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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Feb 08. 2017

[영화 리뷰]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êté>2005.

                                                                             

자끄 오디아르 Jacques Audiard 감독





쉴 새 없이 남자 주인공 토마(로망 뒤리스)의 얼굴을 쫓는 카메라는 그의 불안을 표현함과 동시에 그 불안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고 어딘지 모르게 산만해 보이는 그의 불안한 눈동자는 관객으로 하여금 금방이라도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자끄 오디아르 감독의 2005년 작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êté>이 뒤늦게 국내에 개봉 했다. 제임스 토박의 <핑거스fingers>1978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열망하는 젊은 부동산 브로커의 이야기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피곤해 보이는 남자, 토마가 친구 사비의 고백을 듣고 있다. 한 손에는 담배를, 한 손에는 맥주병을 들고 있는 토마의 얼굴은 밤을 새웠는지 창백하다. 사비는 고백한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이 들고 병이 들어가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렸는지. 그럼에도 아버지가 죽는 것은 싫었다는 친구의 고백은 곧 토마의 고백이기도 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토마의 직업은 부동산 브로커이지만 집세를 못내는 사람들의(이들은 주로 아프리카 이주민들이다) 집에 쥐를 풀고 야구 방망이로 온갖 집기들을 부수는 등 폭력으로 세입자를 쫓아내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한다. 갱단의 행동대장들이나 할 법한 일들을 하는 그를 보면서 무엇이 그를 불법과 폭력의 세계로 이끌었는지 추측을 해 보지만 이러한 추측은 무의미해 보인다. 어느 분야에나 모럴과 상식을 벗어난 부분이 있고 주인공 토마는 그 벗어난 부분에 속한 인물이다.      

친구의 고백을 듣고 있는 주인공

토마의 아버지 로베르(닐스 아레스트럽) 역시 불법적인 일을 마다 않는 부동산업자이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일은(역시 폭력을 수반한다) 아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토마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그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그녀가 예술가로서의 섬세함과 예민함, 완벽지향을 극복하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폭력으로 일을 해결하는 부동산업자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라니...     


영화에서는 여러 가지 가치들이 충돌한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 아버지와 어머니의 충돌, 폭력과 예술의 충돌, 관용과 무자비의 충돌, 과거와 미래의 충돌. 그리고 관객은 이 충돌들 사이에서 토마가 망가지지는 않을지 영화를 보는 내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어머니의 매니져였던 폭스씨를 우연히 만나 오디션을 보러오라는 제안을 받은 토마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상기된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연주 녹음 테잎을 들으며 십년동안 손 놓았던 피아노 앞에 다시 앉는 그의 설렘이 고조될수록 토마가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냥 신이 나. 기분이 정말 좋아. 나한테 중요한 일이야.”     


그는 오디션준비를 위해 중국인 유학생 먀오 린(린 당 팜)에게 피아노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피아노에 온 신경을 집중한 나머지 일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하고 동료와 아버지는 피아노를 친다는 자신을 비아냥거리고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그의 꿈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 또한 그가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엄마가 피아니스트였고 한때 재능이 있었다는 이유로 10년 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은 28살의 남자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기적을 얘기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일찌감치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토마는 자신이 피아니스트가 되어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까?     

피아니스트가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기분이 좋다는 그의 고백처럼 꿈과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전에 없던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의 현실은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그를 방해한다.

불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중국인 유학생에게 매일 피아노 교습을 받으면서 일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모든 감각과 감정을 극도로 예민하게 곤두세워야 하는 예술과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오직 이익을 추구하는 일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레슨을 받는 토마. 그의 연주는 언제나 경직되어 있다.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던 토마가 오디션에 실패하고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 실패가 그의 인생에 어떤 폭풍을 불러올까 불안이 일지만 정작 일어난 비극의 원인은 피아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연주에 실패한 그가 오디션장을 나와 (햇살이 쏟아지는 빠리 거리에 서서 헤드폰을 쓰고 일렉트로 음악을 듣는다. 정작 그를 위로하는 음악은 클래식이 아니라 일렉트로다.) 향한 곳은 아버지의 아파트이다. 그리고 그는 살해된 아버지의 시체를 목격한다.     


