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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Mar 09. 2018

[영화 리뷰]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힘을 이야기하다.

the shape of water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샐리 호킨스, 더그 존스, 마이클 섀넌, 옥타비아 스펜서, 리처드 젠킨스

국내 개봉일 2018.02.22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사전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사랑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부족한 설명처럼 느껴진다. 예술가들은 이 복잡 미묘하고 추상적인 감정을 예술의 형태로 전달해왔고 덕분에 대중은 여러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노래로, 그림으로, 영화로 만나왔다. 그리고 판타지 영화의 대가이자 대단한 이야기꾼인 기예르모 델 토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의 형태, 그 본질에 대해서 매우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일반적이고 정통적인 사랑이야기 [셰이프 오브 워터]라는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던 시기, 미 항공우주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일라이자는 들을 수는 있어도 말을 할 수는 없는 농아다. 그녀는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을 해서 연구소 곳곳을 청소한다. 가족도 연인도 없는 그녀에게는 옆집 사는 삽화가 자일스와 동료 젤다가 유일한 친구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소에 물고기도 사람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도착하고 일라이자는 이 생명체와 특별한 교감을 나눈다. 우주개발에 이용하기 위해 아마존에 살던 생명체를 납치 해 온 미국은 ‘그’를 고문하고 급기야는 그를 죽이고 해부하려 한다. 일라이자는 그를 구출하고 그를 다시 자연으로 보내 줄 계획을 세우면서 평생을 약자로 살아왔던 자신을 숨기지 않고 편견과 폭력에 과감하게 맞서게 된다.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셰이프 오브 워터]는 기예르모 델 토로 식 ‘미녀와 야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녀는 아니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미소를 가진 일라이자와 보는 이에 따라서 괴물이 될 수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명체가 될 수도 있는 ‘그’와의 사랑에 있어서 그들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또한 말을 할 수 없는 일라이자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그에게는 발화된 언어가 없어도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진심은 전달되고 이 진심은 때로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출근길의 일라이자


나와는 다른 존재


영화는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냉전 시대, 소련과 기술적, 이념적 대립을 이루던 미국에서는 각 가정에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극장 사업이 쇠퇴하고, 흑인 인권 운동이 본격화 되고, 사진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삽화 대신 사진으로 잡지와 광고 표지를 장식하고, 프랜차이즈 식당 사업이 본격화되는 등 변화의 물결 속에서 시대적 분위기는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나와 다른 존재, 이념적으로든 성적으로든 나와 다른 가치를 지닌 존재에 대해서 적대적인 인식을 가지고 주류는 소수를 배척해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흑인, 장애인, 여성 등 확실히 파악 가능한 존재에 대해서 주류 백인 남성 사회는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어 사회를 지배해왔다. 그리고 약자들은 암묵적으로 그들의 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 경계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정복할 대상으로서 상대를 대할 때, ‘인간다움’은 사라진다. 연구소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권력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치졸한 폭력성을 대변한다. 그에게는 아마존에서 잡아왔다는 ‘그’가 역겹기만 할 뿐이다. 물고기도 사람도 아닌 그가 고통을 절규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의 몽둥이를 휘두른다.  

나와는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인간다움’을 알 수 있다.  



외로움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일라이자는 처음부터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결함, 결핍들이, 사회에서 배척당했던 그래서 정상적이지 않다고 믿었던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신은 ‘그’를 이해한다고. 아무도 없는 그를 이해한다고.

고아원에서 자라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청소부. 늘 따뜻하고 다정한 미소를, 때로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외로움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겸손한 마음은 사랑을 소중히 여긴다. 사랑하는 존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를 위해 행동하는 용기는 역시 사랑에서 나오고 그 용기에 지지를 표하는 것은 ‘인간다움’에서 나온다.  

탈모가 고민인 삽화가 자일스는 파이가게 금발머리 청년을 짝사랑한다. 그를 보기 위해 가발까지 쓰고 맛도 없는 파이를 사먹으며 혹시라도 그 잘생긴 청년과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냉장고에 쌓여만 가는 녹색 파이 수만큼 그의 희망도 쌓여가지만 그 청년이 인종 차별주의자에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는 일라이자의 ‘구출 계획’에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금발 청년의 모욕적인 태도와 삽화가로서 자신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일라이자를 돕기로 결심한다. 젊고 예쁜 여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만 보고 흑인 폭동과 같이 골치 아픈 뉴스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채널을 돌렸던 그가 일라이자의 진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신은 곧 사랑이다?


