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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Dec 20. 2019

눈 깜빡임과 영화 편집

월터 머치 Walter Murch 의 <눈 깜박할 사이>

지인의 추천으로 월터 머치의 <눈 깜박할 사이>라는 편집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다. 월터 머치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 <아포칼립스 나우>, 밀로스 포만의 <프라하의 봄> 등 거장들의 명작에 참여한 미국 편집자다. 저자는 수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편집에 대한 실제적인 충고 및 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소개한다. 살짝 복잡하다 싶은 개념들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설명되어 있어, 저자로부터 영화에 대한 통찰을 명쾌하게 전수받는 느낌이 든다.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편집 기술에 대한 내용도 훌륭했지만, 편집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에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스크린 안의 배경, 인물 등 이미지 안의 요소들이 바뀌는 것은, 편집이 가능한 영상 매체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이 비연속성 이미지의 흐름을, 어떻게 관객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저자는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의 현실이 연속성에 기반하는 반면, 꿈을 꾸는 동안에는 비연속적인 이미지들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 꿈을 상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더는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될 것 »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꿈 속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영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월터 머치의 의문은 계속된다.  무의식적 활동인 꿈의 장면 전환보다 실제 영화의 편집이 너무 거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던 도중 그는 영화감독 존 휴스턴의 인터뷰를 읽게 된다. 예술 중에서도 영화가 생각의 흐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눈의 깜빡임을 영화 편집의 ‘컷’에 비유한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눈 깜빡 - 컷. 겨울에 도착하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한 소녀를 떠올려보자.  버스 도착 예정 시간표, 눈 깜빡-컷, 옆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눈 깜빡-컷, 시린 손 , 눈 깜빡-컷. 저자는 존 휴스턴의 말에 동의하며, 영화의 편집 원리가 우리의 일상 속에 언제나 존재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의 장면 전환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저자는 일상생활에서의 ‘눈 깜빡임’과 영화 편집 지점에 대한 긴밀한 연관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영화 <컨버세이션>을 작업할 때, 주인공을 연기하던 진 해크만이 눈을 감는 순간들이, 자신이 장면을 자르던 컷의 순간들과 비슷한 지점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해했을 때 혹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싶을 때 눈을 깜빡이는 경향이 있다. 인물의 심리 흐름을 따르는 진 해크만의 내면 연기가 실제로 상황에 처한 인물이 할 법한 리액션을 보여주었고, 그가 눈을 깜빡이는 순간은 어떤 한 상황을 개인이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인간의 사고 과정에 비유되는 영화의 경우, 이 눈 깜빡임을 고려해서 편집하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화 중 눈 깜빡임으로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적절한 순간에 눈을 깜빡이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불편함을 느낀다. 월터 머치는 완벽한 편집 흐름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관객들의 눈 깜빡임과 장면 전환 순간이 거의 일치할 거라고 주장한다. 영화의 흐름이 관객들의 사고 흐름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현재 편집을 하는 나에게, 영화의 편집점과 눈 깜빡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귀중한 정보였다. 그동안 대충 감, 리듬이라고 생각했던 편집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씬들에서 깜빡이는 나의 눈, 타인의 눈을 통해 작업을 수정해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동안 과도한 편집으로 관객들의 사고를 조정하고, 감정을 강요하는 영화를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 영화들은 관객들을 낮은 수준으로 상정하고, 자유로운 사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편집이 최소화된 뛰어난 작가영화들을 보면서, 씬 내부에서 컷을 나누는 데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다시 한번, 영화과 관객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쇼트들을 적절한 편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나 균형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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