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만약에 마법의 성이 있다면. 션 베이커의 신작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혹 이런 가정에서부터 출발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마법의 성(이라는 이름의 모텔 ‘매직 캐슬’)에서 시작되고 마법의 성(의 형태를 한 디즈니랜드의 어트랙션)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션 베이커가 삶을 (그리고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화려한 색깔들, 또는 현란한 움직임이라는) 환상으로 그 현실을 한 겹 둘러싼 것만 같은 이 영화는 자연스레 마음을 두드린다. 사회적 변두리에 내몰린 이들의 삶을 다루면서도 결코 손쉬운 동정에 매몰되지 않는 션 베이커의 시선은 오히려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현실에서도 환상을 잃지 않고 지켜낼 수 있다고, 영화 내내 그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외치는 것만 같다. 그렇게, 션 베이커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마치 이 세상 수많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들에게 바치는 선물처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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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모텔 ‘매직 캐슬’의 보라색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무니와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를 힘차게 부르는 디키(에이든 맬릭)의 목소리로 극을 활기차게 열어젖힌다. 그리고 거기에 ‘퓨처 랜드’로 새로 이사 온 젠시(발레리아 코토)가 합세한다. 말하자면 ‘무니와 아이들’이라고나 할까, 무니를 중심으로 두 곳의 모텔 매직 캐슬과 퓨처 랜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천방지축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언뜻 사랑스럽고 복작거린다.
그러나 칙칙한 건물의 외관에 덧입힌 노란색 혹은 보라색 페인트의 화려함으로도, 어른들의 높은 시선을 대신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내려간 아래쪽 시선의 천진함으로도 채 가릴 수 없는 현실이 있었다. 페인트칠을 벗겨내고, 낮은 시선을 추켜들자 묵직하고 냉정한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연달아 일어나는 신나는 해프닝 끝에 유쾌한 소동극이 점점 잦아들자, 이 영화는 결국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작은 무니의 절망을 그대로 직시한다. 그리고 무니가 울음을 터뜨린 순간, 비현실적이고 뜬금없는 엔딩이 마치 에필로그처럼 덧붙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이 기묘한 이질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무니의 엄마인 핼리(브리아 비나이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춘을 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아동보호국의 직원들이 등장하는) 후반부에 이르러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 무게중심을 잃은 채 급격하게 현실의 가장자리로 내려앉는다. 간혹 심각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발랄하고 경쾌한 논조를 잃지 않던 이 영화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비극 앞에서 말을 잃고 만다. 곧이어 무니는 아동보호국에서 자신을 데려가려는 이들의 손길로부터, 그리고 (현실 속 ‘마법의 성’인) 매직 캐슬로부터 우두망찰 도망친다. 퓨처 랜드의 젠시를 찾아간 무니가 울음을 터뜨리는 바로 그 순간,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더 이상의 감정을 용납하지 않기라도 하겠다는 듯 영화의 리듬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울먹이는 무니를 바라보던 젠시는 무니의 손을 잡아채고 그대로 달려나간다. 내내 옆에 있었지만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던 디즈니랜드로 단숨에 들어가는 무니와 젠시를 지근거리에서 급박하게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더없이 낮아지고, 시간의 흐름은 가속하듯 급변한다. 그리고 무니와 젠시가 (환상 속 ‘마법의 성’인) 디즈니랜드의 매직 캐슬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카메라는 마침내 그 자리에 멈추어선다. 마치 황당할 정도로까지 느껴지는 이 엔딩은,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한 황홀한 마법이 담긴 기막힌 조바꿈이다.
이 지점에서 션 베이커라는 창작자가 영화를 만드는 태도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마치 엔딩을 향해 전력질주하면서도,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교묘한 화술으로 덮어서 숨기려는 거짓말 같은 영화다. 이때 그 거짓말로 덮어버린 것은 동심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일 것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극의 중반부까지는 화려한 색채로, 또는 낮은 시선으로 이 지독한 현실을 간신히 회피하는 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려도 가릴 수 없는 현실이 닥쳐오자, 션 베이커는 현실을 마주한 채 황망히 영화를 끝내버리는 대신에 영화를 환상 속으로 밀어넣고 도망쳐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이건 책임의 회피가 아니었다. 러닝타임 내내 (화려한 색깔들로 덧씌운) 현실을 보여주다가 엔딩에 이르러 돌연 (현란한 움직임으로 왜곡된) 환상을 나란히 병치함으로써, 션 베이커는 자신의 목소리를 단 한 장면에 압축시켜 담아낸다. 잔인한 현실을 너희는 아직 직시할 이유가 없어. 너희는 지금 환상 속으로 도망쳐버려도 괜찮아. 그러니까 영화적 마법이라 불러 마땅한 이 영화의 엔딩은, 이 세상 수많은 무니들에게 관찰자이자 동행자로서 션 베이커가 해줄 수 있는 값지고도 유일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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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엔딩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앵글을 구성하는 데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다. 션 베이커는 (아이폰 5S로 촬영된 전작 ‘탠저린’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 쇼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로스 앤젤레스, 그리고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연달아 만든 두 영화에서 한결같이 등장하는 것은 아래로부터 위를 올려다보는 앙각 쇼트이고, 특히나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낮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듯 시선을 바닥에 가깝게 위치시킨 로우-아이레벨 쇼트이다. (그리고 이건 당연하게도, 아이의 시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건 위로부터 관찰하듯 내려다보려는 영화가 아니라 아래에서 경험하듯 함께 하려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앵글에야말로 션 베이커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고, 거기에 동화 풍의 사랑스러운 터치를 곁들이자 이 영화의 아주 특별한 포장이 완성된다.
