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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an 04. 2021

12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2020을 기억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Qk_Dmv6ccsA


지금 내 책상 위에는 2020년 일기장이 있다. 하늘색 커버에 점선이 가득한 하얀 속지는 나의 악필로 무언가 가득 쓰여 있다. 손때가 묻은 커버엔 루짱의 귀여운 모습이 찍힌 스티커가 붙어있고,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있는 자코메티 일러스트레이션 스티커도 붙어있다. 첫 장을 열면 해변가에 앉아 있는 아녜스 바르다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붙어있다. 바르다의 창작 에너지가 내게도 있기를 바라면서 조금이라도 그녀를 닮고 싶다는 마음에 이 사진을 오려 붙였었다. 2020년을 시작하며 내가 계획한 일들이 단어로 문장으로 쓰여 있다. 추진력, 집중, 진심과 같은 추상적인 항목부터 가족과의 여행, 마라톤, 운전면허, 000원 모으기 같이 o, x로 분명하게 체크할 수 있는 항목까지. 내가 계획한 일들이고 내가 쓴 것들을 무심히 본다. 어떤 일들은 아쉽고, 어떤 일들은 실망스러우며 또 어떤 일들은 잘 했다싶다.

서울을 떠날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면서 2020년은 보다 진취적인 한 해가 되었으면 했지만 이래저래 성취감보다는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더 큰 한 해가 되었다. 그것은 코로나19 때문도 아니고, 아빠의 투병 때문도 아니다. 고민에서 머무는 걱정들이 중첩되어 나는 자꾸만 머뭇거린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또 속상하다. 2020년을 분석하고, 반성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면 어제를 깨끗이 잊고 새로운 오늘을 살 수 있을까? 2020에 못한 것들을 2021이 고스란히 이어 받는다. 2020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것 같아 벌써 지루하지만 시간이라는 게 어디 마침표가 있던가, 그러니까 나는 2020의 나를 무시하고 덮어둘 수 없다. 하나 더하자면 2021의 키워드는 ‘심플’이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말도, 행동도, 생각도, 단순하게. 마음먹은 것들을 실행하고, 방법이 없다면 미련을 버리고, 힘들어도 가능하다면 힘듦을 감수하고 왈가왈부 않는 그런 심플함. 그러기 위해선 하루하루에 충실할 수 있는 에너지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찰이 필요하겠지. 일단 오늘은 2020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사건

코로나와 아빠의 위암 선고가 함께 왔다.

평생 살찐 적이 없던 아빠도 나이가 들면서 뱃살이 나오고 얼굴이 빵빵해졌다. 아빠의 볼록한 배를 보고 엄마와 나는 많이 웃었다. 아빠는 자주 배가 아프다 했지만 원래 위가 약한데다 워낙 예민해서 그러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식사를 잘 하셨으니까. ‘병’의 실체를 마주하기 전까지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지. 엄마의 전화를 받았던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가슴이 차갑고, 뜨겁다. 뜨겁게 두근거리다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때의 두려움과 공포를 지나왔다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그런 일이 있었나, 심지어 아빠는 이제 겨우 항암 1년차인데, 여전히 낯설다. 한 번 시작된 것은 계속 이어진다.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암’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은, 그 공포와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 역시 마찬가지다. 백신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해도 이제 시작이라는 불안을 지울 수가 없다. 인류의 가능성이 한계점에 이른 것은 아닌지...


영상

극장에 두 번 갔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슨 영화가 개봉하는지 대체로 관심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극장 나들이도 줄었다. 영화 그 자체가 주는 설렘을 더는 느낄 수 없다. 나의 첫 번째 표현수단은 언제나 (완성된 적 없는) 영화이지만 영화보기의 즐거움은 어쩌자고, 잃어버렸다. 넷플릭스와 왓챠로 보는 드라마들은 재밌어서, 식사동무가 필요해서 보기도 하지만 보면서 플롯 공부를 한다. 공부에 비해 습작이 영 시원찮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 영상들, 무엇을 볼지, 보기도 전에 피로해지는 과잉. 정말 신기한 세상이다. 그 중에서 올해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들로는

<더 나이트 오브>,

하나의 사건. 거기에 얽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함축적이고도 설득력있게 그려낸 굉장한 작품이다. 리즈 아메드!! 존 터투로!!

<이어즈 앤 이어즈>,

근접한 미래. 설마 하면서도 그래, 그럴 거야. 벌벌 떨면서 본 작품. 이미 벌어진 일들에서 더 멀리 가는 무서운 작품. 지긋지긋하지만 절대 무심해서도 무시해서도 안 되는 우리 사회와 정치.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나의 눈부신 친구>,

관계, 시대, 선택, 사랑, 우정, 여성. 시즌3은 언제 나오나?

<빅뱅 이론>,

보고 또 보고. 쉘든의 성장 드라마.

<소프라노스>가 있다.


작가.

존 버저(‘존 버거’라고 한국에서는 쓰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영국 사람들은 그를 존 버저라고 부르길래 나도 버저라고 쓴다.)의 책들.

노동 삼부작<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과 <제7의 인간>,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을 완독 했고, <초상들>을 아껴 읽고 있으며 <G>를 얼마 전에 구입해서 곧 읽을 예정이다. 존 버저가 너무 좋다. 문장은 아름답고 이야기는 가슴 아프다. 현실과 허구가 환상적으로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다정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잔인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소설

찰스 부코스키의 <헐리우드>. 영화를 하기 위해선 파이팅이 필요하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넘고 또 넘어서는 그 파이팅. 영화 한 편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는지, 그래서 영화는 매력적이고 지긋지긋하다. 공감이 가서 더 재밌게 읽었다. 부코스키는 글을 참 쉽게 거침없이 잘 쓴다.


아틸라 요제프< 제7의 인간>. 내게 시 읽기는 늘 어렵다. 그 와중에 아틸라 요제프의 시는 가슴 아픈 공감을 이끌어낸다. 번역된 시를 읽는 것은 무의미한 일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에세이

토마스 페이지 맥비 <맨 얼라이브>.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던 작가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방황과 선택.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사랑. 자신의 삶을 통찰하는 작가의 선명하고 깊은 시선, 그리고 용기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전시

시오타 치하루 <영혼의 떨림>. 전시 제목 그대로 보는 내내 영혼이 떨려오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개인의 삶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그녀의 작품을 보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삶의 고통, 치열함, 갈망이 뜨겁게 전달되는 놀라운 전시였다.


뮤지션

Christian Löffler, JoJi.


그 외에

고양이들, 마크 커피, 김의준 고구마, 노 메이크업, 꽃시장, 스킨답서스, 행운목, 만년필, 조깅, 전자저울 ,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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