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 '해피엔드', '토이스토리 4', '존 윅 3' 4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가닿지 못하는 꿈처럼 처연한 이야기.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을 알리체 로르바허의 신작 ‘행복한 라짜로’는 서정적인 정서를 통해 도식적인 상황을 능숙하게 풀어낸다. ‘행복한 라짜로’는 아무리 보아도 비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그 층위를 한 겹만 벗겨내면 어디서 보아도 현실에 뿌리내린 이야기가 된다. (이 영화를 수식하는 데 사용되곤 한 '마술적 네오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이야말로 이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성경 속 나사로를 직접적으로 플롯에 차용한 데에서부터 알 수 있듯, ‘행복한 라짜로’는 지극히 상징적인 작법을 사용한다. 이때 이 영화가 사용하고 있는 비유의 방법은 우화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은유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극중 인물들이 흉내내고, 언급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등장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행복한 라짜로’는 늑대와 양의 이야기이다. 이때 극 전체에서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라는 캐릭터가 마치 뿌옇게 부유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야말로 ‘행복한 라짜로’의 핵심일 것이다.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의 이분법적인 잣대로 명확히 구분될 수 없는 ‘라짜로’는 그렇기 때문에 양인 동시에 늑대이기도 하다. (둘 중 하나로 명확히 구분되는 다른 인물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더욱 그렇다.) 혹은, 모든 것을 떠나서 라짜로는 극 중반 안토니아(알바 로르바허)의 나레이션처럼 성자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종의 초월적 존재처럼 여겨지던 라짜로가 극 후반부에 마주한 현실의 벽이야말로, 이 영화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 벽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라짜로의 허탈함이야말로, ‘행복한 라짜로’(라는 아이러니한 영화의 제목)를 떠받치고 있는 무게에 다름없다. 비현실적으로 황홀한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그러나 동시에 현실적으로 허황된 꿈을 좇는 것만 같은 우화의 기묘한 뭉클함을 ‘행복한 라짜로’는 아스라히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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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라짜로 / Happy as Lazzaro (Lazzaro Felice, 2018)
dir. 알리체 로르바허 (이탈리아)
★★★★
'해피엔드' 속 해피엔드는 어디에도 없다. 미카엘 하네케의 이전 작품들처럼 치밀하지만, 이전 작품들보다 생경하다. 고전적인 작법 대신에 스마트폰의 촬영 프레임 캡쳐 등 현대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해피엔드'는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하네케적이다.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유발한다는 일종의 공감각적 정서를 여전히 유려하게 활용하고 있는 그의 실력은, 영화 속에서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다차원적으로 활용된다. 스마트폰 카메라 프레임의 안과 밖이라는 두 개의 층위가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극의 처음과 끝을 동일한 인물의 (스마트폰 프레임 속) 시점으로 병치하는가 싶더니, 프레임을 벗어나는 돌발적 상황을 통해 충격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장-루이 트랑티냥의 캐릭터를 통해서는 그의 전작 ‘아무르’를 에둘러 환기하기도 하고, 소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어느 지점의 대화에서는 ‘피아니스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결국 카메라를 든 화자가 어린 아이라는 점에서, ‘해피엔드’는 다가오는 (유럽 사회의) 미래에 대한 혐오와 연민으로 얼룩진 미카엘 하네케의 상념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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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Happy End, 2017)
dir. 미카엘 하네케 (오스트리아)
★★★
사실 '토이스토리 3'의 완벽에 가까운 엔딩을 고려하면, 이 트릴로지에 새로운 속편이 만들어지는 것에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예외적으로 아쉬운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뽑아내는 픽사 스튜디오의 저력을 믿기에 내심 기대해 본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조쉬 쿨리의 '토이스토리 4'는 딱 기대치 정도의 완성도를 지닌 영화였다. 물론 좋았지만, 픽사가 만들어 온 숱한 걸작 애니메이션들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리즈의 전편 '토이스토리 3'를) 고려한다면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시리즈로 다시 돌아온 (그리고 흥미롭게 변화한) 보 핍의 캐릭터가 인상적이고, 새롭게 등장한 포키의 캐릭터가 잔상으로 남는다. 다만, 기존 시리즈에서 활약해 왔던 다양한 캐릭터들이 극의 배경처럼 활용된 부분이 못내 눈에 밟히고, 예상 가능한 지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플롯은 더 잘 유용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보내주어야 하는 이별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복잡다단한 감정을 고스란히 끌어내는 엔딩은 여전히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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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 4 (Toy Story 4, 2019)
dir. 조쉬 쿨리 (미국)
★★★☆
압도적인 액션을 선보이던 시리즈의 화려한 정점. 1편에서 던져놓은 흥미로운 세계관의 설정을 2편에서 간신히 붙들어놓더니, 이번 3편에서는 그 동안 응축시킨 것을 폭발시킨다. 러닝타임 내내 밀도 높은 액션으로 가득한데, 마치 육탄전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는 듯 작정하고 달려든다. 총술, 검술, 무술은 물론 탈것을 이용하는 현란한 액션 시퀀스들이 관객들의 예측 가능한 지점을 가볍게 넘어서는데, 전혀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된다. 당연히도 그 중심에는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캐릭터가 있다. '매트릭스' 시리즈 그리고 '콘스탄틴'에 이어서, '존 윅'까지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어디까지나 이 시리즈는 키아누 리브스라는 배우의 파워를 십분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극중 '매트릭스'와 '콘스탄틴'의 명장면을 각각 떠올리게 하는 쇼트들이 삽입된 것이 착각은 아닐 것이다.)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액션 연출에 뛰어난 내공을 발휘했던 채드 스타헬스키는 ‘존 윅’ 시리즈의 감독을 통해 자신의 특장점을 확실히 어필한다. 그러니 결국, '존 윅 3: 파라벨룸’이야말로 채드 스타헬스키의 야심이 집약된 결과물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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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3: 파라벨룸 (John Wick: Chapter 3 - Parabellum, 2019)
dir. 채드 스타헬스키 (미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