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JE_hYojg90o
아무도 없는 넓은 들판을 미친 듯이 달려보는 것.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헥헥거리면서 미친 듯이 웃어보는 것. 그리고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팔 다리를 움직여 탈진할 때까지 춤을 추는 것. 나의 오랜 소원 중 하나다. 달리고, 웃고, 춤추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해서 ‘소원’ 씩이나 하나, 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완전한 자유 상태’라고 한다면 그건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고 싶다는 욕구는 시도 때도 없이 느껴왔다. 운동으로서의 달리기가 아니라 내 몸이 요구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서 그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든 방출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니 일단 달리고 보자 했던 것 같다. 어떤 가능성, 설렘의 감정을 느낄 때마다 달리고 싶은 욕구가 함께 일었다. 도시 한 복판에서는 미친 듯이 달릴 수가 없으니 그럴 때면 나는 음악을 들으며 어깨를 들썩거리거나 영화 <나쁜피>에서 드니 라방이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를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에 맞춰 질주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아, 나도 그렇게 달리고 싶은데...’ 언제부터인가 이 모든 욕구와 충동은 과거형이 되어버렸고, 설렘의 감정, 호기심도 함께 사라져버려 당혹감과 슬픔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크게 들뜨지도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 삶. 늘 피곤하고 특별히 좋은 게 없는, 대체로 기운 없이 가라앉아 있는 지루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스스로가 안타깝고, 딱히 대안은 없고, 하루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막상 인간적인 교류는 없는 일상의 반복, 내 상태를 나열하는 것도 이미 지루한 그런 상황이 온 것이다.
지금의 내 삶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감사한다. 일이 고되기는 해도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고, 내 기준에서 내 한 몸 건사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고 있으며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 살면서 일이 없을 때에는 고정 수입만 있으면 자유롭게 글을 쓰거나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정 수입이 생긴 지금은 작업에 열중 할 체력이 되지 않는 게 고민이다. 쉬는 날 몰아서 하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고, 아침, 저녁으로 무언가 하기엔 내 창작욕이 피로를 이길 만큼 강하지 못하다.
4월과 5월, 특히 힘들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삶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두 달이었고, 늘 부정적인 생각이 함께 했다. 불평, 불만이 늘었고, 투덜거리는 스스로가 또 불만이 되었다. 제발 이 부정적 감정이 잠시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길 바랬다. 그러던 중 가족과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을 통해서 어쩌면 돌파구가 될 지도 모르는 또 다른 삶의 형태, 가능성을 보았고, 정말 오랜만에 들뜨는 감정을 느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면서 산다.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에서부터 어떤 인연을 맺고, 어떤 인생(커리어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 더 나아가 다양한 윤리적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을 살아갈지와 같은 무겁고 무서운 선택까지. 하나의 선택을 위해서 나머지는 포기를 해야 하고, 선택 후의 결과는 오롯이 내 몫이 되는데 그 결과가 두려워 선택을 미루고 미루다보면 어느 순간에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됐지? 선택이 없는 삶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짓궂었던 봄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 봄은 얼마나 변덕스러웠는지! 햇살과 강풍, 그리고 빗줄기를 동시에 경험하고, 하루 사이에 여름과 겨울을 널뛰기 하듯이 왔다 갔다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날씨들이 꽤나 자주 있었다. 그 모든 변덕이 지나가고, 이제는 짱짱한 햇살 아래에 한 시간만 있어도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그런 계절이 왔다. 제 힘을 과시하듯 열기를 뿜어내는 햇살도 저녁이 다가오면 다정하고 그윽한 빛으로 바뀐다. 개와 늑대의 시간, 변화의 시간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투덜거리면서 만족은 못하지만 단편 하나를 완성했고, 덕분에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6월을 시작한다. 6월에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든 동참을 하면서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