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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Feb 13. 2017

[영화 리뷰] 블루 벨벳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     

블루벨벳 Blue Velvet. 1986. 

데이비드 린치 감독. David Lynch

    


50년대를 연상시키는 달콤한 음악과 함께 cf에서나 볼 법한 밝고 명랑한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파란하늘에 하얀 펜스. 그 앞에 하늘거리는 노란 튤립과 빨간 장미. 소방차에 올라타 손을 흔드는 소방관과 개가 지나가고 평화롭게 정원에 물을 주는 남자와 주변을 뛰노는 개의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리고 호스로 정원에 물을 뿌리던 남자가 갑자기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과장된 그의 몸짓과 방향을 잃고 허공에 흩어지는 호스 물줄기에 달려드는 개의 모습은 웃기기까지 하다. 일단은 한 편의 슬랩스틱 코메디 같은 장면 앞에서 웃는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보여 질 지 관객은 예상할 수 없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도 드물 것 이다. 개봉당시 관객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문제작은 30년이 지난 후 전 세계 각기 다른 도시에서 재개봉을 하게 된다. 1986년 영화가 개봉했을 때 평론가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영화에 대한 갑론을박을 펼쳤고, 관객들은 열광하거나 경멸하거나, 극단의 반응을 보였다.   


감독은 바비 빈튼의 ‘블루 벨벳’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아이디어(여자의 옷장에 숨은 남자가 거대한 비밀을 발견한다는 설정 또한 함께)를 얻었다고 한다. 달콤하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위기의 노래는 영화 속에서 불려 지기도 하는데  무대 위에서 나른하게 ‘블루 벨벳’을 부르는 이사벨라 롯셀리니의 모습으로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클럽에서 '블루벨벳'을 부르는 도로시

주인공 제프리(카일 맥라클랜)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첫 번째 시퀀스의 그 남자) 병간호를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 ‘룸버튼’으로 돌아온다. 면바지에 단정한 셔츠를 입고 2:8가르마를 한 그는 누가 봐도 모범적인 청년의 모습니다. 아직 짙은 수염이 나지 않은 얼굴은 소년과 청년의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어릴 적 친구들이 모두 떠난 고향에서의 그의 일상은 무료하다. 병원에서 만난 아버지의 모습은 그에게 충격이고 (이 모습은 관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뇌출혈로 쓰러진 그는 마치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누워있다.) 집에 있는 엄마, 이모와는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심란한 마음의 그는 우연히 공터에서 잔잔한 돌멩이를 골라내던 중 사람의 잘려진 귀 한쪽을 발견하고 곧장 마을 형사에게 귀를 전달한다. 형사는 바로 수사에 착수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제프리는 형사의 딸 샌디(로라 던)을 만나 사건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얻으면서 ‘룸버튼’이라는 평화롭고 작은 마을이 가지고 있는 비밀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제프리와 샌디는 그들만의 형사놀이를 시작한다. 사건의 단서 중 하나인 밤무대 가수 도로시(이사벨라 롯셀리니)의 집에 몰래 침입한 제프리는 옷장에 숨어 그녀의 비밀을 목격한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형사놀이는 도로시라는 여인을 그녀의 처참한 상황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변하게 되고 제프리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비밀과 어둠을 알아가면서 자신만의 성인식을 치르게 된다.     

도로시를 훔쳐보는 제프리. 마치 부모의 성행위를 훔쳐보는 소년같다.

치명적 매력을 가진 여인을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적 사건에 빠져들게 된다는 점에서 <블루 벨벳>은 필름 느와르의 외형을 가지고 있고 이사벨라 롯셀리니가 연기한 도로시라는 인물 또한 필름 느와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블루 벨벳>은 기존의 장르 영화에서 한참을 비켜나 있다.      

감독은 ‘귀’가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라고 말한다. 제프리가 귀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공업적인 사운드와 함께 바글거리는 개미와 땅속 이미지가 보여 진다. 제프리가 귀를 집어 드는 그 순간 그는 ‘룸버튼’의 이면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호기심과 연민이 넘치는 제프리는 어둠의 세계에서 전에 알지 못했던 폭력과 쾌락을 경험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순수한 연인

