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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pr 01. 2020

3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어느새 한달, 까마득한 하루하루.

https://www.youtube.com/watch?v=cIiFKWHQsNM


바람에 꽃잎이 날린다. 날아가는 꽃잎을 따라 내 시선은 파란 하늘에서 초록 나무, 그리고 회색 바닥으로 움직인다. 9살 된 루가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봄바람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봄바람을 킁킁거리는 루의 반질반질한 코를 보고 있자니 잠시 동안이지만 모든 걱정과 고민이 그대로 멈춰버린다. 세상이 이대로 완벽한 것만 같다. 짧고도 무한한, 절대적인 행복이다.


힘든 3월이었다. 내 일기장엔 3월의 기록이 없다. 영화도 보지 않고, 책과 드라마, 유튜브 짤들만 겨우 보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마찰, 내 욕망의 충돌, 이러한 것들이 주는 힘듦은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해결책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포기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과 함께 잊혀지고. 하지만 지난 한 달 나와 내 가족이 겪은 힘듦에는 아무리 좋은 생각과 다짐으로도 극복하기 힘든, 가슴 한 가운데에 시커먼 블랙홀이 생긴 것만 같은 어둡고 무서운 힘이 있었다.(‘있었다.’ 과거형이다. 아직은 과거형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과거형’이다.)


“아빠가 암이래.”


2월 22일 토요일 아침,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빠는 전날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아빠가 위내시경을 받은 직후, 의사는 엄마를 불렀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한 진단을 내리겠지만 위암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는 소식을 전했다.

얼마나 진행됐나요?

많이 심각한가요?

수술을 받아야하나요?

결과가 나오기 전에 본인에게 알려야할까요?

의사는 그 무엇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술이 가능할지도 아직은 확실치 않다고.

의사의 이 말은 엄마의 귀에 죽음 선고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수술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공포와 연민이 엄마의 가슴을 짓눌렀지만 엄마는 일단 아빠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만약에’의 경우에 대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들을 고민했다.


암이라니. 이제 암은 극복 가능한 병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암은 암이지 않은가? 암은 곧 고통과 죽음을, 또한 고통스러운 죽음을 연상시켰고, 이 생각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명랑하기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명랑할 수 있지 않을까.

                                                                             -황현산-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명랑하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순간순간 무너지는 가슴의 파장이 아빠에게 전달되었는지 아빠는 어쩌면, 아마도 본인이 ‘암’일 것이라 예상했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는 날,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데 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정작 병원 안은 한산했다. 수술이 가능한 상태이게만 해주세요. 제발.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수술이 가능하다면 아빠는 살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소화기내과 의사는 그날 바로 위암 전문의를 소개해줬고, 위암 전문의는 아빠의 위암 덩어리를 보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오늘 ct찍고, 다음 주에 바로 수술합시다.” 가볍게 말을 했는데 그의 그런 태도에서 나는 굉장한 위로를 받았다. 그래, 아빠는 괜찮을 거야. 아빠는 살 거야. 그날 우리 가족은 아빠의 성공적인 수술을 기원하며 작은 파티를 벌였다.


3월 8일 오후 아빠는 입원을 했고, 수술 전 장을 비우는데 꽤 애를 먹다가 다음날 아침 10시30분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은 2시간 30분정도 걸렸고, 엄마와 나는 3시가 넘어서 중환자실에 들어간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빠는 울고 있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그때 아빠의 울음을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아빠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아빠는 열흘을 병실에서 보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병문안을 하기가 무척 성가셨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실에 있는 아빠를 보러갔다. 더딘 회복과 항암에 대한 두려움, 사라진 입맛 때문에(앞으로 맛있는? 음식은 못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아빠는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사의 말에도 우울해했다. 그리고 아빠의 우울감은 퇴원한지 2주가 지났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먹는 것을 힘들어하고 tv시청과 산책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아빠가 즐거운 무언가를 찾기를, 그런 바람이 가득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술이 잘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항암을 먹는 약으로 하게 되어 또 얼마나 감사한지.

그럼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늘 함께한다.


모든 태어난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지낸다. 그 보다 무의식처럼 의식의 저 깊숙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병이나 재난, 여러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닥칠 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설마 암이겠어.

암은 언제나 멀리 있는 병이었다. 나에게 암은 병의 저 끝, 꼭지점에 있는 것인데, 내 아빠가 암에 걸리고,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작은 통증에도 예민해지고, 우리 모두가 잠재적 환자처럼 보일 때도 있다.


좋은 음식, 적당한 운동, 명상.


4월에는 건강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YrLk4vdY28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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