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Mrs. Ahn

할머니와 작별하기 1.

by cinejwk

할머니가 숨을 멈추었고, 나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짧은 글을 쓰려고 한다.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 기억의 끈이 이끄는 대로 일단은 쓰려고 한다.


지난 12월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다.

할머니는 늘 어딘가 아프고 몸이 불편하셨기 때문에 그전부터 감기기운이 있거나 입맛이 없으실 때마다 의료원에 한 일주일 입원하고 오시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들 했었다.

할머니는 입원이라도 하면 그 길로 병원 신세를 질 것 같은 불안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 걱정이 되셨을 수도 있고, 할머니의 속마음을 이제와 알 길은 없지만 입원 얘기가 나올 때마다, 혹은 병원에 가보시자는 말을 할 때마다 극구 손을 흔들며 싫다고 하셨다.


그날은 주변 사람들의 성화를 못 이겨서인지 아니면 자꾸만 가쁜 숨이 답답하셔서인지 읍내에 있는 내과에 가셨고, 병원에서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다며 의료원에 가보시라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의료원에 입원하셨다. 그날 오후 할머니가 입원하실 때 잠시 짬을 내어 의료원엘 갔는데 그날 내 기분이 참, 우울했다. 눈이 내릴 듯 잔뜩 흐린 날이었고, 할머니는 유난히 작고 힘이 없어 보였으며, 병실에 입원 중인 노인들은 모두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할머니가 입원한 5인실 병실 간병인은 할머니의 거동이 불편한 것을 보고 대뜸 저녁엔 기저귀를 하셔야 된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속상한지… tv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인 할머니가 과연 다인실 생활을 하실 수 있을지… 그것 또한 염려되었다. 할머니는 체념한 듯 보였고, 내가 말을 보태는 것이 서로 감정적으로 성가신 일이 되는 것 같아 나는 가만히 할머니와 엄마의 기분만 살피었다.


다음날 병원을 무거운 마음으로 찾았다.

할머니는 기분이 꽤 좋아 보이셨고, 오히려 병원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할머니, tv를 못 봐서 어떡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나는 괜찮다…’라는 말의 진심을 해석할 필요 없이 정말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다행이었지만 동시에 할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병원 생활에 오히려 얼굴이 필 정도면 그동안 얼마나 외로우셨던 것인지, 죄송스러웠다. 할머니는 어디를 가도 금세 친구를 만들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말하기 좋아하는 할머니 성격을 농담 소재로 삼아 우스갯소리나 하고 그랬었다.


간식을 사들고 병실에 가면 간병인도 다른 환자 보호자들도 (나의) 할머니가 정말 재밌으시다며 손녀는 좋겠다. 고 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병실에서 따뜻하게 계시니까 좋지 않냐, 앞으로는 기력 떨어지거나 어디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입원하시자, 했고, 할머니는 다 늙은 노인네가 병원비를 쓰고 해서 되겠냐 하셨지만 싫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수혈도 받고, 영양제도 받고, 뜨뜻하게 2주 쉬시다가 그렇게 퇴원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할머니의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 전에도 발이 퉁퉁 부은걸 본 적이 있어서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다리를 아무리 주물러도 붓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통증이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붓기의 정도로 보아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병실을 찾으니 간병인은 내게 지난밤, 할머니가 섬망 증상을 보였다 했다. 그저께만 해도 활기가 넘쳐 보였던 할머니는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듯 보였고, 다리가 멀쩡한 나에게 다리 아픈 건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깜짝 놀란 내가 ‘나 다리 안 아파요~’했더니 ‘그저께 장(터)에서 아프다고 했으면서.’라고 하셨다.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인 할머니의 정신이 빠진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죽음에 대한 원초적 공포가 입을 바짝 마르게 했다.


의료원에서는 신장이 너무 망가졌다고, 신장 투석이 필요해 보인다 했다. 아니, 신장투석을 하지 않으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했다. 만으로 여든여섯. 신장투석이 얼마나 고된 과정인지 여기저기서 듣고 본 적이 있기에 선뜻 선택을 하기가 어려웠다. 할머니는 담담한 얼굴로 신장투석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기름기라곤 없는 할머니의 퍼석한 얼굴, 지난 오후 나를 다른 사람으로 오해한 텅 빈 눈동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호한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병실 안의 온기가 답답하게 폐를 짓눌렀다. 내가 내뱉는 숨이 환기가 되지 않는 병실 안에서 다시 내게 되돌아왔다. 창문을 열 수도 없고, 병실을 나갈 수도 없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과연 좋은 결말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것인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 기도를 해보지만 현명한 선택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지.

나는 이겨낼 수 있는 일이라면 할머니에게 그 힘을 주십사, 기도를 바꾸었다.


뉴스에서는 여든 노인도 큰 부작용 없이 신장 투석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건 다른 지병이 없는 사람의 경우였다. 할머니는 이미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은 평생 할머니를 괴롭혔고, 혈압, 위장질환, 대상포진, 여러 가지 문제들이 평온한 적 없는 할머니의 삶을 더 힘들게 했다. 여러 가지 약들을 매일 먹어야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들은 흔히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통증과 약은 할머니의 일부였고, 나는 그러려니 했다.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의 팔은 붉은 점들로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약이 독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했다. ‘그럼 약을 끊거나 바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묻자 약을 안 먹으면 아프다고, 다른덴 이상 없다고, 괜찮다고 했고, 몇 년이 지나서는 약을 당신이 알아서 조절해 가며 먹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견디기 위해서 약들을 먹었다.


할머니가 받아들이게 된 두려움에 대해서 가끔 생각을 해본다. 통증을 견디면서 긴긴밤 홀로 아침을 기다리는 일. ‘늙었으면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게 당연하지~ 다들 너무 오래 살아서 문제야.’~ 그렇게 말함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을 거라 믿는 것처럼.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동네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을 먹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는 큰 병을 발견하게 될까 봐이다. 더 큰 병원, 더 많은 검사, 그에 따른 비용, 자식들에게 알리는 일, 등등을 감당하는 것보다 외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살만큼 살았는데… 그렇게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다독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음으로 가는 그 과정에 대한 불안. 그 감정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한들 뭐가 크게 바뀔 것인가, 자식들은 멀리 살고, 요양원은 가기 싫고, 무슨 대안이 있을 거라고,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 그렇게 흐름에 맡기는 수밖에…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을 이제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할머니의 마지막 5년 동안 할머니의 딸이자 나의 엄마가 매일 할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살가운 모녀지간은 아니었지만 늘 씩씩하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1여 년 전부터는 밤사이 당신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셨고, 엄마와 함께 사는 일은 극구 거절하시더니 1여 년 전부터는 무언의 동의를 하셨었다. 그래도 할머니에게 자식과 함께하는 선택지가, 안심장치가 있었어서 다행이다.


신장투석은 쉽게 내릴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한 번은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신장투석을 받으면 몸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결과를 희망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나와 가족은 그렇게 할머니를 설득했고, 할머니도 알겠다 하셨다. 그 말을 나누고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찾은 병실엔 의식은 있지만 말을 하지 못했고, 온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할머니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지를 가볍게 떨면서 천장 어딘가를 째려보듯 응시하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