허나 세상의 어두움을 화려한 포장만으로 숨길 수는 없다. 사실, 영화의 후반부에 일렁이는 어두운 정서는 사실 극의 군데군데 이미 드리워져 있던 것이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얼핏 무니와 친구들이 모텔촌을 누비면서 벌이는 발칙하고 귀여운 활극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 상황의 관찰자 입장에 놓이는 바비(윌렘 대포)는 그 자체로 영화 속에서 션 베이커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바비를 연기하는 윌렘 대포는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전문 배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이면에 숨겨진 정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 지역에 살면서도, 정작 무니는 디즈니랜드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디즈니랜드가 동심 속 아이들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니에게 있어 디즈니랜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모텔촌이다. (‘매직 캐슬’과 ‘퓨처 랜드’라는 모텔의 이름들도, 무니와 친구들이 힘차게 걸어가는 도로의 배경으로 스쳐가는 ‘기프트 샵’ 혹은 ‘오렌지 월드’의 겉모습도, 당연히 놀이동산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무니와 친구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 쫓겨나기까지 한다. 아이들의 동심이 위로받을 수 있는 환상의 공간을 거짓으로 흉내낸 곳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더없이 측은하다.
영화의 중반 즈음 매직 캐슬의 뒤편에 걸린 무지개를 보며 무니와 젠시는 달려가고, 카메라는 그대로 멈추어서 멀찍이 달려가는 아이들을 지켜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와 완전히 동일하게 촬영된 장면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렇게 무지개는 디즈니랜드의 매직 캐슬과 겹쳐진다. 그런데 아이들이 무지개를 보며 나누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무니는 무지개를 향해 달려가도 황금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젠시가 알려준 덕에 이미 알고 있었다.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닿을 수 없는 무지개를 디즈니랜드와 동일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앵글들은, 그리고 무지개 옆의 황금 혹은 황금과 동치되는 디즈니랜드 속의 환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차게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나란히 생각해볼 때 더없이 처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고뭉치들을 파토스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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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일탈과 방종은 그 자체로 희망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몇몇 순간들을 떠올려보자. 새로 이사온 가족의 자동차에 침을 뱉는 아이들. 들어가서는 안 되는 건물의 관리실에 들어가 모텔의 전원을 내려버리는 아이들. 낡고 버려진 건물에 들어가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라이터로 불까지 지르는 아이들. 리조트에 몰래 들어가서 점심으로 부페 식사를 만끽하는 모녀. 사실 곱씹어보면 이 영화 속에는 통념상 해서는 안 되는 잘못된 행동들만 가득하다. 그러나 이런 일탈 혹은 방종이야말로 우리를 미소짓게 하고 아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그런 미소와 행복으로부터 생겨나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이런 막연한 희망이라도 가지는 것이 간절한 세상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아동보호국의 직원들을 피해 달아난 무니와, 그런 무니를 데리고 디즈니랜드로 도망친 젠시의 행동은 틀림없는 일탈이자 방종이다. 그러나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일탈과 방종은 바꿔 말하면 희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엔딩은, 션 베이커가 세상 속 수많은 무니들에게 영화의 형식으로 전달해줄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희망이었다.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에서라면 무지개 옆 황금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에서라면 디즈니랜드의 매직 캐슬에서 동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현실의 감각을 최대한 배제한 채 가능한 한 비현실적으로 꾸며진다. 션 베이커의 세상 속에서 무니는 아직 어른이 될 필요가 없다. 무니의 순수한 동심은 깨어져서는 안 된다. 환상 속에서라면 무니의 상상은 방해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세상 때문에 상처입고 버림받을 뻔 했던 무니의 절망은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속에서 간신히 치유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만약에 마법의 성이 있다면. 달려나갈 이유가 있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자라지 않고 영원히 함께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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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2017)
dir. 션 베이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