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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fille Dec 20. 2019

홍상수 감독님, 고맙습니다

다른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 홍상수 감독님

1.


« Tu viens d’où, toi ? 넌 어느 나라 출신이야 ?»

« Je viens de la Corée du sud. 한국에서 왔어. »

« Ah, j’adore HSS. 정말? 나 홍상수 완전 좋아하는데. »


프랑스 파리에서 영화를 공부한 지도 이제 6년 정도가 지났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 대부분이 영화과 학생이거나 영화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중 거의 모든 사람이 홍상수 감독의 팬이었다. 완전 팬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그의 영화를 알았고, 매우 흥미롭게 여겼다.


매번 같은 레퍼토리가 지겹긴 했지만, 어쨌든 나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니까,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교수님들은 내가 홍상수에 관련한 논문을 쓴다고 하니 한국에서 그에 관한 자료를 가져올 것에 환영했고, 친구들은 그의 영화 개봉시기마다 신작 어떠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졸업작품을 위해 썼던 시나리오는 술 좋아하는 여자애가 하룻밤 동안 우연을 거듭해 남자애들을 여럿 만나는 내용이었는데, 글을 읽은 선생님들은 항상 홍상수 이야기를 했다. "며칠 전에 홍상수 영화 봤는데 너랑 네 시나리오가 생각나더라."




2.


홍상수 영화를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의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가 있다. 감독 특유의 유머를 되새기며 짓는 미소일까? 그의 영화 속에 절제된 섹스에 대한 욕망 때문일까? 왠지 대화하며 그의 영화 속 세계로 흘러 들어가는 것만 같다. 금방 정체가 들어날 욕망을 품고 있는, 마주보고 술을 마시는 남녀의 대화 같은 것. 우리가 그의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표현들로 치장하며 시간을 때울 때, 머릿 속은 그 욕망의 긴장과 유머로 가득 차있다.


가끔  모르는 남자애랑 홍상수에서 시작하는 대화를 나눌 때면,    없는 자신감으로 솔직해진다. 태도도 뭔가 쎄진다. 그럴 때면 왠지 그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섹시하게 느껴진다. 그가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의 당차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통해 한국 여자인 나를 바라보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녀들의 이미지를 이용해 유혹을 하고 있는 건지 구분이  간다. 어쨌든 짜릿하게 흘러가는 대화의 순간이다.




3.


나는 말하자면 ‘홍상수 키드’다. 이천십년대 초반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 모여 있던 다른 친구들처럼. 스무 살이 되어 처음 발견한 그의 영화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영화에 이런 형식이 존재할 수 있구나. 영화를 구조적으로 만들어, 그 안에 서사 이외에 아닌 다른 의미들을 부여할 수도 있구나. 거기에는 인공적인 예술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성, 통찰. 내가 영화에서 찾지 않았던 것들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 미니멀한 구조 혹은 통찰의 메세지를 유머가 자연스럽게 둘러 싸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김상경 배우의 팬이기도 해서, <생활의 발견>이나 <극장전>에서 나오는 알쏭달쏭한 그를 많이 좋아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 세상에 대해 이해하는 게 별로 없었지만, 솔직하고 매력적인 건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재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남자든 여자든 한순간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구나. 어른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일이 많이도 벌어지는구나. 그의 영화가 자주 코미디로 분류되는 건, 등장인물들 사이의 어눌하면서도 우스운 특유의 기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임지지 못할 가벼운 욕망을 따른 남자주인공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나는 그걸 코미디라고 여겼다.


그의 영화를 좋아했던 나도 나름대로 코믹한 삶을 살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연이나 작은 모험들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들을 대립하거나 병렬하면서. 가끔 삶의 쾌락을 가져다준 건 순간의 감정 혹은 욕망을 참지 못하고 벌어진 일들이었다. 나의 행동을 비웃기도 했지만, 삶이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순간이 없는 일상은 나중에 편집될 지루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제 서른이 다 되고, 스무 살 때 그의 영화를 보고 자라난 게 어쩌면 잘못된 교육이라고 가끔 생각한다.


<극장전>, 자기도 모르게 우리는 픽션을 모방하거나, 픽션을 자기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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