다.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계속 기대하게 될 듯. (Wake Up Dead Man: A Knives Out Mystery)
미겔 고메스의 필모그래피에서 으레 기대할 법한 몽환이 깊게 배어있는 신작 ‘그랜드 투어’는, 분열된 시공간을 하나로 촘촘하게 엮는 거대한 그물과도 같은 영화다. 마치 유령과도 같은 인물들은 그 인과가 뚜렷하지 않은 시간과 전후가 뚜렷하지 않은 공간을 하염없이 배회한다.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짜여진 이 사랑의 추격전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흐려지고 영화는 현실과 교묘하게 뒤섞이는데, 미겔 고메스는 이 영화의 엔딩에 이르자 영화와 죽음은 모두 허구라고 대담하게 말한다. (Grand Tour)
남미 퀴어영화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마르코 베르게르의 신작 ‘애스트로넛 러버스’는, 다소 들쭉날쭉하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단점을 덜어내고 장점을 극대화한 수작이다. 예상 외의 해프닝을 통해 두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플롯 자체는 퀴어시네마에서 숱하게 다루어진 이야기지만, 마르코 베르게르는 뛰어난 각본들과 배우들의 호연을 통해 훌륭한 사랑영화를 만들어냈다. 마르코 베르게르가 청춘의 일탈(혹은 충동)을 담아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음을 다시금 증명하는 작품. (Los Amantes Astronautas / The Astronaut Lovers)
아마도 올해의 로맨틱코미디. 감독, 각본과 주연을 모두 맡은 마이클 안젤로 코비노를 필두로 각본과 주연을 겸한 카일 마빈의 앙상블은 ‘스플리츠빌’에서 다코타 존슨과 아드리아 아르호나의 호연과 함께 그 빛을 발한다. 세심하게 쓰여진 로맨스와 재기 넘치는 코미디가 최적의 상태로 공존하는 이 영화는, 결혼(그리고 결합)이라는 허상을 낱낱이 파헤치는 동시에 기묘하게 웃긴 상황들을 숱하게 만들어낸다. 절대 돌아보지 않고 정면을 향해 올곧게 직진하는 뒤끝없는 드라마의 쾌감. (Splitsville)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동안 장력을 잃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모함마드 라술로프는 전작 ‘사탄은 없다’에서 보여주었던 드라마와 사회고발극 사이의 흥미진진한 접점을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펼쳐내는데, 그 저변에 깔린 것은, 당연하게도, 사회적 부조리에 눈감은 이란 사회가 깨어나야만 한다는 단호한 외침이다. 존엄을 잃지 않는 캐릭터와 평정을 잃지 않는 스토리 사이에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관객들의 마음의 잊혀지지 않을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دانهی انجیر معابد / The Seed of the Sacred Fig)
아마도 올해의 발견이자 올해의 데뷔작. 풍기문란이라는 명목 하에 게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잠입수사중인 경찰이 용의자 중 한 명과 기묘한 관계에 놓인다는 플롯 자체는 언뜻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사복경찰’은 연출과 각본의 힘으로 그 한계를 보란듯이 깨부순다. 로맨스라기보단 스릴러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 영화는, 초반부터 제시해 놓은 하나의 소재를 끝까지 옥죄어간 끝에 가장 영화적인 방법으로 폭발시킨다. 톰 블라이스와 러셀 토비의 뛰어난 연기 역시 이 영화의 괄목할 만한 성과 중 하나. (Plainclothes)
큰 고민할 필요 없이 라이언 쿠글러의 최고작. 마블 스튜디오 산하에서 그가 만든 ‘블랙 팬서’ 시리즈는 꽤나 아쉬웠는데, 그는 절치부심 끝에 화려하고 감각적인 신작 ‘씨너스: 죄인들’로 돌아왔다. 다양한 서브장르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이 드라마 속에서 단연코 빛을 발하는 것은 탁월한 영화적 리듬이다. 그리고 어쩌면 올해의 장면이라고 불러도 아쉬움이 없을 것 같은 극 중반부의 황홀한 여름밤 시퀀스는, 단순하게 파악하기 쉽지 않은 이 영화의 장르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것만 같은 강렬하고 파멸적인 몸짓이다. (Sinners)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연출과 와그너 모라의 연기 협업은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찬란하게 빛난다. 사회의 급류에 휘말린 한 남자의 삶을 따라가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드라마인 동시에, 쉬이 그 의중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자신의 안전이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는 존엄성이 묵직하게 가슴을 파고드는데, 마치 안티클라이막스처럼 쓰여진 이 영화의 후반부는 결국 그의 행동이 낳은 후대의 유산이 주는 뭉클한 감동이다. (O Agente Secreto / The Secret Agent)
