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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Feb 14. 2018

2018년 1월 상반기의 영화들

2018년 1월 상반기 극장에서 관람한 (재)개봉작 6편.

<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

<굿타임> (사프디 형제) ★★★

<쥬만지: 새로운 세계> (제이크 캐스단) ★★

<코코> (리 언크리치, 아드리안 몰리나) ★★★★

<다운사이징> (알렉산더 페인) ★★★☆

<수면의 과학> (미셸 공드리) ★★★





S001 <원더풀 라이프> [재개봉]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두 번째 장편 ‘원더풀 라이프’에는, 만드는 이의 진심이 묻어나 있다. 영화기에 가능한 상상의 실타래가 뻗어나가는 이야기가 마음을 울리는 동시에,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서듯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영화, 특히나 초기 영화와 같은 예술 자체에 대한 메타예술로도 매력적이다. 죽은 뒤 모두가 일주일 간 머물며 일생의 추억을 반추하고, 그 추억으로 떠나갈 채비를 하는 곳. 간직하고 싶은 오직 하나의 기억만을 남겨야 하는 선택의 요일이 다가오자, (영화적인) 상상이 (실제적인) 기억을 만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자 모두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남길 것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이 두 질문에 대해 ‘원더풀 라이프’는 답한다. 서로가 마주한 시간을 담을 것이라고, 그리고 영화라는 형태로 남길 것이라고. 20세기 말, 일본 영화가 내놓을 수 있었던 최고의 순간 중 하나. 아름답고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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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 After Life (ワンダフルライフ, 1998)

dir.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



R001 <굿타임>

사프디 형제의 신작 ‘굿타임’은 혼란 그 자체와도 같은 영화다. 뉴욕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룻밤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뒤 주인공 코니(로버트 패틴슨)의 행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함께 지쳐간다. 되는 일 없이 꼬일 대로 꼬여버리는 아수라장 속에서, 황량한 도시를 담아내는 감각적인 영상이 역설적으로 반짝인다. 한편 닉(베니 사프디)만이 등장하는 영화의 시작과 끝은, 그 자체로 코니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거대한 벽을 은유한다. 원인에 대한 설명이나 암시 없이 단지 던져놓는 특유의 작법은, 마치 출구 없는 미로 속에서 끝없이 벽을 향해 돌진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막막함이야말로, ‘굿타임’의 지향점이자 성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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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타임 (Good Time, 2017)

dir. 조쉬 사프디, 베니 사프디 (미국)

★★★



R002 <쥬만지: 새로운 세계>

놀라울 것도, 신선할 것도 없다. 조 존스톤의 1995년작 ‘쥬만지’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이 작품은, 현대에 맞게 각색을 거쳤음에도 낡은 티를 벗지 못한다. 기능적으로 고착화된 캐릭터들은, 코미디로서는 꽤 타율이 좋지만 드라마로서는 영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치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극중 게임의 형식처럼, ‘쥬만지: 새로운 세계’는 그저 안전한 길을 택해서 무난하게 만들어 낸 또 한 편의 수많은 블록버스터 중 하나에 가깝다. 그래서 그 안에는, 어려움 없이 쉽게만 나아가려는 안일함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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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만지: 새로운 세계 (Jumanji: Welcome to the Jungle, 2017)

dir. 제이크 캐스단 (미국)

★★



R003 <코코>

픽사 스튜디오가 오랜만에 홈런을 쳤다. 최근의 픽사 스튜디오는 (‘인사이드 아웃’ 정도를 제외하면) 주로 실망스러웠는데, 리 언크리치의 ‘코코’는 그들이 연달아서 ‘월-E’, ‘업’, ‘토이스토리 3’를 뽑아내던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 것만 같은 굉장한 작품이다. ‘아이들을 데려간 부모들을 울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픽사 스튜디오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영화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의 골을 가장 깊은 곳까지 건드린다. 내러티브가 어느정도 예상 가능하다는 단점마저 클라이막스에서 느껴지는 감정적 파고에 휩쓸려갈 지경.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삼아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매개하는 이 영화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물질(사진)과 관념(기억) 사이의 활용이 탁월하고, 두 세계 사이를 오가기 위해 필요한 소재들(신발과 꽃잎) 사이의 관계가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코코’는 신발로 꽃잎을 딛고, 사진에 기억을 실어, 픽사 스튜디오가 지내는 간절한 위령제다. 오랜 부진을 딛고,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 스튜디오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또 한 편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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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Coco, 2017)

dir. 리 언크리치, 아드리안 몰리나 (미국)

★★★★



R004 <다운사이징>

알렉산더 페인의 신작 ‘다운사이징’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미래사회에 대한 기발한 상상에서 출발한 이야기일테지만, 알렉산더 페인과 짐 테일러의 각본은 이를 가뿐히 넘어선다. 사실 이 영화는 눈길을 끄는 소재 뒤에 숨어있는 반복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2011년작 ‘디센던트’가 그 규모가 거대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적으로만 보였던 만들어진 낙원(‘레저랜드’)은 결국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이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었고, 후반부 노르웨이에서의 이야기는 결국 되풀이되는 인간사 그 자체다. ‘디센던트’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개인적이고 직접적이었다면, ‘다운사이징’에서 그 방식은 사회적이고 간접적이다. 그러나 그 끝에 남겨지는 것은 결국 ‘디센던트’에서도, ‘다운사이징’에서도 기로에 선 누군가의 의미있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데에 이 영화의 위안이 놓여있다. 도식화된 인물들의 캐릭터가 아쉽기도 하지만, 이런 소재를 이런 온도로 풀어내면서도,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에서는 끝끝내 휴머니즘적 터치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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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Downsizing, 2017)

dir. 알렉산더 페인 (미국)

★★★☆



S005 <수면의 과학>

미셸 공드리의 2005년작 ‘수면의 과학’은 엉뚱하지만 사랑스럽다. 만드는 이가 상상한 온갖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뒤섞여있는 것만 같은 이 이야기는 말하자면 괴작이겠지만, 어디 이런 괴작을 만나기가 쉬운 일인가.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현실과 꿈을 혼동하지만, 잠든 뒤 꿈 속에서만큼은 자신의 희망을 꿈꿀 수 있다. 모국어는 스페인어지만 부족한 프랑스어 때문에 영어로 소통하는 게 편한 그는, 현실에 살고 있지만 표현이 서툴기 때문에 꿈으로 소통하는 게 편한 그와 겹쳐진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 영어는 꿈과 동치된다. (그래서인지, 스테판의 꿈 속 방송에서 스테판은 모국어인 스페인어가 아니라, 언제나 영어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스테판과 스테파니(샬롯 갱스부르)는 스테판이 꿈 속으로 도망친 뒤에야 진심을 나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제하고 통제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지만, ‘수면의 과학’에서처럼 사랑하고픈 장면들이 넘쳐나는 미셸 공드리의 영화세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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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2005)

dir. 미셸 공드리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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