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fille Dec 20. 2019

다시 찾은 바닷가

프랑스 도빌 Deauville, France

어제 정오쯤 남자친구가 갑자기 도빌 Deauville 에 가자고 했다. 도빌은 프랑스 북쪽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방의 해안가 도시로, 파리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일단 좋다고 했다. 그가 바로 직전의 말다툼에서 내가 항상 제멋대로 라며 자기가 얼마나 맞춰주는지 알기는 하냐며 서운함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화해의 제스처를 관대하게 건네는 그는, 도빌에 가서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자고 했다.

삼 년 전에 한 번 도빌에 간 적이 있다. 유난히 힘들었던 2016년 겨울, 모든 의욕을 잃고 내 존재에 대한 총체적인 의심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혼자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친구 유는 룸메이트가 자리를 비운 동안 본인의 아파트에 휴가를 오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고마운 제안에 냉큼 짐을 싸 그녀의 집으로 갔던 첫날, 그녀의 친구인 원이 집에 놀러 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원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함께 도빌에 가자고 졸랐다. 다음 날 아침에 기차를 타고 출발해 한나절을 보내고 오후 여섯 시쯤 돌아오자고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탁 트이는 바다를 보러 간다는 것에 신났을 거다. 그러나 우울함에 찌들어 있던 당시에는 어딜 가도 불행할 걸 알았다. 문제는 도빌에 가서 해결될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파리에 남아 책을 들여다본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었다.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다만 함께하는 두 사람의 일탈을 나의 우울함으로 전염시킬까 두려웠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도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금방 잠에 들었다. 금세 도착한 도빌에는 노르망디의 독특한 건축물과 배들이 즐비한 항구가 있었다. 날은 맑았고 바닷바람이 꽤 불었다. 활달한 원은 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돌아다녔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치이던 유도 갑작스러운 여행에 조금 들뜬 것 같았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푹 넣고 말없이 걸었다. 계속 불안하고 두려웠다. 아름다운 풍경조차 즐기지 못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그녀들과 함께 걸었던 해안가를 삼 년 후 남자친구와 함께 걸었다. 겨울 바다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지난날의 괴로웠던 마음이 아찔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전에 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전보다 훨씬 잘 지내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여행의 공간에서도 일상의 걱정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직도 씩씩한 사람이 되려면 멀었구나. 나는 여전히 마음이 빈곤하구나.

그래도 전에 보지 못한 예쁜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족과 함께 해안가를 산책하고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사랑을 나누어주는 예쁜 강아지들.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조개껍질 무덤 위를 요란스럽게 걷고, 바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함께 오지 못한 나의 고양이에게 줄 선물로 예쁜 조개 껍질도 몇 개 주웠다.

작가의 이전글 디테일이 주는 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