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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Dec 20. 2019

이제는 고요함이 필요한 청춘

소피 르투르뇌의 <칙스 Cheeks>

프랑스 파리, 갓 스무살이 넘은 대학생 팜(Pam)은 또래인 마농(Manon)과 함께 산다. Ranch(불어 정의 - 미국식 목장) 라고 명명한 이 아파트는 그녀와 친구들의 아지트다. 그들은 Ranch의 거실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또래친구 집단의 중심에서 팜은 즐거워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한국 제목으로는 <칙스 Cheeks >라고 소개되어 있는 (다음 영화 페이지) <la vie au ranch>는 프랑스 영화감독 Sophie Letourneur의 첫 장편 영화다. 자전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한 중단편 영화들을 연출했던 그녀는 이십대 초반 또래 여자친구들과 겪었던 삶의 경험을 첫 장편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성인이라 술, 담배, 외박은 자유롭지만, 여전히 중고등학생처럼 친구들과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시기를 보여준다. 아직 사회에서의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무리 내의 즐거움이 더 중요해보인다.  

여성의 시선으로 담긴 프랑스의 젊은 여자친구들의 모습은 이상화되지 않은채 매우 거칠고, 요란하다. 이미지도 연기자를 미화하지 않는 내츄럴한 톤이다. 흔한 틴에이저 무비에서 남자친구들의 서사 비중이 꽤 큰 편이라면, 이 영화에서는 남성의 존재가 그저 여자 캐릭터 소개하는 데에 그칠 뿐이다. 파티씬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초반 한 시간 가량 시끌벅적한 집단의 대화를 계속 보여주는데, 그 안에 개개인의 특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개별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별로 없으며, 그저 서로 닮은 또래 집단 안의 친구들일 뿐이다.




또래 집단에 회의를 느끼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건 한 소녀의 매우 복합적이고 내면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인 팜과 거리를 유지한 채 집단 내의 다이내믹에 더 치중한다. 카메라는 그들의 대화를 매우 생생하게 담아내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친밀감을 형성한 그룹의 수다에 관객이 함께 웃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인 팜과 관객들이 친밀해질 수 있는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늘 친구들과 함께하고, 그러는 동안 그녀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룹에서 출발해 개인으로 다가가는 서사의 문제가 아닐까. 집단은 각 개인의 특성의 합이 아닌 다른 것이고 (여기서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요란한 일상), 갑자기 개인에게 다가가는 순간 뭔가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놀 때만 어울려 만나던 친구랑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고, 앞으로 어떤 것을 공유해야 할 지 좀 난처해진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재현하려는 욕망이 어쩌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을까? 파리에서 Trash 하게 노는 젊은이들의 씬의 비중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그 연출이 극사실적이어서 연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왜냐하면 1. 한 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전부 나름의 대사를 가지고 있고,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2. 매우 다이나믹한 리듬으로 오고가는 말들은 말장난이나 사소한 말들로, 극의 전개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고로 대사들을 상상해서 쓰지 않았을 것 같았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자면, 감독은 클럽에서 실제로 서로 친한 여자친구 집단을 발견했고, 대부분 연기 경험이 없는 그녀들에게 영화에 출연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간단한 얼개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그녀들에게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즉흥으로 연기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 녹음한 대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즉흥 연기 덕분에 그녀들이 쓰는 단어를 캐치해 낼 수 있었고, 배우들의 실제 모습에 적합한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진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PS. 프랑스에서는 마치 최신 테크놀로지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것처럼, 픽션을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시도는 나날이 정교해진다. 많은 영화가 극사실주의에 도전하는데, 유명한 작품으로는 2008년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랑 캉테 Laurent Cantet의 <클래스 Entre les murs>와 압델라티프 케시시 Abdellatif Kechiche의 <Mektoube My Love>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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