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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pr 05. 2021

3월의 무성의한 일기장

살림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PXWt2ESxVY

한 것도 없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온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러다 또 일 년이 지나가겠네 싶어서다. 2021년의 사분의 일이 지나갔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거기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일에 지쳤다. 그런 시간이 너무 싫다. 무슨 영화를 볼까, 무슨 시리지를 볼까 검색하면서 이 영화는 이래서 안 땡기고, 저건 좀 그렇고. 검색만 하는 시간. 눈이 피곤해져 정작 영화는 못 보고 마는. 한 때는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것이 대단한 즐거움이었다. 비디오 대여점 안에서 한 시간 동안 영화를 고르며 내 언젠가는 여기에 있는 영화를 다 보리다! 다짐했던 때도 있었다. 명작이든 졸작이든 ‘이야기’에 감사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음에도 이야기를 찾고 또 찾는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건 그것도 병인가? 

매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무언가를 본다. 지난 한 달, 31일 동안 나는 매일 무언가를 봤다. 그런데도 내 머릿속에 남는 건, 일기장을 펼쳐보지 않으면, 없다. 모른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진다. 거짓말처럼. 그래서 때로 기록은 낯설다. 무언가 한 가지를 골똘히 생각하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나는 끊임없이 방해받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방해한다. 되돌아갈 수는 없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할 뿐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이지만 일기장을 보니 여러 소소한 새로운 일들이 있었다. 베이킹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통밀빵, 당근케익, 바나나 케익, 브라우니, 오트밀 쿠키를 만들어 보았는데 에어 프라이어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가루의 조합이 무언가 전혀 새로운 맛, 새로운 형태,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내는 신기한 경험을 즐기고 있다. 4월에 만들어 보고 싶은 빵은 올리브 치아바타와 스콘이다. 그리고 그릭 요거트를 만들어 먹는 재미에 빠졌다. 나는 전자렌지로 발효를 시켰는데 이 꾸덕한 식감이 꽤나 중독성 있다. 한동안 우유와 불가리스를 섞어 만들다가 두유와 비건요거트분말(?)을 섞어 비건 그릭 요거트를 만들어 먹고 있다. 여기에 견과류, 메이플 시럽, 시나몬가루를 섞어 먹으면 요즘 말로 존맛탱이다. 건강한 식단,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재미가 꽤 큰 한 달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이제 나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내 몸이 즐거운 음식은 결국 내 입도 즐겁다. 

내 몸이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매일 쓸고 닦아야 하고, 하루라도 가꾸기(주로 정리)를 소홀히 하면 금방 표시가 나는데다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그리 크지 않은 집에 혼자 살기 때문에 혼자 감당 할 수 있는 살림을 하고 있다. 매일 내 공간을 둘러보며 나쁘지 않아, 그래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덜 들이고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 3월엔 새로운 식물을 들여왔다. 늘 식물이 더 있었으면 했다. 항상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화분을 새로 들이는 건 부담스러워서 꽃시장에서 꽃만 사왔는데 이번 달에는 어쩌다 보니 식물을 둘이나 들였다. 칼라데아 인시그니스와 아이비. 아이비는 이미 줄기를 길게 내리기 시작해서 제 앙증맞음으로 볼 때마다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밤이면 움츠려 들었다가 아침이면 잎이 펴지는, 길죽한 초록 잎에 붓으로 진녹색을 그려놓은 듯한 인시그니스를 보고 있으면 마치 마티스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제 내 공간에는 4개의 식물이 있다. 스킨답서스, 행운목, 인시그니스, 아이비. 볼 때마다 왜인지 흐뭇한 감정이 든다. 


목련이 지고 벚꽃이 만개했다. 

봄이다. 규모있는 하루를 위해서 새벽기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아침에 불어 책 독서 한 시간, 단편 소설 쓰기 한 시간, 운동 삼십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성공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운동은 매일 한다. 그래야 그나마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람은 매일 5시에 울린다. 봄이다. 4월엔 영화나 시리즈 리뷰를 매주 한 편씩 쓰고, 단편 소설을 완성하고, 에세이도 주 한 편씩 쓰려고 한다. (에세이는 솔직히 음...확신이...음...) 


나는 몇 분후면 자켓을 입고 출근을 한다. 지금 책상에서 느끼는 이 햇살이 얼마나 소중한지. 출근 전엔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하! 계속 이렇게 앉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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