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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Mar 20. 2018

[영화 리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첫사랑을 기억하는 당신을 위한 영화

첫사랑을 기억하는 당신을 위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아미 해머, 티모시 샬라메 

개봉일   2018. 03. 22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어딘가. 고고학자이자 교수인 펄먼은 매년 여름 자신의 이탈리아 별장으로 대학원생들을 초대한다. 1983년 여름, 미국인 올리버(아미 해머)가 펄먼을 방문하고 올리버는 펄먼의 아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잊지 못할 여름을 보내게 된다.  

1983년.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컴퓨터의 보급도 일반화되지 않았을 시절, 이탈리아 남부의 쏟아지는 여름 햇살만큼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17세 소년 엘리오는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거나 수영장에 몸을 담군 채 편곡을 하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시내 바에서 시간을 보낸다. 집 마당에는 각종 과일 나무들이 있고, 집 안 곳곳에는 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책들이 즐비하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가 자유자재로 오가는 별장에는 매일 저녁 다양한 사람들이 초대되고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엘리오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영화 속 엘리오의 가족은 부르주아 엘리트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피가 섞인 유대인이다. 아들과는 불어로 남편과는 영어로 가정부와는 이태리어로 대화 하는 엄마 아넬라는 아들에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지를 아들의 선택에 맡긴다. 그리고 아빠 펄먼은 한참 어린 대학원생이 자신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자신의 오류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후배의 총명함을 존중하는 학자이면서 아들에게는 그 어떤 권위와 금기도 내세우지 않는, 한마디로 쿨한 중년이다. 이 리버럴한 가족 분위기 안에서, 십대의 동성애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들의 성정체성 혼란을 이야기하는 데 반해 엘리오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열일곱의 소년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는지 영화는 서두르지 않고 그의 심리를 천천히 따라간다. 흠잡을 데 없이 매력적인 외모, 솔직하고 무심해 보일 정도로 스스럼없는 태도의 미국인 청년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적대감을 동시에 느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작은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를 자극한다. 시내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올리버와 함께 외출했을 때, “나중에 보자.”하며 무심하게 혼자 가버리고, 자신이 하는 일들에 관심 없어 보이던 올리버가 자신의 피아노 연주에 관심을 보인 것에서 엘리오는 기쁨을 느낀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이 쓰이던 소년은 이때부터 상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확신해나가기 시작하고 여자와 끈적한 춤을 춘 올리버에게 자신의 질투심을 표출하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상대가 남자여서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고민하고 망설였던 엘리오는 엄마 아넬라가 읽어준16세기 프랑스 로맨스 소설 ‘헤프타메론’의 한 대목(기사가 공주에게 고백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는)을 듣고 “넌 정말 모르는 게 없구나.”하고 말하는 올리버에게 “정작 알아야 할 것은 하나도 모르는 걸요.” “당신이 알아야한다고, 아니, 알아줬으면 해서 말하는 거에요” 하고 말한다.   


고백을 하고, 올리버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엘리오는 올리버와 첫 키스를 하게 되고 이를 기점으로 엘리오는 과감해진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외모는 물론이고 주변 환경, 성격, 심지어는 입는 옷의 색도 다르다. 그런 그들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처음 시내 외출을 함께 했을 때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이 동네에서 유대인은 우리가족과 형 밖에 없어요.”라고 말한다.) 엘리오가 올리버가 걸고 있는 것과 똑같은 유대인 목걸이를 한 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밝히는 것이, 양성애자로서의 자신을 깨닫고 인정하는, 정체성의 확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올리버와의 공통분모를 찾은 엘리오가 조금이라도 그에 가까이 다가가기위해 마치 연인들이 반지로 사랑을 확인하듯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엘리오가 한 걸음 다가가면 올리버는 한걸음 물러선다. 영화는 철저하게 엘리오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올리버가 어떤 갈등을 겪는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보수적인 미국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가 느꼈을 심적 갈등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럼에도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하는 확실한 마음은 숨길수가 없고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행복한 시간은 너무도 짧다. 여름은 끝이 나고 올리버는 떠난다. 가슴 한편이 뜯겨나간 듯한 아픔을 느끼는 엘리오에게 아버지 팔머는 아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헤어짐을 위로한다. 


19세기에 전복된 배의 잔해에서 조각상을 발굴한 팔머는 고대 조각상들의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의 모호성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그들을 원하게 한다고 말한다. 수세기 전의 작품, 한때 찬란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녹이 슬고 부서진 것들에서 여전히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듯이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한 번 뿐인 첫 사랑, 고통스럽고 아파도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 사랑이 끝이 나도 사랑의 감정은 몇 번이고 부활 가능하다. 


올리버와 엘리오는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르는 방식으로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고 확인한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이기도 하다. 너를 사랑하고 너를 원한다는 말 대신,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불렀을 때 네가 너의 이름으로 답을 한다면 그것은 너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별장에 도착한 올리버를 보는 엘리오의 시선에서 시작한 영화는 올리버의 약혼 소식을 듣고 벽난로를 응시한 채 눈물이 맺힌 엘리오의 얼굴에서 끝을 맺는다.  

상대가 잘생기고 똑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이기 때문에 그도 나도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이라는 팔먼은 어떤 삶을 살든 사랑에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아들에게 말하는데 그의 말은 사랑을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추신 

1. 이탈리아의 눈부신 햇살과 그 아래 빛나는 초록빛,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를 보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그곳에 있다면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2. 영화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3. 이 영화로 오스카 각색상을 받은 제임스 아이보리는 원래 자신이 연출을 할 생각이었으나 주연 배우로 캐스팅 되었던 샤이아 라보프와 제작사간의 갈등으로 영화가 중간에 한 번 무산되고 후에 루카 구아다니노가 연출을 맡은 것이라고 한다.  

4. 후속편이 곧 제작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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