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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Sep 03. 2020

8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아이고!

https://www.youtube.com/watch?v=tlecTxx335U

christian löffler  ' running'

바람이 분다. 아니, 휘몰아친다. 거대한 창문이 흔들거리고, 공기의 충돌이 공포스러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바람은 화가 난 것 같다. 어지럽다. 바닥이 흔들거리고, 내 마음도 흔들거린다. 이정도의 바람이라면 바람을 타고 어디라도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창문을 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아니다. 창문을 열면 바람은 창문을 부수고야 말 것이다. 바람이 내 속을 휘 젓는다. 숨이 가쁘고 또 가쁘다. 이 바람이 잦아들고 나면 여름은 아마도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오겠지. 잔인한 여름이었고, 다가올 가을과 겨울은 또 어떨지...


예전에 누군가가 자신은 외로울 때 독방에 갇힌 죄수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고. 무더위와 코로나로 힘겨운 2020년 여름, 폭우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힘겨움에 힘겨움이 더해질 뿐이다. 숨이 가쁘고 심장은 지나치게 빠르게 뛴다. 지금, 손끝이 떨린다. 우리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두려움이 신을 찾는다. 정말 오랜만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여기서 멈춰주세요. 바람도 비도 코로나도 여기까지. 바람은 나의 기도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강하게 창문을 때린다. 밤이 길다. 어서 아침이 오기를.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아침이 어서 오기를. 


언제 잠이 들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니 고요한 하늘이 얄미울 정도로 얌전하고 단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창밖으로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들과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을 보면서 지난밤의 공포가 새삼스러워 피식 웃었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자 산뜻한 바람이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의 바람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표정이 왜 그래? 잠을 잘 못 잤어?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천연덕스럽게 내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야 할 고요함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내 다시 불안해졌다. 


유난히 바빴던 8월. 아찔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그 와중에도 써야하는 마스크가 물론 힘들지만 일상과 질병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지키고 있는 모두의 처절한 노력을 배신할 수는 없기에 불평은 않았다. 코로나가 물론 걱정이나 우리의 통제 하에 있는 질병이라 여기며 안심했다. 오히려 나의 바쁘고도 게으른 하루가 더 걱정이지... 

일터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내 모습을 늘 상상한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다가 졸다가 일기를 쓰다가, 얼마나 좋을까? 책상에 앉아 있지 않을 때는 책상 앞에만 앉으면 뭐라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뭐... 쉬는 날에는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쉬는 날에도 나는 진짜 뭐 하는 것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무척 바쁘다. 그래서 속상하고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꾸만 핑계를 만드는 내가 실망스럽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자아비판이 지겹고, 부끄럽고. 내 개인의 8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세상에 너무 많은 슬픔과 불행들로부터 거리를 둔 채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이말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하하하! 웃었다. ‘빤스를 내리면 진짜 성도이고, 아니면 가짜다.’ 라고 말 한 사람이 한 말이니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내 인생에 그 어떤 감정이나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그 순간 종교는 제 의미를 잃어버리고 선이 아니라 악에 가까워진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 작자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이다. 

정치적이다 라는 말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고, 의도를 가지는 그 순간 가치를 저울질 하고, 모든 수단은 목적의식아래 정당화된다. 아주 위험하다. 끝을 모르고 갈 수 있는(그러니까 모두의 안전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자들과도 함께 살아야하는 것이 처참하다. 


울고 싶다. 소리 내어 크게. 

눈물은 마르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젠장.


9월의 목표.   

비건 요리 2개 근사하게 해 먹기.

6km 쉬지 않고 뛰기

‘카페스토리즈’ 에피소드 5개 쓰기

단편소설 완성하기(좀 무린가?)

면허 필기 예상문제 한 번은 풀기

드라마 시놉 구상

그리고....  절주


음.... 너무 야심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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