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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un 11. 2020

5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https://www.youtube.com/watch?v=D9hLkKXXzr0&list=PLvrWACVuHe6rImJAkWvF03xoGjwZkfYYo&index=3


오월. 참 예쁜 이름이다. 오월. 오월을 부르는 입술이 동그랗게, 적당히 힘을 주어 햇살을 부른다. 봄을 지나 여름을 기다리는 시간. 살랑이는 바람과 눈부신 햇살에 나도 모르게 들뜬 마음이 지난 31일을 까마득히, 뒤로 미룬다. 아주 옛날 같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오월이다. 예쁜 오월인데... 야속하다. 내 시간들이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모두 살아냈는데 어째서 내 기억은 이리도 널뛰기를 하는 것인지. 


아틸라 요제프. 서른두 해를 살아 낸 헝가리의 시인. 그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스스로 삶을 거두었다. 빛나는 지성과 재능을 가진 청년이, 어째서 32년의 삶 동안 세 번의 자살시도 끝에(첫 번째 자살시도는 아홉 살. 맙소사!) 결국 기차라는 무시무시한 고철 덩어리에 몸이 짓이겨진 것일까?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시(‘일곱 번째 사람’ 번역-공진호,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014)가 나를 울린다. 아름답고 처절하다. 그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담아낸 예술이. 삶의 아름다움과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담은 돌멩이 하나가 가슴 한 가운데 첨벙. 마음의 파문이 눈물로 퍼져나간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에게 삶은 특히 가혹하다. 부끄러움은 합리화를 모른다. 그 무엇도 핑계가 될 수 없다. 세상의 부조리. 온갖 치욕과 멸시 속에서 자존을 지킨다는 것. 사는 게 다 그렇지... 다 그렇다는 건 뭐가 다 그렇다는 것일까? 스스로는 알 것이다. 아닌 척 감추고 있는 비겁함을. 비겁함이 아닌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존 버거의 책을 통해 아틸라 요제프를 알게 되었다. 존 버거를 알게 된 것은 내게 축복이다. 그를 통해 다시 한 번 내 세상은 풍성해졌고, 제대로 살고 싶다는 열망은 강해졌다. 


존재한다는 것. 내가 여기에 있음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살고 있음으로서, 나와 타인의 존중을 받음으로서 증명되는. 그런 삶. 노동이 삶의 일부로서 조화를 이루는. 노동에 잠식당하지 않고, 자본에 지배당하지 않는. 


오월, 눈부신 이 계절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3년 만인 것 같다.) 많이 바빴다. 코로나라는 전에 겪은 적 없는 재난에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를 바쁨이지만 바쁜 만큼 고요한 집중의 시간이 소중하다. 


퇴근 길, 십분 정도 집 주변을 산책한다. 꽤나 마음에 드는 동네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마음에 드는 것은 파리 무프타흐 구역 이후로 처음이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섞여 분주함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소박한 이곳. 작은 서점들과 다정한 카페가 있는 이곳에서 나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가지게 될까? 


5월의 정리가 늦었다. 

일을 하고, 장을 보고, 유튜브를 보면서 운동을 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고, 책을 읽고, 청소를 하고. 글은 쓰지 못했다. 


유월에는 글을 써야지. 그게 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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