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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Dec 04. 2020

11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다이어트

https://www.youtube.com/watch?v=DpXwAUYlu9A


텀블러에 카모마일 티백 하나를 뜯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차가 우러나오는 동안 빨래를 널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고른다. 부드럽고 그루브한 음악을 듣고 싶어 SIR 대표곡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려 조심스럽게 차를 홀짝거린다. 향긋한 따뜻함이 손끝까지 퍼져 나가면서 잠시 아무 생각이 없다. 11월에 내가 뭘 했더라... 책상 앞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치고 11월의 기록들을 본다.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질질 끌고 있던 단편소설 하나를 겨우 완성했으며, 지난 1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 <마틴 에덴>을 보았다. 아빠가 ‘드디어’ 차를 구입했고(십 년 만인가? 맙소사!!), 덕분에 우리 가족의 숙원이던 루와 함께 하는 나들이를 매주 실천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좋았다(막 좋은 건 아니고 나쁘지 않은 정도), 짜증이 났다, 우울했다, 행복했다(짧게 스치는 순간, 이 기분을 느끼는 순간에는 잠시 모든 일을 멈추고 감사 인사를 한 다음 속으로 ‘좋다’라고 꼭 말한다), 화가 났다, 좋고 나쁨이 왔다 갔다 한다. 수년간의 수련을 통해 감정의 극단에 가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이것의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분 때문에 무너지는 일이 없다는 거고, 단점은 사람이 좀 삭막해져서 설렘을 느낄 수 없다는 거다. 게다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육체적 피로감(다행히 정신적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을 더하면서 이렇게 살다가는 몸만 있고 영혼은 없는 사람으로 늙어가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한 시간 만이라도 글을 꼭 써야지, 콘티도 짜고, 아이디어 정리도 해야지, 하고 결심을 했던 게 수개월 전이다. 영양제도 챙겨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하염없이 드라마/영화 재생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어떻게 하면 이 피로감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거의 매일 마시는 맥주가 문제인가 싶어 쉬는 날만 음주를 하기로 했고, 내 인생 최고점을 찍은 체중과 체지방 때문 일지도 몰라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인바디를 측정했더니 체지방이 높음 수준이 아니라 초과상태! 신체 나이는 내 나이보다 높게 나왔다. 그나마 내장지방, 근육, 골질량 등등이 정상과 좋음을 나타내고 있어 다행이지만 기초대사량도 너무 낮고, 어쨌든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결론! 


식단은 아침은 평소대로(오트밀+과일+커피), 점심도 평소대로(일반식, 먹고 싶은 것 아무거나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저녁 식단만 삶은 고구마와 샐러드로 바꿨다. 조깅은 일주일에 두 번, 다른 날은 요가와 유튜브를 보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따라하고 있는데 다이어트 시작 4주 만에 체중이 2.3kg이 빠졌고, 체지방은 초과에서 높음으로 내려왔다. 목표는 체지방이 높음에 가까운 정상이 아니라 정상 중에 정상이 될 때까지다. 4주가 지난 지금, 식단도 할 만하고, 과연 주 2회 음주가 가능할까, 했는데 가능해서 계속 이대로 해나갈 생각이다. 


 원래도 건강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빠가 아프고 나서부터는 통증에 예민해졌다. 조금만 어디가 불편해도 극단적인 병들을 생각하게 된다. 설마, 했던 병을 아빠가 얻게 되면서 생긴 일종의 염려증인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아빠의 항암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순조롭다는건 어쨌거나 항암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매번 다른 부작용들이 아빠를 힘들게 하고는 있지만 병원에 가야할 정도는 아니고, 체중이 늘지 않아 걱정이긴 해도 아침, 저녁 운동을 꼬박꼬박 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은 된다는 말이다. 하루 24시간 붙어서 아빠 간호를 하고 있는 엄마의 건강과 스트레스도 걱정이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다. 지금의 고통이 언젠가는 끝날 거라는 희망, 그 희망이 견디는 힘을 준다. 그 희망을 잃는다면 살아갈 의지를 잃고, 의미도 잃게 되겠지. 아직 이 희망을 의심할 위기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늘 조심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지금 나에게는 가족들)이 괜찮은지 살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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