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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Dec 20. 2019

디테일이 주는 울림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

헤어진 연인에 대해 ‘오랜만에 봤는데 여전하더라’라는 말. 그 안에는 당사자만 아는 사소한 것들이 담겨있다. 노아 바움백의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는, 이러한 너무나도 개인적인 작은 울림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에 성공한다.

영화는 한 커플이 상대방에 관해 묘사하는 몽타주로 시작한다. “니콜은 누구와도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잘라주곤 했다. 그녀는 마시지도 않는 찻잔을 집안 곳곳에 두었다.” 그리고 남편인 찰리에 대해 니콜이 말한다 : “찰리는 전기를 아끼는 게 습관에 밴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와라도 가족처럼 지낼 줄 알았다. 그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는 일이 흔했다.” 영화는 내레이션에 해당하는 배우들의 사소한 행동들을 보여주면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친밀감을 전달한다.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이 몽타주는 사실 이혼 중재 프로그램 일부인 ‘상대방의 장점에 관해 적기’ 과제였다.

그렇게 영화는 뉴욕에 사는 연출가 찰리와 그의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 니콜의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니콜은 커지는 남편의 명성에 가려 점점 줄어드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때마침 고향인 LA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제안이 들어오고, 그녀는 아들인 헨리와 함께 LA 고향집으로 떠난다. 그들의 이혼은 니콜이 캘리포니아 변호사인 노라를 만나면서 구체화된다. 법적으로 진행되는 그들의 이혼은 연극 연출가인 찰리에게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아들 양육권 문제는 구차하게 흘러간다.




커플의 이별을 다룬 영화로서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가 가지는 야심은 디테일에 있다. 영화 초반에 묘사되었던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의 모습’은 영화 전체에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복잡한 이혼 과정을 묘사하는 도중 니콜과 찰리가 자신이 사랑했던 상대방의 모습들을 다시 발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LA의 니콜 집에 들른 찰리는 차갑게 집을 나서는데, 그러면서도 전등 스위치를 끄는 것을 잊지 않는다. 긴 찰리의 머리를 본 니콜은 그의 머리를 잘라 준다. 사소한 제스처와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상대방을 향한 가슴 아픈 미련이 묻어난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차원이 다른, 매우 중요한 감동의 순간도 있지만, 대게 사람들이 삶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소소한 것이다. 이런 일상을 채우는 작은 이야기들은 개인적이고 실없는 경우가 많아, 그것만으로는 어떤 스토리가 되기 힘들다. <결혼 이야기>가 이혼 법정 절차 같은 이별의 과정에 관련한 소재를 거쳐야 했던 건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다만 그 부분이 너무 길고, 복잡하고, (LA 사람들의 캐리커쳐로) 경박해서, 영화가 중간 부분에서 길을 잃는 건 아닌가 싶다. 끝까지 보지 않았으면 이 영화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PS. 영화를 통해 어떤 한 가지를 말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봉준호는 단순히 김혜자가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너무 찍고 싶어서, <마더>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사람마다 영화를 하고 싶은 이유는 다 제각각이지만, 대중예술인 영화는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어내야 하는 핑계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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