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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ul 11. 2018

[리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소소하지만 위대한 역사를 담은 우리의 얼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Visages Villages

감독/출연    아녜스 바르다, JR
 


*주의!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술이 목적을 가질 수 있을까? 세상을 바꿀 수는? 

‘우리’의 일상에서 예술을 마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과연 ‘우리’가 예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가장 보통의 존재, 우리들을 일컫는 말이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JR과 아녜스 바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예술가다. 남성과 여성. 서른셋과 여든여덟. 키가 크고 키가 작고.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게는 ‘예술’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이야기를 수집하고 선택해서 프레임 안에 그것을 가둔 다음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가지고 관객, 즉 당신에게 다가감으로서 그들이 수집한 이야기는 다시 수천, 수만 가지의 이야기로 재탄생되는 자유를 가지게 된다.  

사진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JR과 50년 넘게 영화를 만들어 온 아녜스 바르다. 서로를 몰랐던 (물론 개인적으로) 두 예술가가 만나서 함께 작품을 만들고, 그 여정은 한 편의 놀라운 영화로 기록된다. 두 사람은 카메라 모양의(실제 사진 스튜디오 기능을 하기도 하는) 트럭을 타고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과거를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탄광촌 주택가, 홀로 자신의 공간을 지키고 있는 여인에서부터 생산성은 떨어질지언정 옛 방식으로 염소 농장을 하며 치즈를 생산하는 농부까지. 개인과 공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소멸해나가고 그 모든 과정은 사람의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삶이 단지 개인의 역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역사로 다가오게끔 두 예술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소소하지만 위대한 역사의 힘을 포착하고 그것은 작품이 되어 감동을 전달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된다는 말. 참 뻔한 말이지만 그 말이 사람의 얼굴에 담길 때 그 뻔한 말은 놀라움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동시에 출연자이기도 한 아녜스와 JR 두 사람 각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방인에서 작업 파트너이자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영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며 여러 에피소드들과 유기적인 구성,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아녜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장-뤽 고다르를 회상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는 JR의 얼굴이 젊은 시절 역시 늘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고다르를 연상시켜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녜스에게 그와의 추억은 그녀를 그녀의 동지이자 남편, 자끄 드미가 살아있던 젊은 시절로 데려간다.  

55년이라는 나이차이는 그들이 함께 작업을 하는데 있어 나이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JR이 짓궂은 농담을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이 영화를 보는 묘미 중 하나다.  


길에서 마주친 이방인들은 마치 놀이를 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두 사람의 작업에 참여하고 그들의 익숙한 일상이 낯선 예술로 재탄생 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한다. 아녜스와 JR이 마주한 각각의 에피소드를 여기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놀랍고 재밌는 이야기들은 영화를 보면서 직접 확인하기를 바란다.  


 

추신. 

아녜스와 JR이 고다르가 연출한 <국외자들>에서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장면(이 장면을 찍은 시점이 고다르를 만나러 갔다와서 인지 아니면 그 전인지 궁금하다.)이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 고다르의 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이런 게 영화구나...’ 하고 생각했던 씨네키드의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아름다운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고 벅차오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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