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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r 30. 2019

우리는 (프레임을) 떠나야만 해, '콜드 워'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Zimna Wojna, 2018)

* '콜드 워'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다'의 스포일러는 없지만, 구조와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파벨 파블리코브스키가 모국으로 돌아와 연출한 두 편의 작품은 마치 시(詩)처럼 읽힌다. 2013년작 ‘이다’와 2018년작 ‘콜드 워’는 그 구조와 작법이 정형화되어있다는 점에서, 글로 말하자면 산문보다는 운문에 가깝다. 폴란드 바깥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던 그는 폴란드로 돌아온 뒤 일관된 톤의 작품을 내놓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흑백의 4:3 비율로 담아낸 20세기 중반, 이라는 시대의 차가운 질감이 자리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두 작품의 작법은 사뭇 다르다. ‘이다’에서 인물들을 최대한 스크린의 경계에 위치시키거나 익스트림 롱 쇼트로 멀찍이 잡아냄으로써 불안한 구도와 텅 빈 여백으로 프레임을 짜냈다면, ‘콜드 워’에서는 인물들을 이례적일 정도로 스크린에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이 빈번하지만 때때로는 전형적인 롱 쇼트가 자연스레 삽입된다. ‘이다’에서 극 내내 철저하게 강박적으로 지켜지던 구성이 변화되는 극의 마지막 한 순간을 통해 인물의 변화를 응축해서 담아냈다면, ‘콜드 워’에서는 애초에 클로즈-업과 롱 쇼트라는 두 종류의 프레임이 의도적으로 혼재되어 있기에 변곡(變曲)의 순간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다’와 ‘콜드 워’는 그 본질을 공유한다. ’이다’에서도, ‘콜드 워’에서도 인물들은 줄곧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 ‘이다’에서 이러한 동선이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배치에서 드러난다면, ‘콜드 워’에서 이러한 동선은 사각의 프레임 안팎의 간극으로 확장된다. ‘이다’가 말 그대로 프레임에 걸쳐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면, ‘콜드 워’는 프레임을 떠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러자 결국 두 작품은 모두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냉정으로 귀결된다. ’이다’에서 시대의 냉기에 갇힌 인물의 온기는 바깥으로 표출되지 못한 채 속에서만 요동친다. 그러나 ‘콜드 워’에서 시대의 냉기와 인물의 온기는 한데 맞물려 극 내내 안팎으로 휘몰아친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콜드 워’에서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냉정은 열정을 통해 극대화된다.



‘콜드 워’는 민요를 연주하는 두 남자와 이를 영 의심쩍은 눈초리로 지켜보는 한 아이를 연쇄적으로 비추며 시작된다. 두 명의 내부인과 한 명의 외부인이라는 이 구조적 구성은 영화 내내 병렬적으로 제시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빅토르(토마쉬 코트)와 이레나(아가타 쿨레샤)가 민요를 수집하는 의도를 무시한 채 공연에 자신의 야심을 녹여내려는 카치마레크(보리스 쉭)가 그렇고,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빅토르와 줄라(요안나 쿨릭)의 사랑을 훼방놓는 카치마레크가 그렇다.


시대의 비극을 체화하기에 앞서 어쩔 수 없이 사랑영화인 ‘콜드 워’는, 물론 주인공 남녀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빅토르와 줄라는 폴란드에서 처음 만나는데, 민요를 수집하며 공연단을 찾아 떠도는 빅토르에게 줄라는 오디션을 보러 찾아온다. 그들이 심사위원과 입단 지망생으로 처음 마주하던 순간, 서로를 바라보는 시점 쇼트로 촬영된 둘의 모습은 첫 만남의 순간의 인상을 강렬하게 공유한다.


바르샤바에서 함께하던 그들은, 동독 베를린에서 공연 직후 헤어지게 된다. 이때 떠나는 것은 빅토르였다. 보호 감찰에 놓여있는 상황 때문에라도 불안정한 모험을 감행할 수 없었던 줄라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빅토르는 국경을 넘는 다른 이들을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내 줄라를 기다리지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정치적 망명자가 된 빅토르 그리고 유럽 순회 공연을 돌게 된 줄라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다시 만나지만, 이때도 빅토르가 먼저 떠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동독에서, 유고슬라비아에서) 빅토르가 줄라를 떠날 때마다 그들의 사이에 놓인 것이 카치마레크였다는 점이다. 동독을 떠날지 말지 고민하던 만찬 자리에서 줄라의 옆에는 카치마레크가 있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줄라의 공연을 찾아온 빅토르를 다시 만난 카치마레크는 인사를 건네지만, 그 직후 경찰을 동원해 빅토르를 열차에 태워 쫓아낸다.