빛의 세계에 샌디가 있고 어둠의 세계에 도로시가 있다. 제프리는 두 여인을 모두 사랑한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소녀 샌디는 사랑의 힘을 믿고 제프리의 형사놀이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그녀를 보면서 제프리는 희망을 본다.  아름답지만 비밀을 간직한 여인 도로시는 여성에게 가해질 수 있는 모든 폭력을 당한 최약체다.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이자 몸과 마음을 겁탈당한 여성이다.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프랭크(데니스 호퍼)의 폭력을 모두 견뎌낸다. 영화 속에서 도로시에게 가해진 폭력은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큰 논란거리였는데, 잉그리드 버그만과 로베르토 롯셀리니 감독의 딸이자 모델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아름다운 이사벨라 롯셀리니가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나체로 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옷장에 숨어 프랭크에게 강간을 당하는 도로시의 모습을 목격하는 제프리의 충격은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하는 아이의 충격 그 이상이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숨이 막힐 정도의 공포를 주는 프랭크는 기괴한 방식으로 도로시를 범한다. 질소를 흡입하고 환각 상태에서 근친상간을 연상하는 말들을 내뱉는 그를 보는 것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있는 것 만 같은 공포와 불쾌감을 준다. 지극히 수동적인 태도로 그의 폭력을 받아들이는 도로시가 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고통을 즐기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관객은 혼란스럽다.     

도로시는 제프리의 욕망을 깨우고 둘은 비밀 연인이 된다.(아마도 추측컨대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동정남이었으리라.) 그녀는 제프리를 때로는 자신의 남편인 듯, 때로는 아들인 듯 대한다. 도로시를 통해 제프리는 쾌락에 눈을 뜬다. 봉인이 해제된 욕망은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나를 때려줘.” 라고 말하는 도로시의 요구에 저항하지만 결국에는 그녀의 요구에 굴복하고 그녀의 뺨을 거칠게 때린다. 그리고 그날 밤,  프랭크의 얼굴인지 자신의 얼굴인지 모를, 베이컨의 그림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꿈속에서 보고 깨어나 눈물을 흘리는 제프리. 이 세상에 프랭크같은 악인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샌디 앞에서 울먹이던 제프리는 어쩌면 자신이 프랭크와 많이 닮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프랭크는 제프리에게 “너는 나다.”라고 말한다.)      

조명기를 마이크 삼아 노래하는 벤. 괴상한 그림이다.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사람은 없을 것이고 완벽한 도시도 없을 것이다.

‘룸버튼’에서처럼 폭력과 범죄는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범죄는 제프리의 엄마가 보는 tv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제프리가 집을 나설 때 그의 엄마가 보는 tv에서는 항상 누군가가 총을 겨누고 있다.) 제프리처럼 순수한 청년의 내면에 프랭크의 폭력성이 있는 것처럼. 순결한 샌디와 타락한 도로시(그녀의 정신이 타락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점에서는 ‘망가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실제로 목격하기 전 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면을 목격하는 일은 때로 거북하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공포스러운 일이다.      

도로시와 프랭크가 속한 세계에서 제프리와 함께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이상함을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영화 첫 번째 시퀀스에서 관객이 보았던 초현실적이라 할 만큼 이상적인 이미지들이 뿜어내는 불안함의 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붉고 어두운 도로시의 아파트

붉고 어두운 도로시의 아파트 거실(여성의 자궁과 피를 연상시키는)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하기엔 가구 배치도 엉성하고 공간은 비어있다. 그 곳은 침범 당한 여성의 공간이자 가해자들의 욕망이 실현되는 공간이며 범죄와 폭력의 마침표를 찍는 공간이다.      

프랭크 일당이 제프리를 데리고 벤이라는 인물의 집에 갔을 때 관객은 ‘도대체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창가로 예상되는 공간에는 뚱뚱하고 나이든 여자들이 아무런 표정 없이 앉아 있고 화장한 남자 벤은 조명기를 마이크 삼아 로이 오비슨의 “인 드림스”를 립싱크로 부른다. 꿈속에서만 오로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가사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벤의 모습, 프랭크의 표정,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당들의 모습은 마치 또 다른 누군가의 꿈 속 장면 같다.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나열.

호기심으로 시작한 형사 놀이는 총격전으로 마무리가 되고 제프리는 프랭크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집 뒤 정원에 누워있는 제프리의 귀가 클로즈업 되어서 보여 진다. 귀를 통해 이상한 세상으로 들어갔던 제프리는 다시 귀를 통해 밝은 세상으로 돌아온다. 기괴한 장치를 달고 병원에 누워있던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사랑하는 샌디는 그를 위해서 점심을 준비한다. 모두들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다. 오히려 전보다 나아진 모습들이다. 과연 그는 프랭크라는 인물을 만나기는 했던 걸까?      

쓰러진 아버지 앞에서 무력했던 아들은 악과 맞서 싸우고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샌디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의 부조리와 비극은 사랑의 힘으로 극복되고 행복의 시대를 맞이한다.      

사람의 잘린 귀 : 이상한 나라로의 통로

<블루 벨벳>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만의 색깔을 확고히 하는 시발점이 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장르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한 번에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보여주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과의 조우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깨닫는 순간 당신은 그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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