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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May 07. 2020

4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내방에 식물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xE7IRizjI

서울에 처음 집을 얻었을 때 엄마는 내게 스킨답서스 화분 하나를 사주었다. 키우기에 까다롭지 않은 식물이니 잘 키워보라고. 

칙칙한 방에 초록 식물이 덩그러니. 보기에 참 좋았다. 잎들이 주렁주렁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잎들과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 아침, 창백해진 잎 하나를 발견하고 도대체 무슨 일이니? 괜찮은 거니? 잎을 어루만지는데 잎은 애초에 흙에 심어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뽑혀 나왔다.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의 머리카락처럼 스킨답서스 잎들은 하나씩 사라져갔고, 결국엔 흙밖에 남지 않았다. 미안함과 원망이 함께 찾아왔다. 신명나게 잎을 내리기도 전에 쓰레기통으로 사라진 스킨답서스에게 미안한 동시에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습한 방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다. 


식물이 가득한 집은 영감으로 가득한 집이다. 식물의 생명력이 나의 몸과 영혼을 채울 것이다. 푸른 잎의 그 연약하고도 아름다운 싱그러움과 단단한 뿌리의 강인함, 끈질김, 집요함을 가질 것이다. 


식물이 가득한 집은 언젠가부터 내가 도달하고픈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진짜를 가질 수 없으면 그 복제품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나는 몬스테라 조화 나무를 샀다. 플라스틱  초록 잎은 감쪽같았지만 기둥부분은 어쩔 수 없이 가짜 표시가 났다. 새로운 잎이 나오는 신비, 늙은 잎이 말라가는 애석함은 몰라도 그래도 나는 몬스테라가 진짜 내 방에 있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가짜는 결국 가짜일 뿐이지만 그것이 준 위로는 진짜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반짝이는 바다를 본다. 그리고 어제는 없었던 새 잎을 만들어 낸 스킨답서스를 살핀다. 동그랗게 말린 새 잎이 오늘은 다섯 잎이나 보인다. 가슴이 뭉클하다. 그리고 내 시선은 꽃으로 향한다. 이번 주 내 화병에는 엘레강스가 꽂혀있다. 어쩜 이리 예쁠까. 어쩜 이리 예쁜 것이 있을까. 잠깐, 찰나의 행복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골치가 아파도 이들을 볼 때 내 문제들은 잠시 정지상태가 된다. 


고맙다. 

4월 봄.



추신.

읽은 책들을 정리해야하는데, 자꾸만 미루다가 지워진다.


오랜만에 Kings Of Convenience - Mis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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