브래디 코벳의 장대한 서사시 ‘브루탈리스트’는, 각본과 연출, 연기 그리고 편집 그 모든 측면에서 고전의 향취를 되살려내려는 야심으로 가득하다. 긴 러닝타임 그리고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인터미션까지도 그 야망의 일환이 아닐까 싶을 정도. 헝가리 이민자인 건축가 라슬로(애드리언 브로디)의 인생을 반추하는 이 영화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변화해가는 개인의 삶의 궤적을 주도면밀하게 따라간다. 흠잡을 데 없는 전반부에 비하면 (인터미션을 기점으로) 후반부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만, ‘브루탈리스트’는 그 자체로 정교하게 된 한 채의 건축물과도 같다. (The Brutalist)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장르적 도전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이르러 블랙코미디를 가미한 급진적인 사회드라마로까지 그 저변을 넓힌다. 도통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 속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은 물을 만난 듯 연기적 곡예를 펼치고 복잡하게 얽힌 상황들은 서로 맞물리며 대단원의 막을 향해 나아간다. 십수년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스토리텔링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인장 그 자체. 그리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라는 영화의 제목을 다시금 환기하게 하는 뛰어난 엔딩은, 대를 이어서 계속되는 ‘싸움’에 대한 일갈와도 같다. (One Battle After Another)
자파르 파나히는 이제 그 이름만으로도 권력에 대한 예술의 저항이라는 상징이 되었다. 이란 정부의 구금령 등으로 활동에 제약이 생긴 상황에서도 그의 저력은 여전해서, 그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은 그가 최근 십수년 간 만들어왔던 다큐멘터리 방식의 영화와 그 이전의 픽션, 둘 사이의 장점만을 섞어놓은 듯한 걸작이다. 과거의 사건을 최대한 감춤으로써 현재의 사건을 통해서만 이야기의 전모를 상상하게 만드는데, 이때 과거에 대해 무지한 것은 관객들뿐만 아니라 극중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다소 어설픈) 복수극의 겉모습을 한 이야기 뒤에서 (청각적으로) 엄습하는 것은 자파르 파나히의 서늘한 시선 그 자체다. (یک تصادف ساده / It Was Just an Accident)
야심차고도 광대한 비간의 신작 ‘광야시대’는 영화와 현실 사이를 종횡무진한다. 물론 영화에 대한 영화이지만, 그 이전에 시네마(와 극장)에 대한 러브레터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은 이 걸작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항하고자 하는 영화(인)의 간절한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극장에서 시작되어 극장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비간에게 있어 가장 개인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무성영화, 필름 누아르, 로드무비를 거쳐 마지막에는 (비간의 특기이기도) 한 길고 긴 롱테이크 쇼트로 촬영된 드라마로 이어지는 이 영화의 옴니버스식 구성은, 각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감각적 요소를 통해 독창적인 방식으로 시네마의 역사를 환기한다 (예컨대, 필름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극중 두 번째 이야기에는 청각과 시각의 관계가 그 중심에 놓여있다). 전작 ‘지구 최후의 밤’에서 롱테이크 시퀀스는 간혹 기술적인 과시가 영화적인 포부를 과하게 앞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광야시대’에는 그러한 포부를 극단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게 만드는 괴력이 있다. 오프닝과 기묘한 방식으로 맞물리는 이 영화의 엔딩에 이르면, 이제 영화라는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그렇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는 비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 영화의 영제는 ‘부활Resurrection’이다). 여러 측면에서 한 동안 잊기 힘들 시네마적 경험. (狂野时代 / Resurr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