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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Dec 20. 2019

잘 가요, 안나 까리나

안나 까리나 타계, 그녀에 대한 기억

지난주 금요일인 12월 14일, 안나 까리나가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안나 까리나는 60년대 초 프랑스 영화 경향인 누벨바그의 대표 여배우다. 누벨바그의 핵심 인물인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작은 군인 Le Petit Soldat> (1960)으로 데뷔해, 그의 뮤즈로서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이외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보여줬던 그녀는, 직접 장편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고,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가 안나 까리나를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건, 고다르의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t le Fou>(1965)를 통해서였다. 여전히 옛날 영화는 좀 유치하지 않나 생각했던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다. 나는 자유롭고 거만하며 강렬한 이 영화에 놀랐는데, 무엇보다도 안나 까리나의 모던한 아름다움에 빠졌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극 중 역할, 그리고 조금은 차가운 태도로 상대를 흘겨보는 듯한 찢어진 눈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모르던 치명적 아름다움이었다.


장 뤽 고다르, <미치광이 삐에로> (1965)


<여자는 여자다 Une femme est une femme> (1961)의 아파트 거실에서 노래를 부르며 활보하던 어린 신부,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1962)의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창녀, <국외자들 Bande à part>(1964)의 비스트로에서 두 친구와 춤을 추던 아가씨 등. 여러 작품 속에서 발견한 안나 까리나는 다채로웠다. 때로는 명랑했고, 때로는 영악했으며, 때로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슬퍼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웠다.

영화 화면비에 대한 학교 과제로 안나 까리나가 주연을 맡은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를 분석한 적이 있다. 고다르는 이 영화를 12개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영화라고 명명했다. 클래식한 화면비에 흑백으로 찍힌 이 영화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창녀가 된 나나의 삶을 12장의 챕터로 보여준다. 당시 고다르와 까리나는 부부였는데, 영화 끝부분에서 감독은 에드가 엘런 포의 <타원형 초상화> 인용을 통해 “이것은 사랑하는 여자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 우리의 이야기”라고 밝힌다. 고다르의 대표적 걸작인 이 영화는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장 뤽 고다르, <비브르 사 비> (1962) 중. 안나 까리나를 안고 있는 남자는 장 뤽 고다르다.


2015년 봄, 파리 중심에 위치한 카페에서 알바하던 시절, 근처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는 안나 까리나를 본 적이 있다. 전성기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인터뷰를 통해 나이 든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챙이 큰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머리 스타일, 앞머리에 어깨를 조금 넘는 생머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가끔 파리에서 유명인들을 목격하곤 했지만, 항상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누벨바그의 여신, 안나 까리나가 옆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데 바로 제 갈 길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에게 동경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다. 용기를 내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침 휴대폰 배경 화면에는 <비브르 사 비> 속 그녀의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마담 까리나. 그녀에게 내 휴대폰을 건넸다. 이것 좀 

보세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비브르 사 비>군요. 미안해요, 제가 지금 오른손이 다쳐서. 안나 까리나는 나에게 왼손을 내밀었고, 난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자리를 떴다. 젊은 시절, 세계의 영화판을 바꾼 작품들의 중심에 있던 그녀를 만나다니, 믿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감격한 나는 근처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며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래도 될 날인 것 같았다.



찬란하게 빛났던 60년대 프랑스 영화계, 그 많은 주역이 사라졌고,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 영화에 삶을 바친 그들은 작품을 남겼다. 그들의 영화는 국경을 넘어 후대로 전해질 것이고, 걸작들은 계속해서 사랑받을 거다. 1962년에 제작된 <비브르 사 비>를 보고, 반세기 후 늙은 여배우에게 인사를 건네는 한국 여자애가 있는 것처럼.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안나 까리나지만, 언제든 영화를 통해 그녀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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