아마존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그’는 녹색 밀림 속에서 살다가 고철 수조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런 그를 괴물로 보고 고문하는 연구소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는 신은 그 괴물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같이 생겼다고 확신을 담아 말한다. 하지만 ‘그’가 자연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불멸의 존재인 것을 보고 그를 향해 “당신, 신이잖아?” 말을 내뱉는다. 이 영화에서는 신을 종교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동의어로서 보면 어떨까한다.

치유의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는 죽을 위기 처하고 일라이자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총에 맞고 쓰러진 일라이자를 자신이 가진 치유의 능력으로 그녀를 살려낸다. 사랑은 사랑으로 살아난다는 조금은 낯 간지러운 해석일 수 있으나 사랑의 위대함은 때로 크고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지 않던가?


 

판타지, 영화의 위대함


일라이자는 극장 건물 꼭대기 층에 산다. 관객이 없어도 극장은 불을 밝히고 영화를 상영 하고 자일스의 텔레비전에서도 쉬지 않고 영화가 방영 중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영화’가 주는 환상과 즐거움을 일라이자와 자일스는 물론이고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50년대 영화는 물론이고 이 시대 음악들이 쉬지 않고 영화를 채운다. 자일스의 고양이를 잡아먹다가 놀라서 도망친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도 영화관 아니던가. 영화에 눈을 뺏긴 그를 보면서 델 토로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영화 삼매경에 빠져있는 그를 찾아낸 일라이자


기예르모 델 토로, 주류를 정복한 상상력.


그의 모든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영화들은 단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대단했던 영화들이다. 영화 채널에서 우연히 본 [헬 보이]는 미술이 특이하네? 하면서 보기 시작했다가 와우~ 이 영화 장난 아니잖아 하면서 감독의 이름을 처음 접했고, [판의 미로]를 보면서는 도대체 이 사람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그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8년간의 특수효과분장 경력도 영향이 있을 것이지만 그의 끝없는 상상력은 작업 노트를 보면 더욱 놀랍다. 상상한 것을 시각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이제는 주류 중의 주류, 오스카까지 정복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업 노트


영화의 시작과 끝, 자일스의 모노로그에서 인용된 시는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가 썼다고 알려졌다. 델 토로가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읽게 된 시인데 알라를 찬양하는 신에 대한 시라고 한다. 영화와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지는 시가 아닐 수 없다.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내 곁에는 온통 그대 뿐.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


추신

세르쥬 갱스부르의 ‘자바네즈’를 영화에서는 마들렌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일라이자의 마음이 딱 이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싶어 원곡과 함께 짧은 불어실력으로 가사 번역을 더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6gjzNm6dA0
 

La Javanaise

                                                                         serge gainsbourg

J'avoue j'en ai bavé, pas vous, mon amour?
 Avant d'avoir eu vent de vous mon amour
 Ne vous déplaise
 En dansant la Javanaise
 Nous nous aimions
 Le temps d'une chanson

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당신은 안 그런가요, 내 사랑?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에요.

당신만 괜찮다면  

자바춤을 추면서 노래가 나오는 동안 우리 사랑하기로 해요.


À votre avis qu'avons-nous vu de l'amour?
 De vous à moi vous m'avez eu, mon amour
 Ne vous déplaise
 En dansant la Javanaise
 Nous nous aimions
 Le temps d'une chanson

당신은 우리가 본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과 나, 당신은 나를 가졌어요. 내사랑.

당신만 괜찮다면

자바춤을 추며 노래가 나올 때 까지 우리 사랑하기로 해요.    


Hélas avril en vain me voue à l'amour
 J'avais envie de voir en vous cet amour
 Ne vous déplaise
 En dansant la Javanaise
 Nous nous aimions
 Le temps d'une chanson

아! 4월은 헛되게도 사랑에 전부를 거는군요.

당신에게서 이 사랑을 보고싶었어요.

괜찮다면 우리 자바춤을 추는 동안 사랑을 해요.

이 노래가 나오는 동안 말이에요.


La vie ne vaut d'etre vécue sans amour
 Mais c'est vous qui l'avez voulu, mon amour
 Ne vous déplaise
 En dansant la Javanaise
 Nous nous aimions
 Le temps d'une chanson

사랑 없는 삶은 가치가 없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원했잖아요, 내 사랑.

괜찮다면

자바 춤을 추면서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우리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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