토마의 안녕을 바라는 관객이라면 로베르의 죽음을 목격한 토마가 많이 걱정스러울 것이다. 그의 꿈이 실패했고 동시에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가 살해됐으니 시작부터 초조하게 관객을 밀어붙이던 토마의 불안이 결국 폭발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영화는 2년 후 미래로 넘어간다. 무대 위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단정한 모습의 토마가 보인다. 그가 결국에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이것은 혹시 토마의 꿈인가? 하는 순간적인 착각이 들기까지 한다.

토마는 부동산 브로커 일을 그만두고 먀오 린(그의 피아노 선생이었던 중국인 유학생)의 남편이자 매니져가 되어있다. 먀오 린의 공연이 있는 날 저녁 그는 우연히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마피아와 재회하고 그와 난투극을 벌인다. 피투성이가 된 그는 러시아인에게 총구를 겨누며 울부짖는다. 지난날의 아픔과 고통이 한 번에 그를 덮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총구를 거두고 공연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상처가 난 손으로 아내의 연주를 따라가는 토마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의 상처 난 손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토마의 손은 약자를 향해 휘두르는 폭력의 도구이자 내면의 섬세함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예술과 폭력, 관용과 무자비, 현실과 이상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상징으로, 첫 피아노 수업을 받으러 가기 전 그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밀린 임대료를 받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다 손에 난 상처를 기억해보길 바란다. 꿈을 향한, 인생의 반전을 위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는 과거(폭력)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가 자신의 자리를 찾은 지금 그의 손은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예술 곁에서 아름다움을 따라가고 있지만 과거의 어둠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를 덮치고 언제라도 폭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자끄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에는 끊임없이 사회에 흡수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장애인일수도 있고(내 입술을 읽어봐/러스트 앤 본), 범죄자일 수도 있으며 (예언자), 이민자일수도 있다(디판).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에서 토마는 서로 상반되는 두 세계 사이에 끼어있는 외톨이다. 동료들과 함께 있어도 아버지와 함께 있어도 혼자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아버지의 약혼녀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로베르가(닐 아르스트럽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등장하기 전 장면을 보면, 토마는 헤드폰을 쓰고 일렉트로 음악을 들으면서 텅 빈 레스토랑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는 멀리서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토마를 비추다가 이내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간다. 장면이 바뀔 때 마다 감독은 롱 샷으로 최소한의 상황설명만 하고 바로 토마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관객의 시선을 가두어버린다. 그의 다른 영화에서도 인물들의 얼굴 클로즈업은 빈번하게 사용되는데 이번 영화의 경우 대부분의 장면이 클로즈업으로 촬영되었고, 로망 뒤리스의 섬세한 연기는 토마의 표정만으로 외부로부터의 고립, 소통의 부재를 관객이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오디아르 감독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폭력과 결부되어 있다.

행복했던 사람이 불행해지는 이야기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 몰락해나가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인물들은 폭력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고 그들은 변태적인 우월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서 처절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폭력을 선택하기도 하고 선택되어지기도 한다. 영화라는 허구성이 폭력에 과감함을 더하지만 인생이라는 그런 것 아닐까? 토마의 상처 난 손처럼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인생은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청년이 주인공인 만큼 영화에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하다. 국경과 장르를 초월해서 여러 명작(색계,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등)의 영화음악에 참여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음악을 맡았다. 앞서 반복한 의미의 충돌은 음악에서도 드러나는데 토마가 추구하는 음악은 물론 클래식(영화에서 연습하는 곡은 바흐의 토카타 914번)이고, 그의 헤드폰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일렉트로음악이다.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의 교차는 토마의 상황을 묘사하는데 효과적이다.      

철 없는 아버지 로베르와 이해받고 싶은 아들 토마.

또한 이 영화의 미덕으로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철없는 아버지 로베르역을 맡은 닐스 아르스트럽(예언자를 본 관객이라면 섬뜩한 마피아 두목으로 분한 그의 연기를 기억할 것이다.)은 이 영화로 세자르 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이미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로망 뒤리스는 그의 연기인생에 있어 손에 꼽히는 명연기를 선보였다.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를 시작해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자끄 오디아르 감독의 아직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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