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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ul 18. 2018

데뷔작으로 세상을 놀래켰던 그녀

나탈리 포트만 <클로저> 2004

클로저 CLOSER

감독  마이크 니콜스

출연  쥬드 로, 나탈리 포트만,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The Blower's Daughter>를 부르는 다미엔 라이스의 잔잔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영화 시작 전부터 흘러나오고, 영화의 제목 <CLOSER>가 한 프레임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한자 한자 화면을 가득 채우며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나면, 런던 시내, 군중들 사이에서 빨간 머리의 그녀가 옅은 미소를 띠며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녀의 미소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바로 자신이 미소의 상대라고 말하는 것처럼 역시 미소를 띠며 걸어오고 있다.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 걸까? 수많은 이방인들 중 서로를 향한 남녀의 본능적 끌림을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담은 이 오프닝 씬은 미처 오른쪽에서 오는 차를 보지 못하고 쓰러진 그녀가 남자를 보고 “안녕? 낯선 사람?” 하고 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두 남녀의 매력적인 미소는 단지 상대를 매료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고 스크린 밖의 관객들까지 매료시킨다. 

첫 눈에 반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와 댄(쥬드 로)은 자연스럽게 연인관계가 되고 신문사 부고기사를 쓰던 댄은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경험한 앨리스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출간한다. 프로필 촬영을 위해 만난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댄은 앨리스를 곁에 두고도 안나에게 끈질긴 구애를 하고, 안나 역시 댄에게 매력을 느끼나 댄과 앨리스의 관계에 괜히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댄을 거부한다. 안나를 향한 욕망을 이상한 방식으로 해소시키는 댄. 안나로 가장해 성인 채팅을 하고 상대 남자와 만남까지 약속한다. 


안나의 전시회에 앨리스와 함께 참석한 댄은 안나 곁에 있는 남자 래리(클라이브 오웬)가 바로 그때 그 채팅 상대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쯤 되면 서로가 인연이 아님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할 법도 하건만, 서로를 향한 끌림을 거부하지 못한 댄과 안나는 결국 각자의 연인에게 큰 상처를 주면서 함께 하게 되지만 이들의 관계 또한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다른 등장인물 없이 오로지 네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는 것도 그렇고 막이 나뉘듯 구분되어지는 영화의 구성도 그렇고 영화는 연극의 성격을 많이 닮아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1997년 패트릭 마버(영화 각본도 그가 썼다.)가 쓴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넷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되고 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대신 결정적인 순간들만 분절해서 보여주고 관객은 그 간극을 메우는 대신 순간순간 드러나는 사랑의 민낯 그 자체를 마주하게 된다.


작가를 꿈꿨지만 부고 기사를 쓰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댄에게 짐 가방 하나 없이 뉴욕에서 런던으로 온 아름다운 미국인 앨리스는 자신이 그동안 기사로 썼던 수많은 죽음들이 한꺼번에 깨어난 것과 같은 자극과 설렘을 주었을 것이다. ‘스트립댄서’로 함축되는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은 그에게 영감을 주고 그 영감은 소설로 발현된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연인에게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라고, 거부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말하며 유령처럼 사라졌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연인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앨리스. 그가 자신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며 진실(래리와의 동침 여부)을 요구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고 처음 런던에 왔을 때처럼 가방하나 달랑 메고 떠나버린다. 


진실 되지 않으면 짐승과 다름없다고 말하는 댄이 요구하는 진실은 정말 진실이 맞을까? 앨리스의 이름이 사실은 앨리스가 아니라는 것은 앨리스의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만들까? 영화는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해 사랑에 있어 ‘진실하다’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질문들을 던진다. 

안나는 댄의 소설을 읽고 자신이 상상했던 앨리스가 실제 이미지와 다르다고 말하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에 저지후드를 입은 앨리스의 모습에서 스트립댄서를 연상하기는 누구라도 어려울 것이다. 스트립댄서에서 연상되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도발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 배우로 나탈리 포트만을 캐스팅 한 것은 성공적이었다. <클로저>는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네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롭고 인상적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다른 많은 아역 출신 배우들이 겪는 시행착오와 방황 없이 무사히 성인 배우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아역배우가 성인배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린 나이에 이룬 성공과 대중의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기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과 “나는 이제 미성년자가 아닙니다.”라고 선언 하는 듯한 작품을 찾다가 실패하는 경우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1994년 <레옹>으로 정말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차치하고 성인 남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여자 주인공으로 캐릭터의 무게에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레옹>에서 그녀가 맡은 캐릭터가 귀여움을 요구하는 인물이 아니었던 데다가 변함없이 예쁘게 자란 그녀의 외모 덕에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데 대중이 느끼는 괴리감이 덜했을 것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롤리타 판타지만 자극하는 배우로 이미지가 고정되어 사라졌을 수도 있다. 


<클로저>가 아니었어도 나탈리 포트만은 성인 연기자로 자리를 잘 잡았을 것이다. 다만 보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은 약간의 노출과 자유분방하고 예측 불가능한 앨리스라는 캐릭터 덕분에 좀 더 그 시간이 짧고 결과는 효과적이지 않았나 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와 <토르>등 블록버스터 영화 출연이 그녀의 커리어에 영화의 성공만큼 큰 영향을 준 것 같지는 않다. 명성에 비해 필모그래피가 약하다는 평도 있지만 그녀는 차근차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왔고 배우로서는 2010년 <블랙스완>을 통해 정점을 찍는다. 


2008년 <뉴욕 아이 러브 유>을 통해 (단편이기는 하지만)감독 데뷔를 하고 이후로 그녀는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의 기획과 제작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해오고 있다. 2015년 아모스 오즈의 자전적 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직접 각색하고 출연도 했으며 감독을 맡기도 했다. 영화는 호평을 받지는 못했으나(그렇다고 혹평도 아니다.) 다방면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그녀의 행보가 기대 된다. <레옹>에서 처음 그녀를 보고 “이 예쁘고 재능 있는 친구는 나중에 어떤 배우가 될까?” 하고 궁금했던 것처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배우는 나중에 어떤 영화인이 될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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