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이던 우리 엄마는 왜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고 임영웅 유튜브만 볼까?
우리 외가는 대대로 씨네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건 외할머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모던-걸이었던 할머니는 첫째 딸인 이모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억지로 영화관에 취직시켜 버렸다. 엄마를 등에 업은 할머니는 매일 영화관으로 출근해서 지인찬스를 이용해 하루 종일 무료로 영화를 봤다고 한다. 덕분에 엄마는 말을 하기 전부터 영화를 보고 자랐다. 할머니는 엄마한테 밥도 안 주고 영화관에서 뻥튀기만 먹이면서 온갖 19금 영화를 보여줬는데, 엄마는 그 어린 나이에도 야한 게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즐겼다고 한다.
나도 말을 하기 전부터 엄마 옆에서 영화를 같이 봤다. 내가 영화관에서 본 걸로 기억하는 최초의 영화는 <내 사랑 컬리수>(1992)다. 컬리수가 미국 국가를 부르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 집착하는 엄마 덕분에 어린시절 부터 그 영화를 10번은 족히 넘게 봤고,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문화예술'이니 괜찮다며 어린 내게 19금 비디오를 제한 없이 빌려준 건 아직도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히치콕의 영화들도 엄마 덕분에 비디오로 같이 봤다. 고전 명작을 나와 제일 많이 같이 본 건 우리 엄마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마주친 씨네필이었고, 내게 영화를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우리 관계에는 기복이 있었지만 그래도 종종 같이 영화를 보러 다녔다. 엄마와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토드 헤인즈의 <캐롤>(2016)이었다. 엄마는 캐롤이 간만에 만들어진, 고전적인 향취를 가진 정말 고급스럽고 우아한 영화라며 찬탄을 했다.
이후로 또 사건이 벌어져 내가 한 동안 엄마와 인연을 끊는 바람에 그 뒤로는 같이 영화관에 간 적이 없다. 동생도 곧 집을 나왔다. 그리고 엄마는 임영웅에게 빠졌다.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2023)은 아마도 엄마가 5년 만에 극장에 가게 되는 계기가 된 영화일 것이다. 엄마는 왜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게 됐나? 그리고 임영웅은 어떻게 엄마가 다시 영화관에 가게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엄마에게 '영화를 본다', '영화관에 간다'는 것은 평생동안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이번에 엄마와 함께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을 관람하고, 엄마에게 있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와 '극장에 간다는 것' 그리고 '문화생활의 총체로서의 임영웅의 의미'를 인터뷰하고자 한다.
임영웅 콘서트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고 해서 그걸 무시하고 관객들을 경시하기만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참기 힘들다. 그 사람들도 한때는 씨네필이었으며, 문화인이었고,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게 되었다가 임영웅을 보러 영화관에 가는 것이다. 이번에 그들이 영화관에 가는 건 이전과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문화생활이고, 임영웅 영화가 어떻게 그들에게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함께 임영웅 영화 보러 간 후기와 인터뷰 녹취록 전문은 씨네픽션 3월호 '씨네에세이'에 실릴 예정입니다.
씨네픽션 구독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3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