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네피에 Jan 25. 2022

라스트 듀얼 - 이겼는데, 졌습니다.

만화경으로 영화보기

글래디에이터 (2000)
"내 이름은 막시무스 데시우스 매르디우스.
북부군의 총사령관이자 펠릭스 부대의 장군이며,
진정한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충복이며,
불타 죽은 아들의 아버지이며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위의 대사는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가 아내와 아들을 학살한 코모두스 황제앞에 돌아와 내뱉는 말이다. 한 문장 안에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명대사,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글래디에이터'를 기억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팬이라면, 그의 최신작인 '라스트 듀얼' 역시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영화의 서사방식이나 주제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20년 전 '글래디에이터'에서 느꼈던 음울한 감동은 '라스트 듀얼'에서도 되살아나고 있다

왼쪽부터 장 드 카르주(맷 데이먼), 쟈크 르 그리(아담 드라이버), 마르그리트 드 카르주(조디 코머)

'1'사건 '3'관점

'글래디에이터'는 특별한 주제나 메시지를 찾을 필요가 없는 직관적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그러나  '라스트 듀얼'은 이런 '글래디에이터'와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4세기 파리, '장 드 카르주'와 '자크 르 그리'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함께 오랜 시간 등을 맞대 온 전우이자 친구였고 영주 피에르를 섬기고 있었다. 카르주는 성격이 유하지 못해 고집이 셌고, 점점 영주의 눈밖에 나게 되었다. 반면 그리는 언변이 뛰어났으며, 여색을 밝히는 영주와 죽이 잘 맞았다. 그리가 영주의 총애를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안, 카르주와 그리의 관계는 점점 불편해졌으며 결국 앙숙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장에서 돌아온 카르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부인 마르그리트가 그리에게 '겁탈'을 당했음을 고백한 것이다. 카르주는 분노에 휩싸여 고소를 했으나, 영주는 무효처분을 내린다. 카르주는 분노가 폭발해 직접 왕에게 상고했고, 단순한 재판이 아닌 '결투 재판'을 제안한다. 이는 결투에서 승리한 자의 주장이 진실로 인정되는 방식이었다. 카르주가 그리를 죽이면 그리의 겁탈이 증명되는 것이고, 그리가 카르주를 죽이면 마르그리트무고죄가 성립되는 것이었다.

서로를 향해 창을 세우고 돌격하는 카르주와 그리

영화는 최후의 결투 날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말에 올라타 창을 들고 서로에게 돌격하던 두 남자가 부딪히는 순간, 영화는 사건의 시작로 돌아간다. 카르주, 그리,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이 각자 자기의 관점에서 차례대로 보여지다가 다시 결투 날에 도달한다.

가문의 명예와 권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주 '장 드 카르주'

같은 사건 다른 연출

세 인물의 각 챕터는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연출적 분위기는 각 캐릭터가 가진 성격을 닮아있다.  명예와 권위를 중요시하며 차가운 성격을 가진 카르주의 챕터는 굉장히 단조롭다. 장면의 표현 방식이 굵직하고 담백하며, 감정표현이나 세부적인 표현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마치 이것은 카르주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묘사하는 듯하다.  

여성 편력이 대단하고 화술에 능한 '자크 르 그리'

그리의 챕터는 유희와 쾌락이 가득하다. 또한 마르그리트에게 끌리는 장면에는 표정이나 눈빛 등에 더 많은 슬로모션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감정적인 디테일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마르그리트가 그리에게 화해의 키스를 해주는 장면이다. 전 챕터의 카르주나 후 챕터의 마르그리트의 관점에서는 의미 없는 키스로 진행되는 장면이지만, 그리의 챕터에서만은 둘 사이의 묘한 교감이 묘사되고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마르그리트가 그리에게 겁탈당하는 장면 또한 마르그리트의 챕터에서는 처절한 저항이 그려지고 있는데 반해, 그리의 챕터에서는 미묘한 감정들이 오가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소신을 가진 '마르그리트 드 카르주'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마르그리트의 챕터이다. 앞서 등장한 챕터에서 마르그리트의 모습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르그리트의 챕터에서 그녀의 본모습이 보인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능력과 혜안을 가진 품위 있는 여성으로서의 면모가 나타나는 것이다.


겁탈당한 사건을 함구하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의견을 굽히지 않는 모습, 결투 재판을 하겠다는 남편에게 '허영심'이라며 일침을 가하는 모습 등에서 그녀의 소신과 가치관을 들여다볼 수 있다.

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2021)

서사방식이 은유하는 메시지

'라스트 듀얼'의 서사방식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결투 재판'이라는 아이러니와 강력하게 연결되어있다.


첫째, 당시 프랑스의 시대적 상황에서 마르그리트에 대한 그리의 겁탈'성폭행'이나 '강간'같은 범죄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말하고 있듯 이 사건은 카르주의 '재산권 침해'에 관한 것이다. 그 말인즉슨, 마르그리트가 가해자를 고소하는 원고인이 될 수 없고, 단지 카르주의 소유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배제된 재판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결투 재판'은 실제로 그리가 마르그리트를 겁탈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재판이 아니다. 결투에서 승리한 자가 '신의 뜻'에 따라 옳은 것으로 증명되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겁탈인지 아닌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카르주가 그리를 죽이면 '재산권 침해(겁탈)'가 인정되는 것이고, 그리가 카르주를 죽이면 마르그리트가 그리를 '무고'한 것이 인정되어 화형에 처해진다. 이것은 '진실'이 배제된 재판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자 가장 큰 피해자인 마르그리트가 '결투 재판'으로 얻는 것은 '겁탈의 증명'이거나 '화형'이다. 이 재판의 결과는 무엇이든 간에 필연적으로 마르그리트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 공식적으로 마르그리트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과 더불어 챕터들을 살펴보면, 챕터의 주체들이 마르그리트를 인식하는 방식에도 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카르주는 마르그리트를 후계자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리 역시 마르그리트를 성욕의 대상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두 남자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배제는 마르그리트를 하나의 인격체,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마르그리트의 챕터에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마르그리트의 챕터가 진행될수록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인간' 마르그리트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항상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려는 적극적이고 소신 있는 인간이었다. 그제야 겁탈 사건의 '진위여부'에 가려있던, 마르그리트라는 인간에게 일어난 범죄와 그녀의 고통인지되었다. 그저 카르주와 그리의 관점을 따라오다 보니, '겁탈인가, 불륜인가'에 대한 것에만 매몰되어 인간 마르그리트를 잊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서사방식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당사자들의 존엄성과 권리가 무시된 채로,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파헤쳐지고 결정되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최후의 결투를 준비하는 카르주와 그리

 '결투 재판'은 반복된다

영화의 메시지는 '시각마다 다양한 진실이 있다'는 식의 진부한 교훈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진실을 찾는답시고 짓밟아버린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진실'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는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인물들을 가장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장면이 이 작품의 최고 명장면이다. 물론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기에 액션 등 연출적인 부분이 완벽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은 것이 아니다.


이 최후의 결투 장면이 최고의 장면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결투의 목적, 이유, 결과 중 마르그리트를 위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아이러니때문이다.  


현실에서도 결투 재판은 반복되고 있다. 말했다시피 이 '결투 재판'에는 승자가 없다. 오직 인류라는 패자가 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많.하.않.'의 우화 - '소리도 없이' 20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