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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ul 02. 2020

6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아픔 다음에 또 아픔.

https://www.youtube.com/watch?v=u_fbZwBToas

mogwai 'visit me'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짱짱한 날이면 지붕을 타고 후끈하게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18층. 꼭대기 층에 사는 게 이런 건가? 통 창을 통해 내리 쬐는 날카로운 햇살은 반짝거리는 바다 풍경이 얼마나 예쁜지 잊게 만든다. 


드디어 여름이 왔다!!! 


여름이 반가워서 소리치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기합의 의미로 고함 한 번 빽! 지르면 조금 나을까 하는 바람으로 “!”를 세 개 더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울 거라는데, 거기에 마스크까지. 이 또한 결국에는, 모두, 지나가겠지만 어쨌든 당장은 생각만으로도 콧구멍이 뜨끈뜨끈하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몸의 감각들이 새삼스럽다. 단단하게 뭉쳐져 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조각조각 나뉘어져 내 숨을 타고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열기와 땀이 이것들을 끌어당겨 다시 내 몸에 들러붙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나는 이 감각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쩜 이렇게 매번 시간 참 빠르네, 앞으로 4달 동안은 하루가 얼마나 더울지 얼마나 자주 얘기를 하게 될까? 이놈의 더위는 언제 끝나나... 하다가 겨울을 맞이하겠지. 뻔 한 생각에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


오월의 어느 날, 루를 끌어안고 아이고 예쁘다, 예쁘다하고 있는데 루의 가슴에서 작은 혹이 만져졌다. 언제 이런 게 생겼지? 루의 몸을 매일 살피고 있었기에 나도 가족도 깜짝 놀랐다.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실하고, 잠도 잘 자고. 콩알 만한 혹이 녀석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눈치였다. 작년, 요로결석과 장염으로 고생을 했었기에 바로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그렇다고 그냥 두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일단 만졌을 때 녀석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 흔히들 생기는 지방덩어리 같은 것인가 보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겠지, 일단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퇴근 길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내일 루의 지방종 제거 수술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자꾸 눈곱이 껴서 병원에 데려 갔더니 수의사 선생님 왈, “그냥 두면 계속 자란다. 터지면 어차피 수술해야 하니 미리 제거하는 게 좋겠다.” 위험한 수술은 아니라 했지만 가슴이 불안하게 콩닥거렸다. 지방종. 노견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만으로 아홉 살. 

‘그래. 우리 루도 이제 노견이지.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고, 산책 할 때는 차분하게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걷지. 뛰는 일은 잘 없어. 장난감 인형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던 게, 같이 놀자며 나를 성가시게 하던 게 언제였는지. 아무튼 최근 일은 아니야.’

지금까지 함께 한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적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다시금 루가 가슴 아리게 소중하다. 

9년이라는 시간동안 루와 우리가족은 서로를 알아왔고, 이제 서로를 꽤 잘 알고 있다. 내가 녀석을 이해하는 만큼 녀석도 나를 이해한다. 교감한다. 언어를 초월하는 교감. 그냥 보는 것  만으로도 충만한 사랑과 행복(절대로 훼손 될 리 없는 절대적)을 느낀다. 


루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실밥을 푼 지도 2주일이 지났다. 상처가 깔끔하게 아물어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 가족이 한숨 돌리는 동안 시골에 계신 할머니로부터 비보가 들려왔다. 할머니의 발목이 부러져 광주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는. 지난 밤 여든이 넘은 노인의 부러진 발목을 수술하겠다는 병원이 없어 겨우 광주까지 왔다는 소식.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순간부터 할머니는 다리가 아팠다. 선천적으로 약한 다리에 수십 년간의 고된 노동이 더해져 언젠가부터 앓는 소리 없이는 걸음을 옮기지도 못하고, 아슬아슬 조심스러운 걸음은 보는 사람을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리의 통증이 커지는 만큼 지난날에 대한 회환과 한 또한 깊어져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달팠던 할머니. 손녀로써 무한한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할머니의 인생에는 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는데 내가 이해 못하는 그 곳에 할머니의 아픔이 응집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할머니의 발목이 부러지면서 ‘이것’ 역시 부러졌다. ‘이것’을 뭐라 칭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살 안에서 곪고 있던 상처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피부를 뚫고 나온 상황. 곪을 대로 곪아서 상처만 도려낸다고 될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야 하는 그런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닐까. 내 몸에 난 상처는 아니지만 나는 그 상처를 자세히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바뀌는 게 없다 할지라도. 


꽤 무거운 문제‘들’이 99도로 끓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들이 만들어낸 거품 중 하나다. 



6월에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어중간하게 길을 잃었다. 쓰고싶은 글들이 많은데...단상들을 빠짐없이 기록할 것. 캐릭터와 플롯을 구성할 것. 집중. 집중. 집중. 


영화 리뷰를 a4 1장 분량이라도 쓸 것. 

정리. 정리. 정리.

https://www.youtube.com/watch?v=UokIoawK9wQ

brian eno 'by this river'


6월에 흥미로웠던 것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논픽션>. 대화와 술이 땡기는 영화. 

<킬링 이브> 드라마의 중독성. 허술하다하면서도 일단 계속 보게 되는. 시청의 피로함.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 아!!! 나스타샤 킨스키. 아!!!! 아름다운 풍경. 아!!!! 여자의 일생.

<아토믹 블론드> 샤를리즈 테론. 왓 엘즈?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 <헵타메론> 음...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이미 여러 사람의 손을 탄 글을 한국어로 번역해 전체도 아니고 부분을.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편안한 산책같은 글.

존 버저 <끈질긴 땅> 인간, 노동, 삶. 존 버저(다큐멘터리 보니까 다들 버저라고 부르던데 왜 한국어로는 버거라 옮기는지 모르겠다.)

앙투안 볼로딘 <미미한 천사들> 첫장의 문장들에 반해서 샀는데 '포스트 엑조티시즘' 어렵다. 아직 다 못읽었다. 

우리 동네

술집1. 맛있는 안주, 적당한 가격. 

술집2. 아늑한 공간. 혼자여도 함께여도 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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