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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ug 06. 2020

7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https://www.youtube.com/watch?v=cESCiPuTVVQ


프린터기 연결선을 찾는데 작은 상자에서 빛바랜 영화 티켓 한 장이 떨어졌다. 영화 제목은 ‘르누아르’ 이고, 영화를 본 날짜는 2013년 2월 4일. 장소는 mk2 parnasse. 시간은 19시 30분. 순간 내 머릿속에는 눈부신 햇살과 반짝이는 초록 잎들, 터져 나오는 여름의 설렘이 펼쳐졌다. 이미지로 기억될 뿐 영화의 내용은 어렴풋하다. 영화를 보았던 그날의 기억처럼. 그와 함께였고, 그의 엄마도 함께였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엠캬두 파르나스점이라... 몽파르나스에 있는 극장임이 분명한데, 극장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노트북을 열어 구글에 극장 이름을 검색하자 파리 지도가 뜬다. 갑자기 뜨거운 돌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뜨겁고, 답답하다. 내가 다녔던 학교, 산책했던 공원,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작은 영화관들, 그리고 나의 스튜디오들이 있던 거리를 찬찬히 살펴본다. 엠꺄두 오데옹점을 주로 갔지 파르나스는 글쎄, 간 기억이 없는데... 거리뷰를 클릭하자 파리의 좁은 도로와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조그마한 극장이 보인다. 이런 좁은 골목에 있는 엠꺄두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빛바랜 영화티켓 하나가 겹겹이 쌓인 수년의 추억을 덩어리째 던진다. 수만 겹의 추억 덩어리를 펼치고 싶지는 않다. 좋았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한데 뭉쳐 얼룩으로 흔적을 남긴다. 이것을 지우고 싶은 마음도, 따로 따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그대로 둘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감정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시간에 비례하여) 유연해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하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에 맞는 타격은 어쩔 수가 없다. 우연히 영화티켓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올 테니까...


할머니는 회상으로 하루를 보낸다. 할머니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시간은 얼마나 많은지. 팔십년의 세월을 매일 반복한다 생각해보라, 일주일이면 오백육십년이다!! 할머니가 수십 년의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은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시간과도 같다. 후회와 아픔으로 가득한 수십 년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할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미 겪은 일, 지나온 일이지만 고통은 늘 새롭다.


7월 휴가 때 외가에 다녀왔다. 할머니께서 지난 달 발목이 부러져 입원해 계실 때는 일 때문에 못 뵙고 퇴원을 하고 나서야 뵈러 갔다. 할머니는 외출은 무리지만 집 안에서의 거동은 자유롭게 하고 계셨는데 병간호를 위해 시골에 내려와 있는 이모와 (말다툼의)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이모와 다툴 때 마다 과거를 곱씹었고 그것은 이모도 마찬가지였다.


현재에 과거를 사는 것은 불행이다. 과거의 아픔이든, 과거의 영광이든. 과거는 과거로서 우리의 일부일 뿐인데 때로는 이 일부가 전체를 잡아먹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할머니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다. 솔직히 그럴 의지가 내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와 이모의 말다툼이 시작 된 순간,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그 순간만큼은 안타까움이고 뭣이고 간에 ‘또 시작이군.’ 무심하고 이기적인 생각뿐이었다.


나는 하룻밤을 자고 도망치듯이 할아버지 산소에는 가보지도 못하고(비 때문에) 외가를 떠났지만 침대에 기대어 앉아 창밖을 보며 읊조리듯 신세한탄을 하던 할머니의 서글픈 모습이 내 마음을 붙잡는다. 나는 잠시 슬퍼하고 만다. 이것 참 허무하고 또 서글프군. 하지만 어쩌겠어. C’est la vie. 그렇게 자위하고 잊는다.


7월에 내가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일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양치질을 하고 나가 달리기를 했다는 점이다. ‘런데이’ 앱을 다운받아 거기서 코칭 해주는 프로그램대로 해서 지금까지 22번의 달리기를 했다. 곧 5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이고, 겨울에는 10km 달리기를 거뜬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번에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조깅화를 새로 구입했다. 6년 넘은 운동화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새 운동화를 살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며 좋아했는데 런데이 앱 코치의 설명에 따르면 러닝화는 800km 이상을 달렸을 때는 바꿔 주는 게 좋다고 한다. 두꺼운 스포츠 면 양말도 처음으로 구입해보고 뛰는 동안 손을 자유롭게 해주는 조거벨트도 구입했다. 도구 혹은 장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스포츠 용품에 대한 관심이 급등했는데 쓸데없는 욕심과 허영심을 자제하려고 노력중이다.


이건 칭찬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비웃음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지난 몇 달 동안 열심히 했던 ‘꿈의 집’이라는 핸드폰 게임을 삭제했다. 화장실, 출퇴근길에서 꽤 유용하게, 재밌게 했던 게임인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좀 과하게 하는 것 같아서 과감하게 삭제를 해버렸다. 적당히가 안 된다면 그것을 누릴 자격도 없지. 뭐. 왜 적당히가 안 되는 걸까, 30분이 넘어가면 재미가 아니라 피로를 느끼면서도 왜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7월에 계획했으나 실패한 것들.

-단편소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인물 구성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운전면허 필기

앱으로 공부해야지! 이렇게 간편하구나! 간편해서 더 안 보게 되는 건가? 필기공부에 10분도 투자하지 않았다.

-각종 리뷰

할 말 없음. 핑계를 대자면 바쁘고 피곤하고, 뭐. 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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