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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Dec 20. 2019

시네아스트 엘리아 슐레이만이 바라보는 세상

엘리아 슐레이만의  <머스트 비 헤븐>

«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관한, 이국적인 영화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프로젝트는 굳이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에요. 충분히 팔레스타인적이지 않네요. » 영화 <머스트 비 헤븐> 중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한 프로듀서가 영화감독 엘리아 슐레이만에게 하는 말이다. 뉴욕에서 만난 친구는 그를 « 팔레스타인 출신인데 코미디 영화 만드는 사람 »이라고 소개하며, 마치 그 둘 사이에 모순적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엘리아 슐레이만이 연출과 동시에 직접 주연을 맡은 <머스트 비 헤븐>은 팔레스타인 영화감독이 바라보는 세상, 그 시선에 관한 영화다.


극 중 본인 역할로 등장하는 엘리아 슐레이만은 팔레스타인 나사렛에서 산다. 그는 다른 대부분의 영화 주인공들과 다르게, 위기에 처해있거나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하지 않는다. 꽤 한가하게 보여지는 일상 속, 엘리아 술리만은 호기심을 품은 눈으로 주변을 관찰한다. 이웃 남자가 자신의 레몬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것, 몰려다니는 거리의 깡패들, 갑자기 자신을 붙잡고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 노인, 바로 옆에서 노상 방뇨를 하며 술병을 깨는 사람을 처리하는 대신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곳의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 경찰들의 모습 등. 별다른 극적 구조 없이, 영화는 나자렛을 떠나 파리와 뉴욕을 여행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네아스트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무성영화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지 자체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어떤 것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한 사람의 세계관 혹은 개성과 관련된 문제다. 영화에 출연하는 엘리아 슐레이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변을 관찰할 뿐이지만, 우리는 그가 바라보는 세계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는 굉장히 섬세한 관찰력과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영화는 마치 자신이 겪은 황당한 일들을 들려주는 원맨쇼와 비슷한데, 그가 바라보는 시선, 그 유머 코드가 묻어나는 이미지 자체가 개그맨의 말을 대신한다. 파리의 한 정원, 사람들이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마다 그 의자를 재빨리 가로채는 사람들, 루브르궁 근처를 지나가는 장엄한 말들 뒤를 바로 뒤쫓는 말 똥 치우는 차 등. 파리에 막 도착한 그는 거리의 테라스에 앉아 넋이 나간 채로 여자들을 관찰하는데, 고속촬영으로 찍힌 이미지들은 음악과 함께 꽤 길게 진행된다. 엘리아 슐레이만의 솔직한 시선을 코믹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 장면이다.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간 엘리아 슐레이만의 관점은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왜곡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뉴욕의 한 슈퍼마켓에서 총을 차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뉴욕에서는 어린애도 할머니도 모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총을 차고 다닌다. 센트럴 파크에는 유모차 부대들이 공원의 악사들 연주에 맞추어 단체로 춤을 추기도 한다. 사실주의적 경향이 강한 요즘 대부분의 영화에 비해, 엘리아 슐레이만은 이런 환상적인 장면에서 이미지 자체에 자신만의 관점과 상상력을 구현한다.


영화 시놉시스에서 엘리아 슐레이만은 밝힌다. « 나는 이전 영화들에서 팔레스타인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새 영화 <머스트 비 헤븐>은 세계 어느 곳이든 팔레스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 더 이상 나사렛에서도,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머스트 비 헤븐>의 엘리아 술리만은 다양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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