두 명의 내부인과 그 사이에 놓인 한 명의 외부인. 허나 그 외부인이 없다 한들 그들의 평안은 소원해 보인다. 빅토르와 줄라는 결국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만나 함께하게 되지만, 파리에서도 누군가가 먼저 떠난다. 이때 먼저 떠나는 건 줄라였다. 왜 항상 누군가는 떠나야만 할까. (‘파리에 있어서 좋다’고 말하면서도) 그대로 머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폴란드에서는 폴란드를 떠나야만,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를 떠나야만 하는 이들. 빅토르가 폴란드를 떠나자 줄라는 프랑스로 뒤따라오고, 줄라가 프랑스를 떠나자 빅토르는 폴란드로 뒤따라온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들은 떠나야만 하지만, 동시에 함께여야만 한다. 이 역설에 ‘콜드 워’가 묘사하는 시대의 모순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동일한 노래가 다른 언어 그리고 다른 편곡으로 불리워지는 현실은, 나라를 버리거나 국적을 숨긴 채 불안정하게 떠돌아야 하는 이들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다.


극중 ‘두 개의 심장’이라는 노래는 줄라에 의해 두 나라의 언어로 불리워진다. 폴란드어(‘Dwa Serduszka’) 가사로 두 개의 심장과 네 개의 눈이 서로 함께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랑을 읊조리던 노래는, 프랑스어(‘Deux Coeurs’)로 번안되자 ‘시계추가 시간을 죽였다’는, 작사가에 따르면 강렬한 사랑에 빠진 후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빅토르와 줄라의 사랑에 있어서도 폴란드(어)에서의 이별은 프랑스(어)에서의 결합과 대치된다. 자유가 억압되는 폴란드와 자유가 보장되는 프랑스의 극중 상황은 아닌 게 아니라 대조되고 있는데, 가사가 다를지언정 멜로디가 동일한 그 노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본질만큼은 언제나 변함없다.



그렇다면 다시 폴란드로 돌아온 그들은 함께할 수 있을까. 스파이 혐의를 비롯한 온갖 죄를 뒤집어쓴 빅토르는 15년 형을 선고받고, 줄라는 그에게 면회를 간다. 함께하고자 하는 그들을 물론 시대가 가만히 둘 리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곳은, 혹은 그들의 사랑이 방해받지 않을 곳은 어디일까. 빅토르와 줄라는 폴란드를 떠나 자유를 찾고자 했지만 실패한 채 다시 폴란드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프레임 바깥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프레임이란 결국 폴란드라는 공간, 내지는 1950년대라는 시간을 의미할 것이다. ‘콜드 워’는 프레임을 떠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전술했었다. 사각의 프레임을 떠난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사랑이 훼방받지 않을 초월적 시공간으로 떠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빅토르와 줄라가 결혼 서약을 나누는 영화 마지막의 공간은, 얄궂게도 민요를 수집하던 당시 카치마레크가 혼자 방문한 적 있었던 곳이었다. 영화의 구조가 두 명의 내부인과 한 명의 외부인으로 짜여져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빅토르와 줄라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그들의 관계를 훼방놓는 카치마레크와 중첩된다. 그런데 결국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영원의 약속을 하는 빅토르와 줄라만의 공간이 카치마레크가 이전에 방문했던 공간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빅토르와 줄라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넓게 보자면 1950년대의 폴란드로 대변되는 시대고, 좁게 보자면 카치마레크라는 개인이다. 그러자, 빅토르와 줄라가 (그들의 사랑을 억압하는 폴란드 그리고 카치마레크를 동시에 상징하는 공간으로서의) 프레임을 떠나는 것은 구조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그 정당성을 확보한다.



경건할 정도로 간명하게 촬영된 영화의 마지막 쇼트에서, 줄라는 빅토르의 손을 잡고 저 쪽이 더 경치가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홀연히 사각의 프레임을 떠난다. 줄라가 나가게 해 달라고 말한, 그리고 빅토르가 나가게 해 주겠다고 말한 ‘여기’는 결국 폴란드(라는 시대) 그리고 프레임(이라는 영화)이다. 그들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훌쩍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짐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완성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시대의 표층과 불꽃처럼 뜨거운 감정의 심층 사이의 대립과 융합, 그리고 그 전쟁 속에 단단하게 자리한 심장serduszko과도 같은 사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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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워 / Cold War (Zimna Wojna, 2018)

dir.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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